곁을 내어주기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by 더딘

1.

친구와 자전거 하이킹을 떠난 적이 있다. 자전거를 타고 땅끝까지 가서 섬으로 들어가는 배를 타기로 했다. 해남읍에서 땅끝 선착장까지 가야 하는데 여름이라 날은 덥고 길은 멀고 작은 언덕이 계속되고 있어서 쉽지 않았다. 며칠 동안 쌓인 피로 때문에 의자에 앉아 있는 것도 힘이 부쳤다. 꾸역꾸역 페달을 밟으며 아침에 출발했지만 정오가 거의 다 되어갈 때까지 선착장은 보이지 않았다. 눈앞의 고개를 지나기 위해 억지로 자전거를 끌며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저 편에서 누군가 우리를 불렀다. 아마 근처 동네에서 더위를 피해 나무 그늘 아래로 나들이를 나온 가족인 듯했다. 가까이 다가가니 점심으로 고기를 굽기로 했는지 불판에서 지글지글 소리가 났다.

"고생허네. 이것 좀 먹고 가소"


가족은 삼겹살이며 소고기며 구워 우리 쪽으로 계속 내어주셨다. 타지에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먼저 부탁한 것도 아닌데 밥을 먹고 가라 하는 게 무슨 경우인지. 허기진 속에 고기와 밥 한 술을 상추에 얹어 먹는 맛이 무엇에 비할까. 얼추 식사를 하고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씩 반복하고 다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그 가족도 웃으며 잘 가라는 인사 후에 또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이어갔다. 곧 언덕을 오르자 푸른 바다와 섬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내리막길에 맞는 바람이 시원했다. 주변 풍경에 눈에 들어올 정도로 여유가 생겼던 건 아마 그 식사 덕분이었을 것이다.


음식을 통해 사람은 만난다. 음식을 앞에 두고 수많은 말과 맛이 오간다. 음식은 사람이 어우러지게 하는 필수 요인 중에 하나다. 여기에 더할 수 있는 음식의 매력이 더 있다. 사람은 음식을 통해 내 곁을 상대에게 내어줄 수 있다는 것. 콩 한쪽도 나눠먹으라는 말처럼 사람은 음식을 준비하면서 상대에게 자신의 품을 열어둔다. 우리끼리만 먹어, 돈 내고 드세요처럼 배타와 구분, 교환의 가치를 넘어선다. 아직 밥 안 먹었어? 우리 식사 중이니깐 와서 먹어, 오는 길에 샀는데 너 생각이 나서 연락했지, 아이 참 괜찮아 그냥 와도 돼. 그때 만났던 가족도 비슷했다. 스스럼없이 곁을 내어준 덕분에 감사한 마음으로 음식을 맛보았다. 그때 먹은 음식의 맛, 가족의 표정, 주변의 풍경은 기억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하지만 그때 우리에게 곁을 내어준 호의의 느낌은 여전히 선명하다.



2.

돌이켜보면 음식을 통해 곁을 내어주는 일은 부모님에게도 종종 있었다.


아버지는 밭에 너무 많은 김장 재료를 키우곤 하셨다. 배추, 무, 대파, 갓... 분명 우리 가족이 먹을 분량만큼보다 더 많았다. 여름 끝무렵부터 겨울 입구까지 일을 마치고 짬을 내어 밭을 돌봐야 했다. 김장철이 되고 재료를 수확할 즈음이 되면 타지에 사는 친척이나 마을 친구분들에게 연락을 하셨다. 무엇 무엇 다듬어놨으니 가져가라, 못 온다고? 갖다 줄게 얼마나 필요한지 말하라는 것이었다. 뭐야 밭에서 아직 뽑지도 다듬지도 않았으면서... 그 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농사 다 지어서 반도 넘게 사람들한테 나눠주냐고 화를 내시곤 했다. 줄 거면 밭에서 뽑아가라고 그럴 것이지 뭐 하러 다 다듬어서 직접 갖다 주기까지 하냐고 아버지를 몰아세웠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아버지는 크게 대거리를 하시지는 않았다.


"다 먹을 일인데, 이왕 줄 거 다듬어서 주면 좋잖나."


아버지의 답은 항상 그 정도였다. 에이 뭘 또 그러냐 잔소리 좀 그만하라는 게 전부였다.


3.

중학생이었을 때 어느 겨울도 그랬다. 그때 살 던 집은 정류장에서 내려 시골 안쪽 마을까지 20분 넘게 걸어야 하는 곳에 있었다. 심심한 길이지만 그날은 동네 형도 함께였다. 나는 집까지 가려면 이십여분을 걸어야 했고 그 형은 거기에서 또 윗마을로 십여분은 걸어가야 했다. 나는 아랫마을, 형은 윗마을. 그날따라 어머니는 두 마을이 나뉘는 삼거리에 나와 계셨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날이 추우니 같이 우리 집으로 가서 호빵이라도 하나 먹고 가라고 하셨다. 그렇게 친한 형도 아니고 평소에 간식을 챙겨주시는 것도 아닌데 의아했지만 어둑해지는 추운 날 따뜻한 호빵을 마다할 수가 없었다. 미리 쪄둔 호빵 몇 개를 먹고 헤어질 때까지 어머니는 형이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고 계셨다.


어머니도 당신의 행동이 뭔가 평소와 다르다고 느끼는 걸 알아채셨을 것이다. 형의 모습이 사라지자 어머니께서 먼저 이야기를 하셨다. 오늘 안 마을에서 불이 났는데 저 형네 집이었다고. 그 말을 듣고 불이 났으면 빨리 가보라고 해야지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때 어머니가 이어서 하셨던 말이 계속 남아있다.


"가면 정신없을 텐데 저녁이라도 제대로 먹겠니. 속 따뜻하게 뭐라도 먹여서 보내야지."


여행에서 만난 가족,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리면 ‘나는 흔쾌히 그럴 수 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생각함에 사특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데 흔쾌히 내 것을 덜어내어 줄 수 있을까. 그래서 음식을 만드는 일은 나는 어느 정도 그런 사람이 되어 있는지 살피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는 흔쾌히 곁을 내어주는 사람이 맞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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