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만족하는 음식
어느 휴일 저녁은 들기름 막국수를 만들기로 했다. 김가루, 들깨가루는 냉동실에 있고 냉장실에서 간장 들기름 매실청이 있으니 면만 삶아서 막 비비면 될 정도로 어렵지 않은 음식이었다. 국수만 먹기에는 입이 심심할 것 같아서 수육도 조금 삶았다. 들기름막국수, 수육(제육), 김치 정도면 가짓수는 적지만 든든한 한 끼가 된다.
식탁에 모여 식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오늘 음식이 어떤지 말이 오갔다. 이제 자기도 맛을 안다는 식으로 아이도 말을 섞기 시작한다. 들깨가루가 많이 들어가면 고소하긴 한데 퍽퍽하다, 들기름을 더 넣어달라, 매실청은 신맛이 남으니깐 다른 단맛으로 바꿔달라, 따뜻한 수육 말고 지난번에 먹었던 차가운 제육으로 해달라, 김치가 너무 익었다, 이런저런 말들. 아이고 그냥 드세요. 아니면 다음에는 직접 만드시던가.라고 하고 싶으면서도 맛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모습이 신기해서 가만히 듣고만 있는다. 이런저런 품평 후에 결론적으로 오늘 맛이 자기 마음에 들면 아이는 국수를 먹으면서 이렇게 곁들인다.
"아빠가 들기름 막국수 가게 하면 좋겠다"
음식을 만들어 가족과 나누다 보면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게 되는 즐거움이 있다. 식사를 하며 우리는 벌써 어느 위치에 어떤 디자인의 간판을 달고 무슨 음식을 파는지 계획을 마치곤 한다. 국수와 어울리는 곳은 산 아래쪽이어야 해, 술은 팔지 않지만 수육과 먹으려면 막걸리 정도는 허락해 줄게. 배추김치는 고모할머니네 부탁하고 이모할머니네에서는 콩장이나 멸치볶음 반찬을 준비하면 돼. 아빠는 국수랑 수육만 만들어. 엄마는 계산만 해. 가족끼리 하는 것도 부족해서 친척까지 다 모아야 하네? 너는 그럼 뭐 할 건데? 난 학교 다녀야지. 끝나면 바로 올게. 너무 걱정하지 마. 메뉴판은 내가 그림으로 그려줄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니. 판은 네가 열어두고 뒷짐 지겠다는 건가. 그런데 아이 말대로라면 장사가 잘 될까? 너무 복잡하지 않은 몇 가지 메뉴만 파는 식당. 많은 테이블이 아니라 몇 개 테이블만 두고 식사 때만 장사하는 식당. 식당을 여는 순간 생존 전쟁일 텐데.
"그런데 말야. 식당 메뉴가 너무 적지 않아? 똑같은 음식 두 번 먹으면 질리잖아. 국수랑 수육만 팔아?"
아이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답을 한다.
"그러면, 몇 가지 메뉴를 추가해. 음... 월요일에 국수랑 수육, 화요일에 닭백숙, 수요일에 등갈비묵은지찜, 목요일에 미역국, 금요일에 봄동무침, 토요일에 고등어구이. 일요일은 쉬어야지"
주 4일 노동을 이야기해야 하는 시대에 배려하듯 제안하는 주 6일제 근무 일정.
"아 그러면 되겠다. 근데 아빠 회사 다니면서 식당 못해"
"왜?"
"둘 다 하면 힘들어. 회사에서 안된다고 할 걸"
"그러면 회사 그만두고 가게 해."
이야기는 보통 이렇게 마무리가 된다. 회사 그만두는 건 엄마한테 허락받아야 한다고 하니 엄마를 조른다. 나도 직장 그만두고 가게 차릴까 물으면 정년 다 채우고서 생각하라 하고 만에 하나 가게를 열더라도 나는 하지 않을 테니 혼자 책임지라는 말을 한다. 그래서 늘 상상은 완결되지 못하고 어느 날 다시 비슷한 패턴의 대화로 반복된다.
그래도 한 가지 즐거운 것은 아이가 이야기하는 식당에 메뉴들은 모두 내가 아이에게 해주었던 음식이라는 것이다. 여러 음식들 중에서 아이의 입맛을 통과한 음식이다. 사탕과 초콜릿처럼 달콤함으로 가득한 맛이 아니라 복잡하고 번거로운 맛들이다. 천천히 씹어야지 숨겨진 맛이 드러나고 재료 특유의 향과 질감에 익숙해져야 하고 묵히거나 우려내야 하고 가장 맛있는 시기와 온도를 지나지 않아야 이해할 수 있는 음식들.
좋은 풍경을 감상하고 좋은 문학작품을 읽어야 하는 것처럼 음식과 재료도 어렸을 때부터 좋은 것을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나름 성공인 듯하다. 잘 크고 있다는 안도감이 든다.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가게를 할 수는 없으니 더 자주 음식을 만들어서 아이와 나눠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그래서 아이에게 종종 이야기한다.
"오늘은 뭐 먹고 싶은 거 있나?"
"다음에는 친구들 저녁 먹고 가라 그래."
회사를 그만두고 식당을 차릴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상상은 충분히 흥미진진하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