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 페이지 쓰는 아침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책상 앞에 앉았다. 책상 위에는 새 노트가 있다. 사둔 지는 한참 됐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사용하기를 미뤘던 노트를 모닝 페이지 노트로 사용하기로 했다. 뭘 써야 하지? 생각하면서 뭘 써야 하지? 라고 적었다. 이런 걸 적어도 되는 건가? 생각한 그대로 썼다.
모닝 페이지는 줄리아 카메론의 책 『아티스트 웨이』에 나온 창조성 회복을 위한 방법 중 하나다. 저자는 아침에 일어나 떠올린 어떤 이야기든 써서 종이 세 장을 채우라고 조언한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는 이 단순한 방법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예측할 수 없었다.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어렵게 보였다. 종이 세 장은 어떤 종이 세 장을 말하는 거지? A4? A5? 쓴다는 건 뭘 말하지? 손으로만 적어야만 하나? 노트북이나 아이패드로 적으면 안 되나? 그럼 손이 덜 아플 것 같은데. 세 장은 어떻게 채우지? 쓰는 데 한참 걸릴 텐데. 내가 쪼개 쓸 수 있는 아침 시간은 한정적인데, 그 시간을 모닝 페이지를 쓰는 데 할애해도 아깝지 않은 일이 될까?
의심을 품고 모닝 페이지를 쓰기 시작했다. 애매모호한 기준은 내 식으로 바꿨다. 일부러 작은 사이즈의 노트를 한 권 골랐다. 쓰는 데 지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어떻게 써야 할까? 타이핑을 할까 고민했지만 일단은 손으로 적어보기로 했다. 손으로 적는 습관은 계속 이어하고 있다. 아침 8시 이전에는 휴대폰을 비롯한 전자기기를 만지지 않겠다는 습관을 지키기 위해서다.
매일 세 장 분량의 이야기를 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게 배고프다, 졸리다, 피곤하다, 뭐하는지 모르겠다, 같은 아무 의미 없는 말의 나열일 뿐이라도. 하지만 없는 이야기를 창조하고 궁리해 적는 것보단 쉽다. 머릿속엔 아무 말이 늘 넘쳐나기 때문에 두서없고 맥락 없는 말들을 계속 쓰다 보면 20~30분 정도가 지나 있다. 정해진 분량을 채우면 미련 없이 펜을 내려놓는다. 다시 읽어보지 않고 바로 덮어버린다.
가끔은 며칠을 끌며 가져온 걱정과 불안을 적기도 한다. 의도한 글쓰기는 아니다. 쓰다 보면 생각이 나고, 깊이 들여다보니 더 잘 보인다. 쓰는 일 자체가 두려움을 깎아내지는 않는다. 다만 빠르게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느리게 적다 보면 마음이 조금씩 차분해지고 이야기를 내 것이 아닌 것처럼 관망할 수 있게 된다. 어두운 방에 램프 하나만 켜 두고 적는 분위기도 한몫하는지도 모른다. 내 것이긴 하지만 나만의 것은 아니라고, 가까이 있기에 더 크게 보이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노트를 덮는다. 노트에 담긴 이야기는 노트 안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아티스트 웨이』의 저자는 처음 몇 주 동안 자신이 쓴 모닝 페이지를 다시 읽지 않기를 권하고 몇 주가 지난 뒤로는 쓴 사람의 결정을 따르도록 한다. 재미 삼아 읽어보는 사람도 있고, 이유가 없으면 읽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다. 나는 내가 쓴 모닝 페이지를 다시 읽지 않는다. 거기엔 중요한 이야기보다는 흘려보냈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복기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어쩌면 두려운 걸 지도. 내가 애써 지우려 했던 그 시기의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이 거기에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모닝 페이지 쓰기 습관은 아직까지 지속하고 있다. 창조성을 기르는 데 도움을 받았냐고 물으면 모르겠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다만 어지러운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먼저 일어나 글을 쓴다는 게 내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글을 매일 쓰고 싶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미룰 때가 많았다. 모닝 페이지를 쓰면서 글을 쓰는 훈련을 하고 있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와 상관없이, 노트 한 바닥을 적어내며 끈기를 기르는 시간이 나를 조금씩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