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냄새

시베리아 열차 안의 일상

by 조재현

2019/12/18

눈이 감기면 자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 게 일상이 되었다. 기차의 덜컹거림은 백색소음처럼 꿀 수면을 해주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인터넷은 되는 시간이 줄어들어 역에 멈춰 서질 않으면 할 수가 없어진다. 사람과 풍경에 더 집중해야지.

맞은편 창문에서 뜨는 해의 따가운 빛에 눈을 떴다. 상의는 가로의 줄무늬, 하의는 세로의 줄무늬가 새겨진, 마치 죄수복을 연상케 하는 옷을 입은 러시아 아저씨가 이미 일어나 차 한잔을 하고 있다. 반쯤 뜬 내 눈과 마주쳐서 인사를 했다. 통성명까지 했는데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죄수복같은 걸 입으신 아저씨.이름은 까먹었다ㅠ


아저씨의 휴대폰으로 번역기를 돌려서 얘기를 나눴다. 배경화면이 딸 사진으로 되어 있다. 딸 자랑은 번역기를 돌리지 않고 러시아말로 신나게 하신다.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아저씨의 마음은 알 수가 있을 것 같다. 자식의 사랑하는 부모님의 마음이겠지. 남들보다 사회적으로 늦은 나도 부모님의 자랑일까?

새벽에 기차 칸 사이에 걸어놓은 음식을 가져왔다. 물과 콜라는 얼어있었다. 귤을 먹으니 과즙이 슬러시가 되어있다. 이가 시리다.

아침은 혼자 먹었다. 러시아의 국민 라면이라는 '도시락'을 먹었다. 어릴 적에는 많이 먹었는데... 이젠 한국에서도 찾기 힘든 이 라면이 여기서는 흔하다.


뜨거운 물을 붓고 3분을 기다렸다. 먹기 좋게 익은 라면을 풀고 한국에서 가져온 젓가락으로 한입 넣었다. 맛은 뭐... 무난했지만 어릴 적 먹던 그 맛은 아니었다. 점심도 빵으로 대충 때운다.

유진이랑 재환이(한국인 남매아님)랑 사진찍으면서 놀기


오후에 20분 정도 정차하는 역에서 내렸다. 밖은 냉동창고 온 듯하다. 숨을 쉴 때마다 기침이 나온다. 폐가 시릴 정도다. 친해진 한국인 두 명(남매아님)과 사진을 찍었다. 안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끈끈해진 걸 느낄 수 있다. 한국에서 만났다면 친해질 수 있었을까? 시베리아 열차는 사람을 가깝게 만들어준다. 그것이 장점일까? 저녁은 옆칸에 있는 남매도 합류해서 같이 먹었다. 20살 친구가 가져온 스팸을 라면에 넣어 먹었다. 친구 센스가 있다.

사진작업중


밤이 되니깐 열차는 사람들로 꽉 찼다. 약간의 북적거림, 침대가 작아 통로로 지나갈 때마다 부딪히는 발은 기차 안을 사람 냄새가 풍기게 해 준다. 이틀째 기차에 있으니 얼굴이 낯이 익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젠 그 사람들과도 많이 얘기를 나눠야지.

사진작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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