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는 5분 정도 눈길을 달려 호스텔로 도착했다. 블라디보스톡과는 다른 동유럽 느낌의 건물들과 주황의 불빛 그리고 쌓인 눈은 나의 입에서 감탄사를 나오게 한다. 호스텔 문의 초인종을 눌렀다. '삐이--' 문이 열렸다. 신발을 벗고 계단을 올라가 리셉션에 도착했다. 잘생긴 금발의 러시아 남자가 인사해준다. 목소리마저 나긋하다. 안내를 하려고 일어섰는데 키도 190cm 정도이다. 여자 게스트가 왔다면 그 사람은 이 남자를 보면서 온몸의 추위가 다 녹았겠지?
방을 배정받고 지금 입은 옷을 벗어 빨래가 한가득인 빨래 봉지에 넣었다.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로 가서 기차에서 묵은똥을 쌓다. 아랫배가 가벼워진다. 드디어 샤워를 했다. 떡진 머리가 상쾌해질 때까지 감았다. 세 번을 했다. 바디워시도 듬뿍 묻혀서 몸을 씻었다. 여행할 때 가져온 때수건으로 몸을 밀기까지 했다. 온몸의 땀샘이 다시 숨을 쉬는 것 같았다. 30분 정도의 샤워가 끝나고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만지다 6시에 잤다.
이르쿠츠크의 번화가. 이른시간이라 사람은 별로 없다.
10시쯤에 일어나 인터넷뱅킹을 봤다. 여행자금을 위해 만든 적금이 만기가 되어 돈이 들어왔다. 통장에 찍힌 돈을 보니깐 흐뭇하다. 그리고 미뤄뒀던 결제들을 했다. 그러던 중 덩치가 꽤 있는 한국 남자와 인사를 했다. 같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그가 정감이 간다. 그는 대구 출신이라고 말했다. 일정을 물었는데 혼자서 이르쿠츠크 명소 두 곳을 갈 거라고 한다. 같이 가도 되는지 물었다. 그렇게 그와 오늘을 일정을 같이 했다.
그와 통성명을 했다. '권도익'이라고 하신다. 나이를 물었는데 서른 살이라고 하신다. "저보다 형님이시네요. 저 29살이에요." "어 저 사실은 91년 2월생이에요." "네? 저는 91년 3월생인데... 한 달 차이네요." 약간은 어색한 나이 관계다. 다르지만 같은 나이. 우리는 여행하면서 많이 친해졌지만 계속 서로 존댓말을 썼다.
그는 일단 나를 데리고 식당에 갔다. 그곳은 뷔페식으로 식판에 음식을 고르는 곳이다. 가격도 엄청 저렴하고 맛도 괜찮다. 식사 후 우리는 '카잔 성당'이라는 곳을 가기로 했다. 밖으로 나와 구글맵에 찍힌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30분 정도를 기다렸는데 타려는 버스가 오지 않는다. "우리 그냥 막심 탑시다." 5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르쿠츠크의 명소 '카잔'성당
성당은 굉장했다. 진한 빨간색의 벽과 청록색의 지붕, 그리고 그위로 덮인 눈은 마치 겨울왕국의 성당 같은 느낌을 주었다. 성당의 색깔에 매료되고서 안으로 들어갔다. 신성한 음악이 나를 반기고 금색의 내부가 마음을 홀린다. 누구든지 이곳에 오면 기독교인이 될 법한 신성함이다.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옆에서는 아주머니가 무릎을 꿇고 기도를 절실히 하신다. 내가 신이라면 지금 이 순간 이 성당 때문이라도 그녀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줄 것이다.
'카잔'성당의 내부
성당을 나와 그의 추천으로 바이칼 호수 마을인 '리스트비앙카'라는 곳을 향했다. 그곳에 가는 밴은 점심 먹은 곳의 광장 근처에 있다고 한다. 광장을 몇 번 돌다가 마을을 가는 밴을 발견했다. 석양이 기가 막히다는 그곳은 오후 3시인 지금 가야 한다. 한 시간 정도면 도착이다. 밴은 미친 듯이 길을 달렸다. 엉덩이가 시트에 붙어지지 않는 느낌, 바이킹을 탈 때 나의 내장이 밑으로 쏠리는 그 알 수 없는 느낌을 오랜만에 느꼈다. 그런데 갑자기 차가 멈춰 섰다. 문이 열리고 20분 정도가 지난다. '추워 뒤지겠다.' 비속어가 마음속에 생각난다. 문제가 생겼는지 뒤따라오는 밴으로 사람들을 옮겼다. 그렇게 30분을 더 달려 '리스트비앙카'로 갔다. 그곳에서 본 바이칼 호수는 호수가 아닌 바다다. 도익 씨 말로는 바이칼 호수가 우리나라보다 크다고 한다.
바이칼의 마을 중 하나인 '리스트비앙카'
해가 구름에 끼여 제대로 된 석양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와 나는 호수를 걸어 다니면서 서로 사진을 찍어줬다. '여자랑 이걸 했어야 했는데...' 도익 씨한테는 바이칼 호수가 예쁘니 이런 아쉬운 마음이 생긴다. 너무 추워서 우리는 한 시간도 채 안돼서 이르쿠츠크로 돌아가는 밴을 탔다. 이르쿠츠크로 돌아와 그가 추천해준 기사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점심때 온 식당과 비슷하다. 늦게 와서 음식의 종류는 적었지만 맛은 괜찮다.
오늘 같이 동행한 '도익'씨
호스텔로 돌아와 사진을 보정해서 그에게 보내줬다. 그는 엄청 기뻐했다. 재능 기부한 듯한 느낌이 든다. 앞으로 같이 여행한 사람한테 사진을 선물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