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있는 말하기를 하고 싶어
01. 말하기를 왜 잘하고 싶나요? 얼마 전 트레바리 첫 모임에 갔다가 좋은 질문 하나를 건졌다.
"말하기를 왜... 잘 하고 싶냐고?" 학창시절 국어 선생님이 물어봤을 법한 질문 같은데 어른이 되어서는 정말 처음 들어본 질문이었다. 잠시 글 읽는 걸 멈추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말하기를 잘하고 싶은가? 왜?'
02. 처음에는 멋없는 답변들로 머리가 꽉 차버렸다. 똑부러지게 말하고 싶어서. (똑똑해 보이고 싶으니까)
설득하고 싶어서. (내가 말하는 바를 상대에게 잘 이해시키고 싶으니까) 대표님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조리있게 말하고 싶어서. (상급자 앞에서도 똑부러지게 발표 잘하고 싶으니까) 팀원들에게 내 생각을 잘 전달하고 싶어서. (키를 잘 잡는 선장이고 싶으니까) 날것 그대로 적어볼수록 멋이 없다. 그래. 솔직해지자. 그냥 똑똑하고 야무진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다.
03. 그 때 두 번째 질문이 나를 또 때려눕혔다.
'그동안 '말하기'가 무엇이라고 생각해왔나요? 말하기는 내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어떤 영역을 차지하고 있나요?' 말하기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이었다. 그제서야 머리가 돌아갔다.
04. 우선 내 입술에서 나오는 '말하기'를 구분했다.
설득, 비판, 사랑, 칭찬 4개의 단어로 좁혀졌다.
그리고 이 단어들을 묶었다.
1) 온탕 : 칭찬, 사랑
2) 냉탕 : 설득, 비판
온탕이든 냉탕이든 그 밑바탕에는 '경청'이 잘 작동해야만 한다.
05. 온탕과 냉탕을 조금 더 또렷하게 정의할 순 없을까?
1) 온탕 : 개인적 말하기
2) 냉탕 : 사회적 말하기
나의 경우,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다시 첫 질문을 가져와보자. 나는 말하기를 왜 잘하고 싶을까?
06. 개인적 말하기는 가족, 친구, 연인과의 시시콜콜 일상 대화를 뜻한다. ‘친밀감의 도구’로 작동하는 것이다.
때문에 사랑이니 칭찬이니 따스한 단어들이 먼저 떠올랐던 것인데.. 각자 하루를 마치고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생각과 고민을 했는지 일상을 나누는 대화에서 가까운 사람들과 관계를 돈독히 지킨다.
이것은 개인적 말하기의 효능이었다. 하지만 때론 실수한다. 가까운 사이에서 '친밀감'을 무기로 오지랖을 부리거나 비교의 말들이 불쑥 올라올 때가 있지 않은가. 그럴 땐 사회적 말하기에서 당연히 지키는 '매너'를 개인적 말하기에 빠르게 적용해야 한다. 안다. 실천은 어렵다. (오늘도 엄마와 툴툴 거리며 배달을 시켜먹네 아니네 씨름을 하고 나왔다.)
=> 결론 : 개인적 말하기의 목적은 서로의 삶을 보듬고 사랑하기 위함이라는 것. 목적을 잊지 말자.
07. 사회적 말하기는 협업을 통해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함이다. 때문에 일하는 과정에서 대화가 어려워도, 서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려는 '태도'만 있다면 서로를 믿고 끊임없이 말하기를 노력하는 편. 실제 사회적 말하기는 빠른 총알 만큼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가장 효율적인 도구가 되어준다. 그러나 계속 어긋나 한쪽이 포기하게 되면? 순식간에 일뿐 아니라 관계까지 어려워지는 것이 사회적 말하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청'이다. 말하기 전에 나의 생각을 끝까지 따라가며 잘 정리해야 하고, 상대 말에 잘 경청해야 한다. 그 다음은 '우리의 말하기’를 끝까지 신뢰할 것. 대화하다 보면 결국 최선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08. 그러나 현실에서는 늘 기획자-디자이너-대표님-클라이언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게 된다. 각자의 주장-레퍼런스-설득 또는 대표나 클라이언트보다 반보라도 앞선 생각을 하려고 노력한다. 전전긍긍하거나 허를 찔릴까 긴장하게 된다. 하지만 꽤 행복한 사회적 말하기의 영역도 있다. 친하게 붙어서 일하는 동료와 밥 먹으며 대화도 많이 하고 생각의 결을 맞추는 작업을 할 때가 그렇다. 대표나 클라이언트는 어쩔 수 없이 어려운 시어머니 같다고 생각하는 걸까? 어쨌든 클라이언트/대표님은 ‘쩐주’이므로 이들과의 대화 역시 최선의 결과를 달성하는데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의 생각을 예측하고 반보 앞서가보려는 노력은 필요하나, 쫄지 말자.
⇒ 결론 : 사회적 말하기의 목적은 협업을 통한 최선의 결과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러나 저러나 우리는 한 배를 탄 사람들. 목적을 잊지 말자.
09. 말하기의 영역을 구분하고 각 목적을 나눠보니 '나는 왜 말하기를 잘 하고 싶은가?'에 대한 답이 정리된다. 잘 살고 싶어서 그렇다. 그럼 잘 사는 삶이 뭔데? 군더더기 없이 심플한 삶이다. 트레바리 클럽장인 자영님은 수영하는 자신과 물고기의 움직임을 비교하며 대체 뭐가 다를까?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물고기는 수영할 때 자기가 딱 필요한 근육만 써서 수영하는 모습이 우아한 거라고 말씀하셨다. 말도 삶도 단순하고 우아하게 살고 싶다는 것. 그것이 내 새로운 추구미.
10. 이 글을 시작한지 2주가 흘렀다. 트레바리를 시작한지 한 달이 되었다. 요즘 나는 말하기를 잘 하고 있나? 부끄럽게도 여전히 부모님과 장녀의 필연적인 투닥거림 속에서 산다. 배운 것이 습이 되려면 시간이 걸린다. 까먹지만 말자. 아차차하고 선을 넘을 것 같을 때 "지금 이 말하기의 목적이 뭐지?" 스스로에게 묻자.
냉탕 온탕을 왔다갔다하는 대화라 할지라도 중심을 잘 잡고 대화한다면 어제보다는 1%라도 더 목적에 가까운 말하기를 하고 있겠지! 그럼 어느새 사랑과 존중을 바탕으로 말하기를 자연스레 잘 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