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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갭이어 일시중지

취뽀했습니다.

by 하모니블렌더

01. 내일은 첫 출근날. 동네방네 취업했다고 소문내기보다 브런치에 조용히 글을 쓰며 갭이어와 이별을 한다. 2024년 9월 13일. 퇴사 후 나의 백수 생활을 '갭이어'로 규정했다. 자유로운 시간에 안전한 울타리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동시에 언제든 도망갈 명분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바빴다. 퇴사 후 12월 말까지 끝나지 않은 프로젝트, 바지 사장으로서의 법인 업무, 그리고 가족이 오래 머물 집을 구하느라 마치 내가 결혼이라도 한듯 A to Z 발벗고 나섰다. 장녀의 책임. 나 아니면 누가해. 이런 마인드로 퇴사 후 3.5개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나의 갭이어가 시작되었다.


02. 2025년 1,2월. 퇴사한 회사로부터 좋지 않은 소식을 들었다. 상황이 생각보다 안 좋았다.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2월 중순이 되어야 마음이 괜찮아졌다. 전전긍긍한다고 해서 상황이 좋아질 것 같지 않았다. 기다리기로 했다. 설 연휴가 있었다. 퇴사 후 2월까지 스스로 칭찬하고 싶은 것은 기획자 모임인 '업계동무'에서 브랜드 디깅을 열심히 했던 것. 불안함 때문에 스터디를 덥썩 물은 것도 사실이지만, 자연스럽게 생기는 기회들을 놓치고 싶진 않았다.


03. 2월 중순. 나의 불안한 촉은 건강을 향했다. 원래도 갭이어 기간 동안 내과, 치과, 산부인과 등 기본적인 건강검진을 해야했다. (작년에 일 핑계로 건강검진 안 한 사람.. 나..) 만성 소화불량, 빠지지 않는 뱃살 등 미뤄둔 건강검진을 하나둘 하며 평소 잘 가지 않는 산부인과, 유외과, 치과 등을 방문했다. 결론적으로 자궁근종2-3개를 발견했고 친구들과 수다를 잔뜩 떨다보니 자궁근종은 '여성의 감기'라 불릴 정도로 많은 이들이 겪고 있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지켜볼 수 있는 상황이라 1,2년 두고 경과를 보기로 했다. 평소 회사를 다니며 '왜 자꾸 불편하지' 싶었던 작은 부분들은 확실히 검진하고 넘어가야 함을 또 다시 느꼈다. 그래. 사람있고 일 있지. 일 있고 사람 있는 것 아니다. 건강이 자산(!) '스트레스가 근원입니다'와 같은 당연한 말들 앞에 앞으로 나 자신을 더 챙기며 살겠다고 다짐하는 한 달이었다. (치과는 끝까지 미루다 6월에 갔다. 스케일링만 하고 왔다.)


03. 2025년 3월. 새해 계획과 만다라트를 완성했다. 매년 진행했던 라벤데어 워크숍을 가지며 어느새 내 단짝이 된 디자이너 H와 만나 각자의 워크숍 내용을 공유했다. 끈끈하게 붙어서 일했던 동료와 나란히 백수가 된 뒤, 호기롭게 각자의 인생 계획을 공유하다니.. 재밌었다. 3개월이 지난 지금, 만다라트는 가끔 쳐다보는 용도(?)로 쓰고 있지만 만다라트 기반으로 1년간 어떤 태도, 어떤 시간을 쌓고 싶은지 정리했다. 최소한의 실천을 하고 있다. (Ex. 갭이어 영상 지속적으로 만들기, 숏폼화, 주기적인 건강검진, 오픽공부 등) + 7년간의 업무 회고도 진행했다. (바쁘다 바빠. 유튜브에 남긴 것처럼 디테일하게 내 프로젝트를 하나하나 들여다본 시간이었다.)


04. 2025년 3월 말~4월 초. 자기소개서와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 '포트폴리오? 언젠가 만들어야죠. 조금 더 쉬고요. 유튜브 좀 하고요. 아직은...' 이런 변명들로 한껏 미루다보니 왠지 취업이 영원히 미뤄질 것 같았다. 최소 몇 달은 서류 지원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는데 시작도 못하고 있으니 마음이 지옥이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길 반복했다. (예.. 저는 원래 모닝페이퍼를 매일 쓰는게 꿈인 얼리버더 입니다만)


언제까지고 미룰 수 없었다. 업계동무 스터디(기획자 모임) 팀원들과 3월부터 미래일기를 썼는데 그때 꼭! 포트폴리오를 하겠다 호언장담을 했기 때문이다. 말한 게 있으니 시작이라도 하자 싶어서 막막했지만 어떤 컨셉으로 나를 설명할지, 그동안 해온 일들을 어떻게 정리해서 보여줄지 고민했다. 7년간 한 회사에서 일했다는 것은 포트폴리오를 7년간 만들어본 적 없다는 뜻. 안일했다. 꼭 이직을 하지 않더라도, 내가 해온 일을 틈틈이 정리해둬야 하는 이유를 알겠더라. 몇 번이고 마음을 가다듬고, 매일매일 동네 카페로 출근했다. (남들 눈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물 아래로 오리가 아둥바둥 미친듯이 물길질을 하는 것 같은 백수의 불안한 마음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카페 사장님이 날 알아보기 시작했다. 카공족이 되어갔다. 완벽보다는 완성을 목표로 그렇게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고칠것 투성인 문장도 일단 좔좔 써내려갔다. 대기업 지원도 해보자 싶어 그나마 가고 싶은 회사들을 추려 연습했는데, 왠걸..? 10,000자를 쓰란다. OMG.


05. 그렇게 4월은 회사에 하나둘 지원서를 넣었다. 문제는 '지원동기'를 명확히 쓸 만큼 운명적인 회사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몇 가지 기준을 삼고 회사를 찾아봤지만 200% 확신이 드는 곳은 없었다. 7년의 경력을 들고 새로 입사하는 곳이기 때문에 (자영님의 말을 빌려) 그 다음 커리어 씬에서 나는 어떤 깃발을 명확히 꽂고 싶은가가 화두였다. 아무 깃발이나 꽂긴 싫었다.


(변명이지만) 지원동기를 커스텀해서 각 기업 별로 제대로 쓰지 못한 채 그냥 저냥 채용 플랫폼에 자기소개서와 포트폴리오를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지원도 했다. 떨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확고한 지원동기 없이 지원은 안되겠다 싶어 5월은 '수정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하지만 더 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갭이어를 맘편히 보낸 날들이 아직 모자란다며.. 초침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조급했던 것이다. 그러다 4월에 일주일 정도 T님이 운영하는 브랜드 팝업 알바를 나가게 되었다. 알바를 하며 만난 친구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모델/연기 등을 하는 2030 친구들이 생계를 위해 팝업 행사를 나가는 동시에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간헐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 그치... 대행사를 하며 모델을 섭외해 촬영도 여러 번 했기 때문에 프리랜서의 삶이 뭔지 대강 알고는 있었다.) 열심히 살아가는 친구들을 보며 왠지 모르게 다시 힘을 얻었다. 그래. 나 돈 벌어야지. 30대 중반. 달리며 다시 일하는 감각을 익혀야지. 그래도 잘 쉬었지. 기획자로서 성장해가고 싶은 마음을 확인했고, 그 동기는 어디에 있는가 알아차렸다면 일을 해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일을 해도 되겠다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06. 2025년 5월.

- 생애 첫 트레바리 신청 => 돈 때문에 고민했으나 최고의 선택

- 자기소개서 보완 => 깔끔하게 레이아웃 정리정돈

- 주2-3회 약속 => 5월 1-2주차는 미친 스케쥴이었음

- 엄마와의 유럽 여행 유튜브 편집 시작 =>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급해짐

- 면접 제안 받기 시작 => 5월 막주차 면접 잡힘 => 합격


5월의 절반은 갑자기 약속이 쏟아졌다.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시간을 부여잡고 싶었다. (왜 이렇게 약속이 많아졌나 싶었는데 일단 직장인들이 쉬는 날이 많았다. 하하. 백수가 되면 쉬는 날을 셈하지 않게 된다.) "그래. 언제 당장 일할지 모르는데, 만날 사람은 다 만나자."하고 와다다 약속을 잡았다.

+ 자기소개서를 보완하며 채용공고를 인스타그램 피드 보듯 매일 봤다.

+ 나에게 물었다. 갭이어가 갑자기 끝나버리면 나는 무엇이 가장 아쉬울까?

놀랍게도 제작년 엄마와 다녀온 유럽 여행 편집. 그거 하나뿐이었다. 당장 외장하드를 꺼내 여행 영상을 쭉 훑었다. 엄마와 여행하며 시시콜콜한 대화들을 보고 있자니.. 역시 기록은 기억을 앞선다. 미루고 싶지 않았다. 5월부터 6월 초까지 총 3개의 유럽 영상을 업로드 했다.


07. 2025년 6월.

5월 막주차에 호다닥 면접을 보고 합격했다. 나는 이대로 다시 회사에 가도 되는가? 아쉽지 않을 자신 있는가? 물었다. 다행히 크게 고민이 안되었다. 왜? 일해야 하는 타이밍이라고 느꼈고, 기분 좋은 긴장감이 있었다. 무엇보다 면접을 준비하며 3일 내내 브랜드 디깅을 하다보니 원하는 직무인 인하우스 기획자로서 재밌고 치열하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에게 남은 시간은 단 2주. 어떻게 보낼지 고민 되었다. 호르몬 이슈로 1주는 날렸고, 남은 1주는 정리하는 시간으로 보내자며 2박 3일 파주여행을 급히 다녀왔다. 너무 가고 싶었던 북스테이 '모티프원'에 가서 갭이어와 이별을 하고 왔다. 이별의 방법은 별거 없다. 그냥 집에서 해야할 일들을 했다. 갭이어 이후로 시작한 월 회고를 했고, 그 주에 있는 트레바리 모임을 준빈하며 책 읽고 독후감을 써내려갔다. 숙소에 있는 방명록을 들춰보고, 연차를 낸 동생과 둘째날을 즐기며 마무리 했다. 초록초록 잎을 보며 자연에 휩싸여 마지막 마음을 회복했다.


쉬는 동안에도 '바운더리'가 중요했다. 유튜브 편집을 너무 하고 싶지만, 지금 애매하게 시작했다가는..? 끝날 게 분명했다. 언제 유튜브를 다시 시작할지는 모르겠으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저마다의 갭이어'가 아닌 '저마다의 갭'을 주제로 계속해서 그 주제로 나만의 이야기를 펼치고 싶다. 다행이다. 내가 애정을 쏟는 이야기를 발견하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갭이어'의 효능이었다. 그리고 지난 주에는 위독하신 친할머니도 뵙고 왔다. 거의 마지막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모든 시간을 '정리'하며 준비했다. 할머니를 봬니 정신은 또렷하나, 신체가 많이 쇠하신 걸 느낄 수 있었다. 손을 꼭 마주잡고 남자친구를 보여드리며 언제 나눌지 모르는 일상적인 대화를 했다.


08. 그리고 6월 15일. 입사 하루 전. 경력직으로 첫 이직을 한다. 떨리고 긴장된다.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도 앞선다. 하지만 '나만의 페이스'를 지키며 브랜드를 건강하게, 오래오래 키워내는 방향으로 일하고 싶다.

1) 브랜드 존재 이유가 확실한 곳

- 왜 지금 이 브랜드여야 하는가? 내가 관심있고, 열렬히 응원할 수 있는 브랜드(+카테고리)여야 함.


2) 지속가능한 기획

- 고객 가치/투자자 가치/함께하는 동료의 성장/사회적 가치

이 4가지를 기획의 원칙으로 두고,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브랜드를 키운다.


3) 동료와 밥 먹기

- 함께 성장하고 배우는 조직 지향.


이 3가지를 기억하며 입사한다. 끝점을 그리고, 바운더리를 설정하여 반드시 같은 그림을 그리며 나아갈 것. 그렇게 하나하나 성과를 내며 작은 것도 축하하는 팀십을 만들 것. 그렇게 세상이 필요로 하는 브랜드를 만들어가며 다채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것. 가보자.


09. 굳이 15일에 이렇게 긴 글을 또 한 번 남기는 이유는..? 기록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비록 퇴고는 못하겠지만, 입사 하루 전 나의 마음을 샅샅이 기록하고 싶다. 보풀이 일어난 슬랙스를 버리고, 새로운 슬랙스를 들였다. sometimes you win, sometimes you learn. 과거에 아쉬웠던 점을 뒤로 하고 또 새롭게 나아가려는 나를 그저 응원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치고 싶다.


10. 기획자로서 좋은 것을 만들어내고 싶다. 세상에 좋은 것을 당당하게 내어놓고 그 가치를 소비자와 교환하며 세상에 더 다채로운 삶을 제공하고 싶다. 다채로움도 연습이니까. 그 과정에서 세상에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는 선택들을 하며, 기획이라는 도구로 나의 뾰족한 커리어를 만들어보자. 어차피 1-2년 후에 세상은 또 바뀐다. 적응하며 나아갈 뿐. 지금 내가 하고픈 도전을 뒤로 미루지 말고, 하나하나 잘 쌓아보자. 비슷한 고민, 비슷한 시기를 보내는 누군가에게 작은 응원이 되길 바라며 남겨둔다. 미래의 내가 될 수도 있고! 히히. 고생했다. 첫 갭이어는 어정쩡한 감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가족/개인적으로도 해야할 것들을 하며 좋은 시간을 여유있게 누렸다. 다음 갭이어가 언제일지는 몰라도 확실한 건 더 잘 쉴 수 있을 것 같다. 갭이어. 그동안 고마웠다. 이 세글자 덕에 방황할 뻔 한 마음을 여러 번 부여잡고, 긍정적으로 이 시간을 잘 통과할 수 있었다. 역시 네이밍 + 정의의 힘은 세다. 언어의 힘을 또 한 번 느끼며 약 9개월 간읜 쉼을 멈춘다. 퐈이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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