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여는 셀프 질문
두 달 만에 브랜드 런칭을 했다.
처음엔 이게 맞냐며 늘 의문을 가지지만, 불가능한 것이 '되게' 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어찌저찌 빡세게 달렸더니 런칭이라는 1차 목표에 다다랐다.
다음 목표는 매출과 고객의 좋은 피드백. 사실상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다.
이직 후 약 8개월이 흘렀다. 네 달 있으면 1년이라니..!
회사에서의 6개월이 마치 1년 반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업무량도 많았고, 이래저래 여러 일을 많이 겪고 본 덕(?)에 2주 차로 입사한 동료와 깊은 전우애를 나누며 일하고 있다. 그렇게 일로 가득찬 하루를 보내다가 2025년과 잘 안녕했고, 2026년도 여전히 일을 하며 지내고 있다. 새해가 된다고 모든게 나아지는 것은 아니었으나 적응을 한 것인지 일하는 동료와 상황이 확확 바뀌어도 나름 잘 지내고 있다. 여기까지가 요즘 근황.
'일'로 가득찬 주말을 보내고 있지만, 토요일 밤 10시 만큼은 글쓰기 모임을 하며 나의 내면을 돌아보기로 한다.
한 달 전, 지인과 대화를 나누고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다.
의미와 성장 없는 인생은 과연 무의미 할까?
얼마 전 스치듯 본 릴스에서 한 전문가가 인생에 '의미'를 찾는 것은 무의미하다 말했다.
인간의 뇌는 어느 순간부터 과잉된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인간이 태어난 '의미'가 없는데, 그것에 대해 '의미를 찾는 순간' 인간이 불행해질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었다. 의미를 찾기보다, 굉장한 확률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며 인생을 '축제'처럼 즐겨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글에도 적었지만 "신이 날 만든 이유는 있어. 다 이유가 있겠지."라고 믿는 사람으로서 저 말을 들었을 때 의문이 들었다. 혹시 다른 사람들은 나만큼 인생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며 사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늘 내 안에 있다.
의미에 굉장한 '의미 부여'를 하는 나에게 납득되는 언어는 아니었지만, 흥미로운 포인트였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있고, 아닌 문제가 있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답'을 찾으려 애쓰는 게 오히려 쌩고생일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 답이 없는 문제이기 때문.
무튼 이 질문을 던져준 지인은 무의식 예찬론자 였는데, 그 대화 덕에 새해를 시작하며 새로운 관점을 하나 얻게 되었다. 나는 엄청나게 <의미 부여>를 잘 하는 사람이고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이라 그 두 가지 흐름에 없으면, 꽤 불안해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실은 알고 있었다. 선물 하나하나 고를 때마다 '의미 부여' 짓기를 좋아하고, 왜 이 선물을 골랐고 엽서를 골랐는지 늘 편지에 쓰는 사람이 나였다. (하하) 심지어 어떤 일을 할 때에도 이것은 내 인생에 어떤 의미인지 고찰하게 되고 의미가 잘 정의되지 않으면, 그 선택을 하지도 않는다는 걸.
'성장'도 마찬가지. 내가 너무 너무 괴로운 상황이어도, 그것이 '성장'을 가져다주는 일이라면 그 자리에 묵묵히 또는 욕하면서도 버텼던 것 같다. 나 스스로를 갉아먹을 수도 있는 선택이라는 건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의미'와 '성장' 흐름에는 내가 존경하고 따르는 '사람'이 있었다. 정확하게는 '선생님' 같은 존재가 늘 있었다. 10대에는 뉴질랜드 교포 선생님이 그랬고, 20대에는 영어 학원 선생님이었던 M코치님이 그랬고, 30대엔 랜선으로 기획을 가르쳐준 Y님이 그랬고, 지금도 지속적으로 팔로우하는 커뮤니티의 장을 그런 '선생님'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 7년간 따랐던 대표님은 첫 면접을 보고 회사에 다니는 순간부터 내가 엄청나게 존경하고 따르던 어른이었다. 끝에 결과가 어땠던 간에 7년을 한 회사에 있었던 이유는 명확한 성과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좋은 어른과 사람들 속에 둘러쌓여 성장하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현 회사에서도 마찬가지. 이제는 자본주의를 조금 더 이해하며 '성과지향적'인 부분이 생겼지만, 윗 상사 중 존경하는 사람을 내 레이더망에 두고, 이번 회사에서 만난 나의 일 선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회사에서 이런저런 힘든 일이 터져도 꿋꿋하게 버틸 수 있는 것은 내가 따르고 싶은 어른이 근처에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답답할 땐 찾아가 고민을 깊이 털어놓기도 했다.
1월 초 이 대화에 대한 답을 스스로 내려보고 싶었다.
1) 대체 나에게 의미있고, 성장한다는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게 왜 그렇게까지 중요한지?
2) 삶을 살아오며 의미와 성장, 두 흐름에 타지 않았을 때 내 마음은 어땠는지?
3) 의미와 성장으로 '정당화' 했던 일은 무엇이었는지?
다음 글에서는 조금 더 내면을 돌아보며, 위 글을 완성해보기로 하자.
최근 이런 고민을 가지게 되면서 심리학 전공인 친구와 얘기를 나눴는데, 심플하게 이렇게 말했다.
"그 선생님들이 너가 닮고 싶은 사람인 건 아니고?" 그것도 맞다.
늘 내가 따르던 사람들은 내가 닮고 싶고, 가닿고 싶은 어른들이었다. 인간의 모방 이론에 딱 떨어진다.
공대생이었던 남자친구는 (ST 답게) 의미와 성장 두 가지 모두 인간의 본성이라고 답한다. 그래. 내가 이상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 대화의 결말은 결국 무의식적인 패턴으로 생존 본능, 각자에게 맞는 성공 방식으로 늘 선택을 하는 어떤 비슷한 무의식의 패턴이 있다는 것이다. 이걸 의식하고 사는 삶은 조금 더 자유롭게 스스로 사유하고 상상할 수 있다고 한다.
의미와 성장. 그 흐름을 타며 나름 인생의 선택을 해왔는데,
그것은 정말 <나를 위한 선택이었는가> 돌아보고 싶다.
나는 어떤 것 때문에 늘 의미를 짓고, 갖다 붙이고 늘 성장을 찾아 헤맸을까? 어떤 때는 그렇게까지 성장하는 환경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애쓰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왜 그 자리에 계속 있었던 걸까?
경쟁사회가 특징인 한국 사회에서는 '이 정도는 되어야해'라는 어떤 기준이 꽤 뚜렷한 편인데, 집단 무의식으로 정치든 경제든 모든 사고가 '종교화'되는 특성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아마 내가 의미를 부여하고, 성장해야 한다는 그 방향성조차 그에 의해 영향을 무지 받았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오늘의 마지막 생각은 남자친구와의 대화로 종결된다.
우리가 당장 '생존'을 걱정하지 않는 삶이라, 더더욱 이런 '사유'를 하게 되는 것이고.
의미와 성장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 이상한 게 아니다.
다만, 그 의미와 성장은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그걸 누군가에게 '강요'하는 삶은 옳지 않다.
나만 해도 그렇다. 첫째로서 이렇게 사는 게 맞아. 쟤는 왜 생산적인 일을 안 하지? 따위의 질문은 꽤나 폭력적인 언어인 것. 하지만 정신차리고 나의 언어를 객관화 해보면 그런 잣대를 나 스스로에게도 들이밀고 있던 적이 많다. 당분간 이 주제에 대해 조금 더 깊게 질의응답을 해봐야겠다.
누군가 이러한 질문을 더 고차원적으로 할수록 의식이 깊어진 것이고. 그것은 곧 배부른 자의 삶이라던데 (=귀족의 삶, 상위 n%의 삶) 일단 질문을 한 이상, 2월 한 달 동안 조금 더 고민하고 관련된 글을 써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