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담

우리는 왜 매일 씻어야 하는가.

by 하모니블렌더

24시간이 지나 다시 새벽 2시를 향한다.

불과 30분 전에 남자친구와의 통화를 끝내고 바로 자려 했다가 역시 난 밤에 샤워를 해야돼- 하며

귀차니즘을 이겨내고 마치 군필자처럼 후다닥 씻고는 몇 분 만에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조명등을 켜고, 노트북을 열고 다시 브런치에 접속했다. 아, 훌륭하다.

스스로 격하게 쓰담쓰담 중이다. "잘했다."

마치 드라마 '도깨비'에서 깨비 아저씨가 은탁이에게 머리를 눌러가며 쓰담쓰담 해주듯 말이다.



오늘의 일과는 당연히 빡빡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떠한 시간들로 채워지긴 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스물 일곱살, 캐나다 워홀을 다녀온 지 2달이 넘어가는 백수. 2달하고 일주일이 나가는구나.

그동안은 시간이 나를 돕는다는 생각을 꽤 했는데 실은 1년정도간 시간이 나를 질질 끌고가는 느낌이다.

그래, 솔직히 그렇다. 내가 원하는 만큼의 나로 살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고군분투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가혹하지만 그 말이 맞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의 시간을 감사하고 사랑하는 이유가 있다.

감사했고, 후회했고, 웃었고, 울었던 시간들 속에서 나는 여전히 나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미숙한 존재다. 17살 때 상상하던 27살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을만큼 연약하고 미성숙하다.

부끄러운 얘기인데 사실 오늘 글을 쓰지 않고 자려했다. 어제에서 오늘로 넘어왔던 새벽에 썼던 글이니까, 날짜상으로 난 22일에만 글 하나 띡- 올리면 그것도 1일1글이 아닌가 하는. 불과 24시간만에 1일1글을 포기하려했던 것이다. 미숙한 존재, 불완전한 존재, 합리화의 대가(..)인 나다.



그러다가 샤워를 했는데 쏴아아- 물이 떨어지고, 내 몸은 자연스레 자유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응? 뭔 개소리?

아니, 정말이다. 내가 아니라고 해도 아마 내 몸과 영혼은 샤워를 할 때마다 내가 의식하는 그 어떤 것보다 자유로움과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느낌을 나는 "아, 좋다. 시원하다." 정도로 축약해 버린다.



나는 크리스찬이다. 매일 내 존재가 '새롭게 된다'는 게 맘처럼 쉽지가 않을 때가 많다.

한 번, 두 번 크게 변했다고 해서 사람 자체가 완전히 달라지기란 어렵다. 분명 놀랄만큼 바뀌었는데도 100% 바뀌지 않는 걸 보면 하나님이 100% 완벽하다 할지라도 내가 1%밖에 안돼서 그런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이른다. 허나 진실은 '하나님과 함께면 바뀔 수 있다. 그대로여도 날 받아주시는 분이다. 그러나 공을 들여, 평생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다'라는 것.


"왜 매일 새롭게 되어야 하는걸까?"

"왜 매일 샤워를 해야 하는걸까?"


오늘 갑자기 샤워 중에 드는 생각. 뭐 평소에도 했을 법한 생각들인데 유독 그 생각이 다시 머물렀다.

이유는 1. 내가 집에 있든 밖에 다녀왔든 노폐물은 어떤식으로든 존재한다.

2. 새로운 느낌이 뽀송뽀송하고 개운하고 좋다.

3.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기에 최적의 상태다.

씻으면서 생각난 이유는 1번 뿐이었는데 이유를 몇 가지 더 대라면 2,3 번의 이유도 있겠다.


그렇다면 왜 매일 새롭게 되어야 하는걸까?

1. 내가 어디에 있든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1%의 나쁨도 없을 순 없다.

노폐물이 어떤 식으로든 파고들려고 한다는 전제 하에. 아. 물론 좋은 것도 있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늘 진실된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고, 상처받지 않고, 주지 않고 살아가긴 힘들다.

사람은 어떻게든 영향을 주고 받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2. 새롭게 된 느낌이 감사하고 좋기 때문이다. 죄책감이 아닌, 남을 향한 부러움이 아닌 감사와 사랑이 생긴다.

3. 걸맞는 사람, 걸맞는 옷이 되기 때문이다. 왕의 자녀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는데 그 자녀가 왕의 자녀다운 자녀가 아니라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수 있을까? 그냥 자녀에서 공주, 왕자가 되는 날. 그들은 공주와 같은, 왕자와 같은 마인드와 행실을 갖추어야 한다.

사실 결론은 이거다. 내가 매일 샤워를 하는 이유, 매일 하나님 앞에 새로워질 필요가 있는 이유는

여전히 내 삶엔 노폐물이 존재하고, 노폐물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 그리고 샤워를 하고, 새로워질 때마다 나는 행복하고 좋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 계속.



그러니까 아무리 피곤해도, 하루에 한 번. 샤워는 꼭! QT도 꼭! 이왕이면 1일 1글도 꼭! 지켜가자. 홧팅!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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