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행복해져요
오랜 시간 운영하면서 매번 똑같이 들었던 레퍼토리가 있다면 “우리 아이는 만들기는 잘하는데 그림을 못 그려요”라는 말이다. 아이들은 성장 과정에 있으며, 부모님들은 부족함 없이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싶은 마음에 걱정을 하고 나도 그랬기에 이러한 마음에 정말 공감한다.
보통 사교육 기관에 아이들을 보낼 때 부족한 점을 채우려는 목적을 가지고 방문하 듯 나도 딸이 초등학생 때 여러 곳의 사교육 기관에 가서 테스트와 상담을 받은 기억이 있다. 테스트를 받고 상담을 받을 때 마찬가지로 듣는 말은 어느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 지이다. 그 당시 아무런 질문 없이 “결함”은 채워야 한다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시간이 흘러 내 딸이 성인으로 성장하고, 나 또한 미술 학원 선생님으로서 많은 아이들을 지도하며, 부족함의 본질에 대해 질문이 싹을 트기 시작했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자는 말 뒤에는 완벽함이라는 기준이 존재한다. 그 완벽함이란 과연 무엇이고 그 실체가 무엇일까?
도안이 있고 그 도안에 따라 완성된 결과물이 명확한 경우, 우리는 그 결과를 완벽하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설계도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가구나 장난감은 그 도안과 일치할 때 비로소 완벽하다고 여겨진다. 도안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종종 부족함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나는 사람에게 완벽함이란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인정받는 가치를 기준으로 삼는 신념이나 이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부족함은 인간 본연의 불안정성에서 비롯된 지극히 자연스러운 상태이다. 내 아이의 경험으로 봤을 때도 내가 느낀 부족함은 그 아이의 기질이었고 그 당시 부족하다고 느낀 것들 중 일부는 자라면서 생각지도 못한 모습으로 성장했다. 어쩌면 그 당시 아이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부족했는지도 모른다.
몇 해전, 함께 수업을 했던 3학년 남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그리기에는 집중하지 못하고 만들기를 좋아했다. 처음에는 학원 커리큘럼에 있는 만들기 수업을 열심히 했지만, 점차 스스로 만들고 싶은 것들을 구상하며 매우 섬세한 작업을 이어갔다. 교실 안에서 시작되는 수업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늘 생각하며 그 생각을 교실로 가져오는 모습이 대견했다. 그의 결과물은 훌륭했고, 작업하는 과정에서 마치 작가처럼 몰입하는 모습은 인상이 깊었다. 만든 작품들을 바라보는 동생들에게 그 아이는 최고의 형이 되기도 했다.
미술을 좋아하면서도 만들기를 선호하는 학생이 있으면, 그리기로 유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미술을 잘하는 학생을 판단할 때, 종종 기술적인 측면, 특히 그리기 능력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잘한다와 완벽이라는 기준은 정말로 불분명하다. ‘부족함’, 즉 만들기를 좋아하고 그리기를 싫어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타고난 기질이며 성장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런 과정 안에서 잘하는 부분을 더 바라봐주고 인정해 줄 때 더 큰 성장을 하기도 한다.
내가 부족함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나의 착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단순히 인식하고 연민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할 부분일 뿐이다. 부족함보다는 행복과 만족감에 초점을 맞추면, 충분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나 자신과 주위 사람 모두의 잘하는 점을 더 바라보며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 되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