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파스 색 같은 아이들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세 명의 아이들이 활짝 웃으며 미술학원에 들어온다. 아이들은 모두 같은 나이와 같은 성별의 귀여운 아이들이다. 평소처럼 오늘 수업의 주제를 설명해 주었다. 같은 주제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한 아이는 "네! 선생님"이라고 외치며 주저 없이 그리기 시작하는 반면, 다른 아이는 머뭇거리며 주위를 계속 둘러본다. 또 다른 아이는 "다른 거 그리면 안 돼요?"라고 묻는다.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하면서 매번 느끼는 점은 “어쩜 모두 그렇게 다를까?”이다. 저마다 사람들은 정말 모두 다르다. 하지만 아이들은 솔직하게 말하고 표현하기에 그 다름이 더 눈에 보인다. 각각 다르기에 수업 접근 방법도, 활동 내용도, 심지어는 주고받는 대화도 수업 진행을 위해서는 조금씩은 달라야 한다.
오늘을 예로 들어보면, 용감하게 쓱쓱 그려나가는 아이에게는 섬세함을 강요하기보다는 부드럽게 바라보며 천천히 그림을 그려나가게 했다. 머뭇거리는 아이에게는 시작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며 다정하게 다가갔다. 그 아이는 중간중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고치기를 반복했지만,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점점 완성에 가까워졌다. 아마도 머뭇거리는 마음에 용기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다른 주제를 원하는 아이에게는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원하는 내용으로 수업을 이어나갔다. 그날의 주제를 거부한 아이에게는 마음속에 분명 다른 이야기가 숨어있었기에,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아이는 본인이 정한 주제로 시작했기에 다른 때보다 정성껏 그려나갔다.
사실 아이는 아직 미숙하고 미술학원도 한 공동체이므로 각각의 아이의 말이나 마음을 무조건 다 수용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때로는 아이의 성장을 위해 정해진 내용을 가르쳐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미술학원을 오랜 시간 운영하면서 느낀 점은, 머뭇거리는 마음이나 싫어하는 마음, 그리고 아이의 다름을 알아차려주고 수업의 결을 살짝 바꾸는 것만으로도 큰 차이를 만든다.
오늘의 세 아이들은 각기 다른 시작을 했지만 하나둘 완성을 향해 나아갔다. 같은 절차를 따랐으면 결과물은 훌륭했을 수 있지만, 아이의 다름을 살피지 않고 수동적인 움직임에 몰두하다 보면 결국 같은 결과물만 나왔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수업이 아이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모두 자기만족, 행복, 편안함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닐까?
다양한 아이들의 그림을 모아 두었을 때 한 작가의 잘 그린 전시를 보는 듯한 느낌보다 서투른 부분이 있더라도 각자의 모습이 담긴 그림이 훨씬 더 보기 좋다고 생각한다. 저마다 다른 모습의 아이들에게 그림과 함께 행복해지는 마음을 전달해주고 싶다. 앞에서 이끄는 어른의 모습이기보다는 아이가 그대로 표현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지지자가 되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