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현선 Mar 31. 2024

'싫어요'

마음이 빠진 그림은 '싫어요'

문을 열고 즐거운 발걸음과 함께 볼이 발그스름한 귀여운 모습의 아이가 급하게 들어온다. 미술학원을 올 때마다  하고 싶은 것들이 한가득 인 아이는 들어오자마자 “오늘은 뭐해요?"를 큰 소리로 외친다.


“OO이 왔어? 오늘은 아기동물을 그릴 거야. 재밌게 한번 그려보자.”


그 아이는 말이 끝나자마자 “저는 싫어요!"를 크게 외친다. 나는 ‘싫어요'라고 말을 하는 아이들이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멋있다. ‘싫어요'는 그만큼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진정한 흥미를 발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싫어요’라고 외치는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내는 순간 엄청난 집중력과 몰입을 보여 내가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결과물을 만드는 모습도 종종 보았다.


아이를 바라보며 “그럼 하고 싶은 거는 뭐니?”라고 물었다.


아이는 학원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여러 재료를 조금씩 만지면서 만들고 싶은 것들을  이야기한다. 아이는 현재 시중에서 판매가 되는 움직이는 장난감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얘기하고 그저께 유튜브에서 본 소품도 만들어 보고 싶다고 재잘재잘 말한다.


미술은 수학 문제처럼 명확한 정답이 없기 때문에, 미술 선생님은 싫다면 다른 주제를 찾아 수행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마음이다. 그림에서 주인공은 아이들이고, 나는 그들의 조력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 그 아이가 원하는 것들은 마법학교가 아닌 자그마한 미술학원에서 실현하기가 어려운 것들이다.


타협점을 보고자 움직이지는 않지만 모형으로 만들어보거나 그려보는 것을 제안했지만, 아이는 다시 한번 큰소리로, ‘싫어요'라고 말하며 시무룩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순간 나의 마음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여러 가지 시도를 더 해보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아이에게 오늘은 아기 동물을 그려보고 다음 주에 다시 더 생각을 해보자고 설득을 했다. 아이는 망설이다가 책상 위에 올려진 아기 곰 사진을 집고 의자에 앉았다.


아까와는 달리 조용히 나의 설명을 잘 들으면서 연필을 사각사각 쓱쓱 멋지게 소묘로 아기곰을 그려나갔다. 결과물도 옆에 아이들이 감탄할 정도로 멋있었다. 아이가 뿌듯해할 거라는 나의 생각과 다르게 아이는 수업 끝나기가 무섭게 그림을 쳐다도 보지 않고 집으로 간다며 일어섰다.


“멋진 그림 가져가야지” 하고 불러 세웠다. 아이는 들은 채 하지 않고  빠르게 문을 열고 도망간 듯 나갔다. 그 모습은 흡사 지겹고 재미없는 곳에서 탈출하는 모습이었다. 순간 아차 싶었다. 다른 이들이 감탄할만한 멋있게 잘 그린 그림이지만 정작 ‘아이’가 빠져있는 그림이었다.


나는 잘 그린 그림은 주변에서 ‘잘’ 그렸다고 말하는 그림보다는 과정 안에서 아이의 주관과 마음이 그대로 ‘잘’ 담긴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관람자의 입장에서 그림을 바라볼 때 아이들 마음이 얼마나 잘 담겼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오랜 시간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지켜본 나는 자신 있게 확신할 수 있다; 아이들이 그리고 만드는 내내 마음은 늘 함께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이 깃들여진 그림을 바라볼 때 누가 뭐라고 해도 만족한다.


아이의 마음은 모른 채 완성작만 보고 주위에서 칭찬을 해준다면 아이는 온데간데 사라질 것이다. 주변 칭찬의 말들에 점차 길들여진 아이들은 ‘내’가 주체가 되어 그리는 법을 까맣게 잊어버린 채 완성과 인정에만 몰두하게 된다. 그런 경험이 빈번해지면 아이조차 자신의 마음은 모른 채 그저 내 완성작을 바라보는 관람자가 되지 않을까?


마음을 항상 염두에 두고 수업을 진행하려고 하지만, 결과 지향적인 교육과 사회에 오랜 시간 길들여진 나역시 가끔은 아이의 결과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는 도망가는 아이의 뒤를 따라갔다. 뛰는 와중 일주일 전에 포켓몬 카드를 만들고 싶어 종이서랍장에서 반짝이 종이를 찾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뛰어가는 아이를 붙잡고 “우리 다음 시간에는 선생님이랑 포켓몬 카드를 만들자.”라고 말을 걸며 다음을 기약했다. 아이는 너무 좋아하며 새끼손가락을 두 번 걸고 다시 한번 웃는 얼굴로 집으로 돌아갔다.

이전 02화 그럼 바느질해 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