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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현선 Mar 24. 2024

그럼 바느질해 볼까?

좋아하는 것을 하나씩 찾아가는 너를 바라보며

목요일 오후, 한 아이가 커다란 책가방을 메고 학원에 들어왔다. 쌀쌀하고 어두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환한 미소를 가득 띠며 성큼성큼 미술학원 안으로 들어왔다.


그 아이의 어머니와 처음 상담했던 날이 떠오른다.


학원을 오픈하기 1시간 전 어느 날,  한 아이의 어머니가 방문 상담을 오셨다.  평소와 다름없이 아이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았다. 아이의 성향은 어떤 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 지, 미술학원을 다니면서 얻고자 하는 바가 있는지.


“만들기 위주의 수업을 하고 싶어요.”


어머니께서 답변하셨다. 우리 학원은 아이들의 필요에 따라 회화 수업과 만들기 수업의 비율이 각자 다 다르다. 요즘 들어서는 그리기 실력 향상에 도모하는 회화 수업의 요청이 많았는데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만들기 수업'이었다.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가 그리기, 만들기를 모두 좋아한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가 좋아하는 걸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미술학원을 오게 됐다고 말씀해 주셨었다.


오늘의 수업도 마찬가지로 좋아하는 것을 하나씩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일단 전 시간에 완성 못한 ‘다가오는 봄’을 주제로 그림을 이어 나갔다. 아이는 다시 한번 봄에는 맛있는 도시락이 최고라고 하면서 정성껏 그렸었다.  도시락 위에 흩날리는 벚꽃 표현이 더해져 한결 멋진 작품을 완성했다.


그림 그리기를 끝내자마자 아이는 “선생님 저 이제 그만하고 친구들 그리는 모습을 구경할래요.”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건 그리기 말고 다른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아이만의 귀여운 표현이었다.


“흠 그럼 우리 한번 바느질할까?” 넌지시 물었더니, 아이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흔쾌히 응해주었다.


천에 예쁜 동물을 그리고 오려서 한 땀 한 땀 바느질하고 솜을 넣어서 아이는 인형을 만들어 나갔다. 쉬운 과정은 아니지만 만드는 내내 즐거워하며 마지막에 삐뚤 하지만 귀여운 인형 하나를 완성했다. 아이는 푹신한 인형을 만지며 세상 어느 때보다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의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니 나도 같이 뿌듯했다.


수업이 끝나갈 무렵, 재잘재잘 아이들 소리 중에 ‘우리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건  다 좋아해 주셔’라는 그 아이의 즐거운 목소리가 마음에 남는다. 분명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 손에 들고 오는 그림, 바느질 인형 둘 다 좋아해 주실 거다.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라는 말처럼 무언가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것도 꿋꿋이 해 나가는 인내의 힘도 필요하다. 하지만 인생에서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그것을 지지해 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어른인 내가 생각만 해도 마음 한편이 따뜻해진다.


보통 미술학원에서 그리기가 아니라 바느질을 했다고 이야기를 하면 낯설게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런 작품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그리기를 잠시 멈추고 다른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탐험하는 과정이 작품에는 보이지 않아서이다. 특히 바느질 작품과 같은 만들기 작품은 아이들의 어설픈 손길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하지만 작품에 드러나지 않는 과정의 즐거움은 아이들의 마음에 고스란히 남아있게 된다.


아이와 아이 손에 든 작품을 만났을 때 작품에 대한 질문 대신 ‘너는 미술시간에 무엇을 할 때가 가장 좋거나 행복했니?'라고 그때의 마음에 대해 묻는다면 아이들은 분명 행복한 미술의 경험을 이야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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