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여섯 번째 관찰: 고농축 비타민, 응원

지속하는 힘, 응원의 말

by 경쾌늘보


권유와 응원


달씨는 걷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자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이었다. 그런데 걷는 놈 위에 뛰는 놈 있는 세상. 그녀가 열심히 걸을 때, 뛰는 사람이 있었다. 하와이에 살고 있는 후배 K 씨(사실 ‘놈’은 아니다). 각자 장소에서 이민자로서의 삶에 대하여 온라인으로 소식을 나누는 후배였다. 하와이 K는 달씨의 걷기에 대해 물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이따금씩 자신의 달리기 얘기를 했고 달씨에게도 ‘달리기’를 해보는 것은 어떻겠냐는 말을 종종 던졌다. 그럴 때마다 “달리기는 죽어도 못해.”라고 손사래를 쳤던 달씨이다.


하와이 K가 자신의 마라톤 완주 얘기를 하면 달씨는 그저 “대단하다.”, “무릎 조심해라.”, “나이 들어 골병들지 않게 조심해라.” 그런 말을 하곤 했다. 응원인 줄 알았다. 달씨가 달리기를 시작해 보니 그런 말은 러너들에게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달씨가 하프 마라톤 등록 소식을 알렸을 때 제일 기뻐하고 기대했던 사람이 하와이 K였다. 달씨의 후배였지만, 달리기에 있어서는 선배 같은 존재였다. 달리기 진행 상황을 물어봐주고, 때때로 격려해 주고 관심 있게 봐주었다. 하와이 K는 주변 많은 사람들이 마라톤에 도전하지만, 실제로 꾸준히 연습하는 사람은 드물다고 말했다. 달씨가 꾸준히 달리기를 계속하는 모습이 너무 좋다고 했다. 그녀의 권유 그리고 응원이 달씨에게는 계속하게 하는 힘이 되었다.



온라인 이웃들


어색하고도 새로운 시도인 달리기를 시작하며 달씨는 또 다른 낯선 일을 함께 시도했다. 다름 아닌 블로그 시작이었다. 하프 마라톤이라는 자신만의 거대한 목표와 날마다의 달리기 기록을 위해, 그리고 소문내어 포기하지 않기 위해 혼자만의 노트가 아닌 온라인 세계에 노트를 만들었다.


평소SNS와 친하게 지내지 않는 그녀는 블로그를 할까 말까도 수백 번 망설였었다. 재고 후 본인의 달리기 여정도 남기고, 온라인에 도전을 알리고 연습에 대한 ‘강제장치’를 마련해 두면 힘들 때 부끄러워서라도 쉽게 그만두지 않겠지 하는 자신을 위한 장치였다. 블로그를 잘 모르는 그녀는 ‘이 나이에 무슨 SNS인가’ 하며 스스로 부끄럽고 당황스러운 마음도 있었지만, 하프 마라톤에 등록한 것처럼 블로그도 서슴없이 오픈하였다.


비가 내리는 추운 어느 겨울날, 차가운 날씨 탓에 더 작게 느껴지는 자신을 추스르며, 첫 번째 글의 제목으로 '출사표'를 쓰고 시드니 하프 마라톤에 도전하겠다는 결심을 간단히 썼다. 달씨는 다음 순서에서 당황하였다. 완료 혹은 등록이나 포스팅이라는 단어가 나올 것이라 예상했는데 뜻밖에 ‘발행’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발행 이라니. 그 단어가 주는 약간의 무게감과 느낌이 달씨에게는 신선했다. 첫 발행을 마치고, 누군가가 좋아요를 눌러줬을 때도 마냥 신기해했다.


그녀는 달리기를 하는 블로그들을 검색하여 이웃도 맺고, 달리기가 주제는 아니지만 그녀가 관심 있는 주제를 포스팅한 이웃들도 구경 다녔다. 매일의 연습과 상황, 감정들을 소소하게 발행하며 온라인 이웃들이 하나둘씩 생기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었다.


초보 달리기의 고민을 써놓으면, 베테랑 러너들이 댓글과 팁들을 정성스럽게 알려주었다. 성별도 다르고 지역도 나이도 다양한 이웃들과의 달리기에 관한 소통은 그동안 단절되었다고 느껴진 그녀의 삶에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응원을 해준다고?"

온라인 이웃들에게 다정한 격려와 응원을 받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응원한다’는 말은 누군가를 포기하지 않게 하는 힘이라고 달씨는 생각했다.



함께 달리는 존재


달씨는 부상으로 쉬어야 하는 날이 아니면 거의 매일 밖으로 나갔다. 혼자 달리는 날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함께 달리는 존재는 있었다. 그녀의 강아지이다. 어느 날부터 달리기를 시작한 주인을 만나 연습여정을 함께 달렸다. 큰 응원이 되겠냐 했지만 어두운 골목을 다닐 때나 인적이 드문 길을 지날 때, 그리고 그녀를 멈추지 않게 할 때는 왠지 모를 든든함이 되었다.



조용한 응원자, 코알라


그뿐 아니라 달씨가 사는 곳은 자연과 가까운 곳이기에 몇 발작 나서 산길로 가면 나무 위에서 응원해 주는 존재들을 마주쳤다. 코알라들이다. 동그랗게 웅크리고 나뭇가지 사이에 끼어 있는 코알라들은 달씨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주섬주섬 아주 서서히 그녀를 응시했다. 달씨는 코알라들을 곳곳의 숨은 응원자들이라고 혼자 생각하며 땡큐하고 손을 흔들어 주고 달렸다. 착각은 자유니까.



속도가 부러워, 캥거루


저녁 무렵에 길을 나설 때는 가끔 캥거루도 마주쳤다. 캥거루를 독대한다는 것은 꽤나 섬뜩한 일이긴 했지만 잠시의 당황스러움 후 각자 갈길을 가면 아무 일 없었다. 딱히 응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은 캥거루들이지만, 같은 길에서 서로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을 볼 때면 응원이 필요한 존재이기도 싶다. 캥거루들이 부러운 적은 없었는데 달리기를 시작한 후로는 캥거루들이 어찌나 빠르고 가볍게 움직이는지 부러운듯한 달씨의 표정이었다.



풍경의 응원

나날이 달리며 마주하는 호주의 드넓은 하늘은 색과조화가 매일 달랐다. 아침의 공기와 낮의 멋진 구름과 하늘, 저녁의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석양들은 그 색과 풍경 자체로 달리기를 즐겁게 그리고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즐겁게 해 주고 계속하게 할 수 있는 것을 응원이라 부른다면, 예상치 못한 것들부터 받는, 말을 하지는 않지만 풍경 자체가 매일의 아름다운 응원이었다.







응원 한 스푼, 가족


한편, 달씨의 가족들은 전에 없던 안 하던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의아해했지만, 차츰 달리기와 그녀에게는 거대해 보이는 하프 마라톤이라는 도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연습하러 나갈 때 가족들에게 응원 한 스푼씩을 받아먹으며 힘을 내었다. "잘 다녀와 엄마.", "조심히 뛰고 와 여보."



고농축 비타민, 응원


마라톤은 ‘내돈내산 고생’, 본인이 돈까지 내고 선택한 고난길이라는 말이 있다. 혼자 가는 길이지만, 려 한 스푼은 몇 걸음을 더 나가게 하고, 그 걸음들이 계속 더해지면 완주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달씨에게는 그런 작은 응원들이 힘이 나게 하는 고농축 비타민 같았다.


달씨는 달리기 후 커피를 마시며 떠올렸다.

누군가에게 작은 힘이 되는 말을 할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거창해 보이는 목표도 소소한 기록의 여정과 응원으로 다져지는 것임을.


그리고 하프 마라톤이 코 앞이라는 것을.


모두의 응원을 받아 go go!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