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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관찰: 달리기 밀당

달릴까 말까

by 경쾌늘보


핑계의 핑계


달씨의 두 아이들은 달씨와 달리 운동을 너무 좋아한다. 또 어떤 종목은 잘하기도 해서 종종 누구를 닮았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때마다 그녀는 자신 없다는 듯 배시시 웃기만 했다. 그녀가 호주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그래도 잘했다 싶은 것은 아이들이 운동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한 것이다.


운동할 기회가 많고 적극 권장하는 호주 사회 분위기도 한 몫하지만, 아이들이 그 기회들을 누리려면 누군가의 수고가 분명히 필요하다. 그 수고는 부모들로부터 온다. 달씨는 아침부터 아이들의 도시락을 싸고, 사무 일들과, 등하교 라이딩 그리고 아이들의 방과 후 운동과 주말 스포츠 경기 라이딩과 자원봉사까지 담당한다. 근래 그녀가 부쩍 피곤해 보이는 이유이다. 그녀는 요즘따라 쉬고 싶어 하는 모습이 보였다.



달리기 밀어내기


8월의 축축한 겨울 날씨도 달리기 연습을 건너뛰고 싶은 큰 핑계였다. 으스스 추운 날씨에 김이 모락 나는 차 한잔을 들고 소소한 행복감을 찾아 따스한 이불속으로 가라고 한쪽 마음이 말한다. 원래 하던 대로 하라고 한다.


핑계가 줄줄이 떠오르고, 나태함과 관성이 그녀를 붙잡는다.

그러다 부상이 다시 생기면 어쩌려고?

피곤할 때는 쉬어야지.

다른 할 일들도 많은데 시간이 없잖아.

원래 달리기를 잘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아니잖아.

재능 없는 것에 매달리는 것 비효율적이지 않니.



달리기 당기기


다른 한쪽 마음은 말한다.

이왕 해보기로 한 것,

대단한 연습은 아니어도 달리기를 해야 하지 않겠냐고.

달리다 보면 추위 쫄보가 겨울에 겉옷을 벗어 허리에 매고 반팔만 입고 달리는 모습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신'이라는 것이 놀랍지 않냐고.


하나씩 떠오르는 핑계를 풍선처럼 터뜨리면, 결국 남은 건 오직 '자신만의 이유'였다.

달리는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느림보 달씨에게는 개인적 불가침의 성역이라 여겨온 ‘달리기’.

자신의 한계에 도전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신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었다.


주섬주섬 바람막이 옷과 모자를 챙겨 나갔다. 아이들을 기다리는 동안 그녀도 달려본다. 아이들을 내려놓고 주변을 달린다. 코스는 그날그날 다르다.



달리기, 정신적 활동


때때로 부정적 감정들은 달리기의 연료가 된다. 달리기라는 기관차에 잠시의 기분 상한 일, 한참 생각해 보아야 할 안 좋은 일과 감정들, 그리고 다가올 일에 대한 걱정까지 연료로 넣어 달리다 보면 돌아올 때쯤이면 부정적 감정들은 한층 증발이 되어 한결 가벼운 마음이 된다. 사춘기 자녀의 엄마에게 더욱 딱이다.


가깝고도 치밀하게 다가오는 스트레스도 달리기의 날숨으로 날리기 위해 달린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에 비추어 보면, 달리기가 완벽한 '선택'을 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집중'에 있어서는 대단한 역할을 한다고 달씨는 생각했다. 나이가 들수록 달리기는 부정적 감정의 탈출구가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쥐어보게 되었다.


달씨의 남편은 스쿠버 다이빙을 한다. 깊은 물속의 고요함 속에서 다른 소리보다 마스크를 통해 오로지 자신의 숨소리만 들리고 눈에는 아름다운 생명체들이 유유히 지나가는 순간이 힐링이 된다고 했다. 달씨는 달리기를 하면서 종종 일부러 귀를 이어폰으로 막지 않고 열어둔다. 그러면 자신의 거친 숨소리가 크게 들리며 눈은 풍경을 담는다. 그러한 순간순간이 쌓여 그녀의 달리기는 하나의 명상이자 자신을 위한 시간이 되어가고 있다.


부정적 감정이 다소 해소된 후 대하는 감정들은 자신에게도 가까운 사람들과 타인에게도 부드럽고 덜 무겁기에 감정선에 있어 약간의 홀가분함도 생긴다.



정신력, 마중물과 샘


달리기는 8할이 정신력이라고 한다. 그녀 생각에는 9할이다. 혹자는 100%라고도 한다. 달리기를 하기 전에는 달리기가 매우 신체적 활동인 것으로 생각했던 그녀의 생각은 점차 변하고 있었다.

달리기는 오히려 정신적 활동이다.

몸을 쓰기까지,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기까지는 정신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달리는 동안에도 그만하고 싶은 생각을 붙잡을 정신력이 요구된다.


하지만 그 정신력을 마중물로 펌프에 넣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그 이상을 돌려받는다.

정신의 건강이라는 샘이 솟는다. 신체의 건강과 더불어 정신의 건강이라는 선물을 받는다.


그녀는 또 하나 알게 되었다. 달릴까 말까 할 때는? 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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