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마라톤에서 온 이메일
따스한 남쪽 나라?
7월의 애들레이드 겨울은 음산한 추위가 종일 일상에 저며있다. 추위를 달가워하지 않는 달씨는 어린 시절, 제비들이 간다는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추위 없이 살 수 있을까 꿈꾼 적이 있다 한다.
어른이 되어 몸을 움추러들게 하는 한국의 강추위를 피하여 남쪽 나라 호주로 왔건만, 눈이 내리지 않을 뿐 남쪽 나라도 차갑고 무거운 습한 또 다른 추위가 옷깃을 파고들게 한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비가 들락날락하는 애들레이드의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달씨는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연습하는 모습이다.
주말이면 이른 아침에 벌떡 일어나 17Km도 달리기 시작했다. 도로 위를 유유히 달려가는 러닝 크루들 참 멋져 보여 눈이 따라가지만, 그녀는 여전히 쉬엄쉬엄 달리며 힘들 때는 이쯤에서 택시라도 탈까 매번 고민을 하곤 했다.
초보적 부상들
어느 날 밖으로 나온 달씨의 발목이 불편해 보인다. 러너스 하이 이후 탄력이 붙었는지 간격 없이 거리를 늘렸던 것이 발목에 무리를 주었다.
초보 러너들은 긴장하고 달리기에 근육이 경직되어 부상이 있을 수 있고, 또 반대로 탄력이 붙었다 싶을 때 무리하여 부상을 당한다. 그리고 혼자 달리는 초보들은 웜업이나 쿨다운 운동을 건너뛰기가 일쑤어서 부상 위험을 높인다.
그녀도 예외는 아니었다. 몸이 신호를 보낼 때는 충분히 쉬어줘야 하는데, 초보들은 잘 몰라서 혹은 급한 마음에 쉬라는 신호를 무시한다. 부상은 치료보다 예방이 먼저라는 사실은 왜 꼭 부상을 당해야 눈에 들어올까. 달씨의 발목 통증은 'Listen to your body' 몸의 이상에 귀를 기울이는 계기가 되었다.
물리치료사에게 발 테이핑을 받고는 천천히 걷기, 책 읽기, 달리기에 관한 얄팍한 연구들을 하며 며칠간 달리지 않았다. 부상이 생겨도 전처럼 빠른 회복을 기대하기엔 적지 않은 나이이기에 쉬라는 말은 잘 들었다.
컷오프 타임이 뭣이여
쉬던 어느 날, 이메일을 열어본 달씨의 표정이 굳고 동공이 흔들렸다. 시드니 마라톤으로부터 하프 참가자들에게 대회 변경사항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출발 시간이 오전 6시에서 5시 45분으로,
컷오프 시간도 2시간 45분에서 2시간 30분으로 변경,
코스의 변경도 있으니 이 같은 변경들로 인해 풀코스로 바꾸고 싶다면 무료로 업그레이드해 주겠다는 내용이다. 시드니 마라톤은 세계 7대 메이저 마라톤에 들기 위해 후보 등록을 대회를 메이저 기준에 맞추기 위해 운영하고 있었던 때이다.
잠꾸러기 달씨는, 나이가 들면 잠이 없어 새벽에 눈이 떠진다는데 본인은 그렇게 눈이 안 떠지는 걸 보아 아직 나이가 안 들었다며 내심 흐뭇해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녀에게 15분은 매우 큰 차이며, 5시 45분에 출발선에 있어야 한다는 말은 적어도 3시 30분에는 아침을 먹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3시에 일어나야 한다.
게다가 그녀를 깊은 고민으로 빠뜨린 부분은 바로 컷오프 타임이다. 달리기를 시작하며 대하는 낯선 용어들이 많아졌다.
"컷오프 타임이란 대체 무엇인가?!"
컷오프 타임은 정해진 시간 내에 결승점을 통과하지못하면 기록제공을 포함하여 도로 통제나 급수 서비스가 제한되거나 중지되는 중요한 마감시간이다. 등록 당시 하프의 컷오프 타임은 2시간 45분이었다. 그 정도면 그녀의 주특기인 빨리 걷기와 느리게 달리기를 조합하면 어떻게든 가능할 것 같아 보이는 숫자여서 덤벼들었다. 하지만 달리기 포기했던 사람의 첫 하프에서 15분이란 시간은 큰 격차였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니 마감 시간을 지나 느리게 걸어오며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불편한 장면이 그려져 달씨는 불쑥 막막해지고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시드니는 가야겠어!
첫 하프 마라톤에서 서브 2 (2시간 이내 완주)도 아닌 그저 완주가 목표였던 달씨에게, 컷오프 타임을 알게 되면서 시간 내 완주가 이제는 아슬아슬한 도박처럼 느껴졌다. 풀코스가 '무료' 업그레이드라는 부분이 잠시 눈을 멀게 했지만, 대뜸 하프 도전도 미친 짓인데 풀코스 도전은 물론 무모한 도전 같아 보였다.
달씨는 사기라도 당한 사람처럼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러다 커피를 다 마신 그녀는 결심한 듯 고개를 들며 말했다,
“컷오프가 날 속일지라도, 시드니는 가야겠어.”
그녀가 정신이 들었는지 풀코스로 업그레이드는 하지 않았다. 천만다행이다.
'하프로 간다!'
동시에 걱정이 밀려들었다.
'이제 두 달도 안 남았는데 잘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