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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관찰: 500미터, 숨이 턱 끝까지

어설픈 달리기의 날들

by 경쾌늘보


달씨의 첫 달리기


5월, 찬 바람에 노랗고 붉은 낙엽들이 길바닥을 수놓았다. 롱 레깅스에 반팔을 입고 모자를 눌러쓰고 운동화를 질끈 묶은 달씨가 만리장성이라도 달려가 보겠다는 의지로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손에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핸드폰은 주머니에 넣은 듯하지만 물병은 안 보인다.

역시 초보들이 저지르는 흔한 실수이다.


첫 번째 도전으로 동네를 서서히 달려보기 시작하는 달씨, 곧 멈추었다. 벌써 끝? 몇 분 안 지났는데. 거리를 보니 500미터쯤 달렸을까. 숨이 차 헉헉대는 그녀, 저러다 쓰러지는 것 아닌가 싶게 심하게 고통스러워하더니 갑자기 허허허 웃는다. 이상한 여자다.


너무 기가 막혀서 그랬다 한다. 겨우 500미터가 한계인데 21Km를 어찌할꼬 싶어 웃음이 나왔다고. 그녀의 달리기를 보니 한숨도 헛웃음도 심지어 눈물이 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달씨는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계속 연습을 했다. 온전한 달리기를 한 날은 많지 않았다. 짧은 거리도 걷뛰걷뛰. 걷다 뛰다를 힘겹게 반복했다.




어설픈 달리기의 날들


어느 날은 다리가 당기어 중단하고,

어느 날은 물을 안 가져가 목이 말라 못 뛰고,

어떤 날은 너무 배가 불러서 또 다른 날은 너무 배가 고프다고 멈췄다.

바람이 많이 불어, 비가 와, 옷이 너무 얇아, 옷이 너무 두꺼워 이러한 여러 핑계들만 쌓이는

어설픈 달리기의 날들이었다.


매일의 연습에도 거리나 강도가 드라마틱하게 향상되지는 않아 좌절스러워하는 그녀에게 걷뛰도 부상 방지를 위해서, 그리고 피로감을 덜 받기 위한 훈련드릴 중 하나로 귀띔해 주니 고생이 온전히 헛되지만은 않았네 하며 기뻐한다.

그나마 그녀가 좋아하는 라벤더 꽃이 핀 코스를 달리는 것이 위로가 되었다.





물, 고대 그리스 병사의 죽음


달리는 것이 힘드니, 급기야 달리면서 죽는 사람들이라는 황당한 연관까지 떠오른 역시나 엉뚱한 달씨. 마라톤 경기의 시초가 되었다는 고대 그리스의 한 병사, 아테네를 향해 마라톤 광야를 쉬지 않고 달려가 승전 소식을 알리고 숨졌다는 그 병사의 직접적 사인은 무엇이었을까도 생각해 보고, 근대 마라톤에서도 달리기한 후 목숨을 잃는 경우가 있을까, 몇 명이나 될까 궁금해졌다.


달리기를 해보니 관점이 달라진다. 과로로 인한 심장마비 때문일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던 그 마라톤 병사의 죽음은, 물 없이 달려 아마도 물 부족으로 탈수 상태에서 건조한 평야를 쉬지 않고 달렸을 가능성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근대 올림픽이나 마라톤 대회에서도 기저질환이 없던 선수들이 실화라는 것에 놀랐다. 사망의 원인이 모두가 탈수와 탈진은 아니었지만, 놀라운 것은 1912년 부터 최근까지도 마라톤 경주에서 사망자는 계속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시작만 있는 달리기


시작이 반이라지만, 달리기는 언제나 시작만 있는 것 같다. 그녀는 생각했다, "계속하는 게 맞나?". 하프 마라톤 등록 소식을 가족들에게도 지인들에게도 아직 알리지 않았으니 여기서 없었던 일로 덮어도 아무도 모를 일이다.

살이라도 빠지면 신나겠건만,

늘지 않는 힘든 달리기에 슬슬 지루해하며

달리기 하지 않을 이유 찾는 것 딱 들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씨는 마음을 다잡고 결심했다.


'더 멀리, 더 깊게, 그리고 물을 꼭 챙겨서!


달씨네 동네/ 마라톤 병사 (pinterest)/ 물은 소중해 (pexe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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