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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째 관찰: 달리기 꼴찌에게 생긴 일

달렸을 뿐인데

by 경쾌늘보
달리기가 삶에서 열일하다

효도


달씨가 시드니로 가기 며칠 전 그녀의 엄마에게 하프 마라톤을 할 것이라고 알려드리려 전화했을 때였다. 그녀의 엄마는 “안 그래도 아빠랑 얼마 전에 너 어렸을 때 달리기 꼴찌 했던 얘기 했었다.” 하며 웃으셨다. 그 달리기 꼴찌가 동네 달리기도 아니고 하프 마라톤에 나간다 하니 그녀의 엄마 역시 어리둥절하시기도 하고 신기해하시기도 했다.


하프 마라톤을 마치고 완주소식을 엄마에게 알려드리자 달씨는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달씨는 어렸을 때부터 가끔 호흡곤란을 겪곤 했다.

그래서 달리기는 더더욱 못한다고 그녀의 엄마도 그녀도 그렇게 단정 짓고 살아왔다.

그런데 그것이 달씨를 임신하셨을 때 몇 번의 유산위험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늘 미안하셨다고 했다.


달씨가 청소년 자녀가 2명인, 그렇게 적지 않은 나이가 되도록 그녀 엄마는 늘 마음 한편으로 죄책감을 갖고 사셨던 것 같다. 달씨의 완주 소식은 알게 모르게 있던 엄마 ‘마음의 짐’을 말끔히 사라지게 해 주었다. 더구나 달씨는 달리기 하며 오히려 호흡이 좋아졌다!


그녀는 엄마에게 마라톤 사진들 몇 장을 보내드렸었다.

얼마간 그녀의 엄마 카톡 프로필이 딸의 마라톤 사진임을 보니, 딸이 대견하다 생각하시고 기뻐하시는 것 같아 그녀도 덩달아 기뻤다.

달리기가 효도를 했다.



칭찬


그리고 마라톤을 통해 효도를 했다면, 자녀들에게도 뜻밖의 칭찬을 받게 되었다. 엄마로서 자녀에게 칭찬하는 것은 당연한 것 같지만 자녀에게 칭찬을 듣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닌 듯한데, 달씨는 자녀들에게 칭찬을 듬뿍 받았다. 완주 후 그녀의 사춘기 아들이 어깨를 두드려주며,

"엄마 너무 잘했어! 너무 잘했어!" 찬사를 받았다.


운동을 잘하는 딸의 친구들이 달씨의 완주 소식을 듣고는 딸에게 급기야

“너 운동 잘하는 거 엄마 유전자를 받았구나.” 했다는 말을 들었다.

누구 닮아 아이가 운동을 잘해요 라는 질문에 할 말 없어 배시시 웃기만 했던 달씨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엄마 닮아서 그렇다는 사실적 근거는 없지만 모두가 그럴 것이라 추측은 가능한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 즐거웠다.

달렸을 뿐인데.



자신


달씨에게 달리기는 새로운 시도였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의 좋은 점뿐 아니라 반대되는 점도 마주하게 되었다.

"조금 더 할 수 있어" 하며 버티기를 해보려 하는 자신을 마주하기도 하고,

"됐어 이만큼이면 충분해" 하며 타협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마주하며, 뒤늦게라도 자신을 알아가며 작은 성장을 경험하는 과정이었다.


달리기를 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지구력 주머니 크기를 깨닫게 되었다. 달리는 중에는 주관적으로 측정하고, 달린 후에는 데이터를 가지고 좀 더 객관적으로 측정하게 되는데, 상중하로 구분하자면 어디에 찍을 수 있을까 매번 고민했다. 그럼에도 육체적 고통을 견디어 내는 것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다. 지구력 (Endurance), 달씨가 호주에 살면서 자주 접하는 단어이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많이 사용한다. 달리기를 통한 몸의 단련은 끊임없는 지구력의 확장작업이었다.


그런데 고통을 대할 때 몸의 힘만으로는 부족했다. 고통을 견디는 것은 정신적인 힘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정신적으로는 '견뎌내기 (perseverance)'작업의 확장이었다.

지구력은 육체적인 한계를 넘어서는 과정이라면, 견디기는 정신적으로 스스로를 다잡고 인내하는 과정이다.


한계가 있다면 그것이 어디로부터 왔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그 한계는 남으로부터 왔을까 자신으로부터 왔을까?

예전에 한계라고 생각한 것은 여전히 한계일까?

그 한계가 자신을 제한시키지는 않았을까?

어쩌면 깰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시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한계에 도전한다고 해서 처음부터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점차적으로 훈련하고 능력을 늘려가다 보면 그 과정들을 건강하게 통과하며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늦은 나이도 없다.

달씨는 누구나 자신이 한계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해 살펴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레이스 당일, 레이스 당일, 그녀의 완주를 제일 먼저 알아낸 그녀의 완주를 제일 먼저 알아낸 하와이 K 가 본인이 7-8년 동안 마라톤하며 많은 사람들 봐왔는데 달씨 나이에 달리기를 시작하여 첫 하프를 완주한 것은 대단하다며, 풀코스 준비를 격려해 주었다.


"풀코스 마라톤이라고?!"


달리기 꼴찌 달씨는 그저 인생에 하프마라톤 한번 하면 어떨까 싶어 늦게 시작한 달리기였다. 그래서 풀코스 마라톤이라는 것은 꿈도 못 꾸었던 것이었는데, 그 무겁고도 낯선 단어가 그녀의 대화 중에 등장했다는 것만으로도 벅차올랐다. 순간이지만 꿈꾸는 인생이 얼마나 설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달렸을 뿐인데 변화들이 많이 생겼다.


달씨는 이제 바랬다.

앞으로의 삶이 달리기가 되길, 그리고 달리기가 삶이 되길.


하프 마라톤에서 만난 일본 러너들에게 받은 나루토 표창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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