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요조_확실함과의 사랑, 달리기

불확실한 인생 속의 확실함

by 경쾌늘보
그런 황홀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내가 사는 삶은 늘 불확실함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느린 달리기 동지


초등학교 때 달리기는 맡아놓은 꼴찌.
100미터는 당연히 20초를 넘겼고,
고등학교 때까지도 오래 달리기는 완주한 적 없다.
‘나는 달리기를 못하는 사람이구나.’라는 확신이 너무 굳건하게 생기게 되고,
달리기를 못하니까 싫어하게 되고 싫어하니까 안 하고 안 하니까 당연히 더 못하게 되고 못하니까 싫어하고.. 달리기와의 악순환 인연.
끈질기게 해 본 운동 하나 없는 인생.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달리기 예찬론자인 오늘 소개할 작가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와 달리기 흑역사 싱크로율이 99%.

그래서 더 귀가 번쩍 뜨였던 요조 작가.


달리기 꼴찌뿐 아니라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달리는것을 좋아하고,

스트레스가 쏟아질 때는 잠을 자고, 글을 쓰는 속도도 느리다고 말하는 그녀.

달리기 뿐 아니라 삶의 속도까지 닮은 점이 있는 듯 해 더욱 궁금해진 81년생 요조 작가이다.




뮤지션, 작가 그리고 책방주인


“뮤지션, 작가 그리고 책방주인 요조입니다.”


요조는 자신을 소개할 때 늘 이 순서대로 말한다.

사고실험 최성운 PD가 데뷔 순서인 줄 알았고 말하는데 나도 그런 줄로 생각했다.

요조는 자신의 정체성의 순서라고 한다.

음반을 내지 않아도 음악을 사랑하는 뮤지션,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고, 그리고 독립서점, 책방 ‘무사’를10년째 운영하고 있는 책방주인.


요조 작가는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커피 한잔 어때’ 노래의 보컬로 주목을 받으며 이후 인디음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다수의 곡을 만들었고, 홍대여신 이라는 별명도 가졌었다.

그리고 2013년에 출판한 <어떤 날(우리는 왜 여행을 떠나는가)>를 시작으로

<아무튼, 떡볶이>,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만지고 싶은 기분>등을 포함한 12권의 저서의 작가이기도 하다.




어쩌다, 요조는 달리기 시작했나?


요조는 달리기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좋아하는 작가들 중 달리기 하는 작가들이 있었고, 그중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20대 시절 예술가병 걸린 질풍노도의 시기의 그녀를 견디게 해 준 책이었다. 직접 달리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이고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아온 달리기였다.


그러다 운동을 해야겠다고 절감한 순간이 왔다. 한해에 책 2권을 동시에 쓰면서 체력이 견디지 못하는 시점을 맞닥뜨렸다. 1년 동안 준비한 책이 한 계절을 차이로 가을에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임경선 공저>한 권과 겨울에 <아무튼, 떡볶이> 원고를 마감했을 때였다.

원고 마감의 신나고 뭔가 해냈다는 기분보다 바닥난 감정과 영감, 체력을 마주해야 했다.

“나 이제 뭐 하지?” “다음에 무슨 글 쓰지?”

부정적 감정에 사로잡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작한 달리기.




적금처럼 착실하게 훌륭해지기


달리기 앱, 런데이를 켜고 시작한 날 1분 달리고 2분 걷고 그렇게 시작하였다.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느는 게 너무 좋은 거예요.”


달릴수록 달리기가 신기하고 좋았다.

음악을 만들거나 글을 쓰는 창작의 일과 달리, 달리기엔 확실한 보상이 따라왔다.

오늘 뛴 만큼 내일은 조금 더 나아지는 확실함에 매료되었다.


나는 아주 깊이 사랑에 빠졌다. 당연히 달리기라는 운동이 내 깊은 사랑의 주인공이었지만,
그것은 한편 확실함과의 사랑이기도 했다.
하면 할수록 나아진다는 확실함.
지난번에 1분을 뛰었으면, 이번에는 2분을 뛸 수 있었다.
다음번에는 3분을 뛸 수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적금처럼 나는 착실하게 훌륭해졌다.
그런 황홀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내가 사는 삶은 늘 불확실함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中>




확실함이 주는 희열


앨범 한 장을 내면 그다음 앨범은 만들기 더 쉬워져야 할 텐데 그렇지 않았다. 책 한 권을 쓰고 나면 그 다음번엔 자연스레 더 좋은 책을 써야 할 텐데 그렇지 않았다. 아무리 반복해도 언제나 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황량하고 막막했다. 내 음악과 책이 사랑을 받을지 외면을 받을지는 얼마나 오랫동안 성실하게 준비했느냐보다 시절과 상황이 만드는 운에 더 많이 달려있었다. 그 불확실함에 익숙해지려고 용을 쓰다가도 번번이 우울하고 무기력해지기 일쑤였다.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中>


달리기는 정직했다.

하면 실력이 는다는 확실함이 주는 희열이었다.

7개월 후, 요조는
13.95km를 쉬지 않고,
5분 38초 페이스로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녀는 말한다.
“800미터도 못 달리던 내가, 5km만 달릴 수 있어도좋겠다고 했던 내가,
풀코스를 꿈꾸게 됐어요. 그런데 그게… 전혀 무섭지않았어요.”




달리기 하며 눈물이 많아져


그녀는 달리다가 문득 눈물이 날 때가 많다고 한다.

슬퍼서가 아닌, 오히려 정반대인 기뻐서 나는 눈물.

사람이,

풍경이,

삶이,

살아있음이

아름답고 감사해서.


“달리다 보면 순간적으로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요인들이 있거든요. 날씨라든가, 음악이라든가, 달리면서 보게 되는 풍경 또는 사람…. 지난봄에는 막 달리고 있는데 저만치 앞에서 걷던 할머니가 날씨도 좋고 꽃나무에 꽃도 피어 기분이 좋으셨는지 갑자기춤을 추는 거예요. 왈칵 눈물이 쏟아졌어요. 자주 세상이 끔찍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틈에 이런 예쁜 모습들이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 있어요. 덕분에 제 멘털도 건강해졌어요.” (경향일보 인터뷰)




달리기가 준 것


달리기는 요조에게 글과 노래를 주었다. 요조의 표현대로라면 '글과 노래를 주셨다'.

달리기를 하며 느꼈던 것, 달라진 점들에 대해 글을 쓸 수 있는 글감이 되기도 하고, 어느 날 공연지의 아침 골목을 달리다 풍겨 나오는 모과향에 이끌려 모과나무라는 노래를 만드는 모티브가 되기도하였다.


또 좋아하는 것을 계속할 수 있는 힘, 즉 글쓰기와 좋아하는 일들을 지속할 수 있는 체력을 만들어 주었다.


나이가 들수록 선명해지는 사실, 삶을 지속하고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체력’이 가장 큰 밑천이다.


느슨한 삶에 달리기를 더하는 요조 작가의 라이프 스타일. 그녀의 달리기는 멘탈과 체력의 든든한 도구 일 뿐 아니라, 창작과 현실의 불확실성 속에 얻는 확실함의 기쁨이다.




달리기 마무리는 하드!


책을 좋아해서 '책방이나 해볼까' 하는 심사로 무작정 시작한 책방무사. 서울에서 시작했지만 제주로 내려가 한동안 제주에서 운영하다, 얼마 전 다시 서울로 터전을 옮겼다.

요즘도 2-3일에 한 번씩 마로니에 공원을 달린다고 한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면 30분 정도 달린다. 아침에 달릴 때도 있고 저녁이나 밤에 달릴 때도 있다.


40대 중반이 된 요조의 SNS에는 가끔 달리기를 마친 후 아이스크림 (일명 하드)를 먹는 것을 리츄얼처럼 인증샷을 올린다.

마치 달리기 후에 꼭 커피를 마시는 나의 것과도 닮아있어 괜한 동지애도 느끼게 되는 요조 작가의 달리기.


달리기 마무리: 요조 작가의 시원한 하드 & 경쾌늘보의 커피





창작과 달리기의 리듬


요조 작가가 달리기를 시작한 지 1년 정도 무렵,

하프마라톤이나 풀코스마라톤도 해보고 싶다고 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그 후 실제로 완주했을까?

이후 발 부상이 있다는 기사를 보았고,

마라톤에 참가했다는 기사나 글을 찾을 수 없기에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불확실성 속의

'확실함' 그리고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로

자신만의 페이스, 느슨한 리듬으로 가는

그녀의 달리기와 창작을 응원한다.



책 이미지 from 네이버, 요조 달리기 from 요조의 순수잡담





시인의 달리기는 어떨까 궁금하시다면 다음 편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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