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_곰네마리 20Km 릴레이 달리기

애들레이드 대학교 경기장 (Adelaide Uni. Oval)

by 경쾌늘보

바통, 무엇에 쓰는 물건?


달씨에게 질문을 해본다.

Q1. 학창 시절 달리기 대표선수 뽑힌 적 있나?

Q2. 릴레이 달리기 해본 적 있나?


대답은 둘 다 No였다. 달씨는 체육시간의 달리기가 그토록 싫었고, 달리기 대표선수니 릴레이니 하는 단어는 기피대상이었으며 '릴레이 바통'은 만져본 적 없는 물건이었다.


달리기를 하며 달씨가 좋아한 점 중 하나는 자기만의 속도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경쟁, 등수나 기록도 신경 쓸 필요 없다. 하고 싶은 때 밖으로 나가 본인이 정한 만큼 하면 되었다. 마치 시험을 앞둔 공부를 하는 것과 알고 싶어서 하는 것에 대한 느낌이 다르듯. 그러나 그것은 달리기의 매우 큰 좋은 점이긴 하지만, 엄마로서 가끔은 가족들과 너무 따로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 한구석에 껄끄러움이 조금 있었다.



넷이 함께 즐기는 운동 찾기


가족들과 떨어져 다른 나라에 살고 있기에 아이들이커도 함께 할 수 있는 가족 취미가 있다면, 핑계 삼아함께 운동도 할 겸 가족애를 다지기 좋겠다는 생각을 해온 달씨였다. 집에서 영화를 본다거나 보드게임을 하는 것도 좋았지만 아이들이 크면서 밖에서 함께 에너지를 쓰며 땀 흘리며 유대감을 만들어 가고 싶었다. 그러한 고민은 아마도 어디에 살든 자녀들이 커가며 부모가 하는 비슷한 고민이지 않을까.


가족 운동으로 자전거, 골프, 수영, 등산, 스쿠버 다이빙 등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었다.

10대 자녀들과 어른들, 넷이 '함께 즐기며' 할 수 있는 운동 찾기란 쉬운 것이 아니었다.



곰3마리 릴레이


그러던 중, 2024년에 4인 1팀 릴레이 소식을 들었다.

5Km씩 4명이 20Km를 달리는 경기.

달씨 남편은 제대한 지 30년이 다 돼 가건만 군대에서 충분히 달렸다는 이유로 달리기를 선뜻하려 하지않는이다.

한 번도 달리기 대회에 나간 적 없지만 운동은 꾸준히 하는 두 아이를 설득해 3인으로 참가하기로 했다.

4 인팀인데 3인이면 누군가 한 명은 2번을 뛰어야 했고, 달씨가 아이들보다 느렸지만 먼저 제안한 입장이기에 2번 뛰겠으니 함께 나가자고 꼬드겼다.


팀명은 '곰 세 마리'.

현장에서 달씨는 한번 뛰고는 쓰러질 것 같다며 못 뛰었다. 결국 엄마곰 대신 예정에 없던 아들곰이 2번을 달렸다. 아들곰도 인생에 10Km를 달린 적은 처음이었다. 땀이 범벅이 되어 들어오는 아들곰과 마지막을 함께 달려 피니쉬라인에 들어왔다. 그날 아들곰에게 미안함, 고마움, 멋짐 등을 느꼈다지.



곰4마리 프로젝트


그리고 다시 1년이 되어, 2025년 3월 릴레이 경기가 돌아왔다. 1년 사이 자녀들도 부쩍 컸고, 동시에 달씨도 나이듦이 느껴졌다. 자녀의 독립을 향한 직선과 부모의 노화 곡선. 두 선의 교차점이 부디 천천히 머물길 바라지만, 인생은 무엇이든 장담할 수 없는 것.

"내년에는 다들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엄마가 계속 달릴 수 있을지, 너희가 이곳에 살고 있을지."

사실이기도 했고, 아니길 바라기도 했다. 어쨌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면 놓치기 아쉬운 것은 꼭 해보고자 하는 달씨.


"그럼 군대 왔다 생각하고 이번에 참가해 볼게."

올해는 아빠곰도 참가의향을 보였다. 가족 4명이 모두 함께 달려보는 역사가 생긴 것이다!

그리하야 올해 팀명은 '곰네마리'.


FourBears로 팀 신청을 하고 경기에 앞서 두어 번 함께 연습을 했다. 5Km 거리감이 전혀 없는 아빠곰과 함께. 작년보다 더 빠르고 단단해진 아들곰과 딸곰, 그리고 달리기 경력은 제일 길지만 제일 느린 엄마곰 달씨, 이렇게 넷이 트랙을 달려보았다.

"오, 우리 팀 이번에 우승하는 거 아니야? 상금 받으면 뭐 할까?"



더운데 괜찮을까?


대회는 금요일 저녁. 3월이면 저녁 기온이 내려가야정상이지만, 올해 유난히 늦더위 기승이다. 저녁기온이 35도, 달씨는 내심 걱정이 되었다.

'더워서 잘할 수 있을까?'


대회가 있는 곳은 시티에 있는 애들레이드 대학교 오벌. 러닝클럽 팀과 직장동료 팀 등 뭔가 비장한 각오들이 느껴졌다. 10살 정도 친구들 팀도 있고, 엄마들 팀, 4대가족 팀 등 다양했다. 응원 나온 가족들은 돗자리와 음식을 챙겨 와 잔디밭에 눕기도 했다.


달씨에게는 이 릴레이가 하나의 특별한 가족행사 혹은 소풍 같은 이벤트였다. 적어도 그런 마음으로 갔다. 팀 헤어밴드도 사고, 우연히 유니폼처럼 블랙으로 입은 곰4마리 선수 입장!


릴레이 순서는 제일 피지컬 좋은 아들곰이 선두, 다음 처음 출전한 아빠곰, 다음 엄마곰, 마지막 주자는 가장 날렵한 딸곰.


스타트 그리고 피니쉬
도착한 릴레이 경기장 광경



나 마라톤 한 여자야


"내가 마라톤 해본 사람으로서~ 워밍업 운동은~, 수분 보충은~~." 번호표를 단 후 잘난 척 같은 잔소리를 하고, 음악에 맞춰 몸도 흔들고, 행사 부스들도 돌아보며 한껏 분위기 고조 된 엄마곰.


탕! 선두주자들이 출발.

일년 전, 출발 후 엄마곰에게 전화하여 배가 찢어질 것 같네, 발이 아프네, 신발이 안맞네 하며 투덜거렸던 아들곰이 이번엔 빠른 속도로 늠름히 첫 5Km를 끝내고 들어왔다. 아빠곰보다 키도 더 커진 아들곰은 체력도 더 좋아졌다.

다음 주자 아빠곰은 정말 군대 행군하듯 한 번도 안 쉬고 같은 페이스를 유지하며 들어왔다.

다음 엄마곰,

"이 기분으로 PB도 가능할 것 같아." 하며 타이밍 바를 즈려밟고 나갔다. 그런데 1Km 지났을까? 오른 종아리에 쥐가 났다. 마라톤이며 워밍업이며 수분 어쩌고.. 설레발을 쳤던지라 엄마곰은 근육경련의 고통과 부끄러움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열심히 가는 사람들



엄마곰은 어두워지는 저녁 하늘과 함께 몸도 마음도무거워졌다. 엄마곰이 언제 올까 기다릴 마지막 주자 딸곰을 생각하니 미안해졌다. 결국 딸곰에게 전화를 했다. 늦을 것 같다고. 딸곰은 부리나케 달려와 주었다.

"엄마 괜찮아? 여기서 나랑 바꿀까? 내가 대신 뛸까?"

눈물 핑 돌며 그러고 싶었지만, 엄마곰은 맡은 바 끝까지 완주는 해야 한다며 몸을 질질 끌고 갔다. 딸곰은 그 길을 내내 함께 달려주었다. 딸곰과 바통 교체 후 그 저녁 결승선에서 베어 먹은 바나나의 맛이란.




각본 없는 드라마


마지막 주자인 딸곰까지 피니쉬 라인에 들어오니 주변은 어둑해졌다. 엄마곰의 부진함으로 예상했던 경기가 이루어지지 않은 달씨 가족. 그래도 끝까지 완주하며 각자의 목에 메달을 하나씩 걸고 어두운 저녁 길을 빠져나와 한국 음식점으로 향했다. 곰4마리팀 회식이다.


'얼만큼 달렸다'는 중요하지 않았다. '함께 해봤다, 해볼만 했다, 즐거웠다' 의 스토리가 그들에게 남았다. 길에 왕창 쏟은 땀의 20Km, 서로를 격려해 준 말과 표정들. 예상치 못한 일들과 행동들, 감정들까지 한 편의 각본 없는 드라마가 펼쳐진 릴레이.


한국 치킨을 먹고 찌개를 나누며 누구는 다시는 안 하겠다, 누구는 내년에 다시 해보고 싶다 이야기한다. 내년이란 시간은 어떻게 될지 모르고 또 동시에 금방 오는 시간이다.

2026년에도 곰4마리의 릴레이 사투가 이어질까? 달씨도 궁금해지는 밤이었다.

달씨는 혼잣말을 한다.

'나만 잘하면 돼.'

내년이라는 선물을 기대하며.



해가 진다



곰4마리 뒤풀이


Life isn't a race. It's a relay.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이어달리기라고 누군가 말했던가.

달씨는 어쩐지 그 말이 마음이 들었다.

릴레이를 이어가는 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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