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ley 동네를 돌며
매드 마치 (Mad March)
새 학기가 시작하는 3월, 꽃샘추위 속에 학교에 갔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1학년 첫날, 왼쪽 가슴에 노란 명찰과 반 접은 옛날식 표현인 가제손수건까지 옷핀으로 달고 추운 운동장에서 입학식을 치렀다. 한국 계절이 여전히 몸에 배어 있는 달씨에게, 늦더위 기승하는 애들레이드의 3월은 여전히 낯설다. 그리고 조용하기만 하던 도시가 어느새 북적이고 번쩍이며 ‘미친 계절’로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달씨가 처음 왔을 때 도시의 인상은 재미라고는 1도 없는 지나친 오가닉, 밍밍함 자체였다. 저녁이면 통금 시간이라도 있는 듯 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도 적고, 밖에서 보기에 불 켜진 집이 거의 없고, 다들 안에서 무얼 하는지 알 수도 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인가 했다.
그런 도시에서 이 시기가 오면, "Oh, Mad March is coming!" 하며 떠들썩하다. 관광객들과 페스티벌참가자들의 열광하는 분위기에 미치는 3월이다. 조용한 도시의 화려한 변신과 손님들로 흥분하여 Mad March라고도 하지만, 주민들은 몰려드는 관광객과 행사들로 인한 도로통제와 교통체증, 소음으로 인해 미치기도 한다.
페스티벌 시티, 애들레이드
애들레이드도 '페스티벌 시티(Festival City)'로 도시 홍보를 하고 있다. 3월, 애들레이드 도시의 정중앙에서 열리는 큰 페스티벌은 The Adelaide Fringe, WOMADelaide, The Adelaide Festival 3개이다. 주로 아트와 문화 행사들이다. 세계 각지에서 공연팀들이 오기도 하고 (종종 한국 연극이나 예술팀도 온다.) 각국의 음식과 임시 놀이공원까지 세워진다. 거기에 자동차 경주대회, 그리고 경마대회까지 있어 주정부 공휴일로 지정하고 관람이나 참여를 권장하는 분위기이다.
달씨는 언젠가는 가봐야지 하며 아직까지 가지 않는 것 보니 그다지 관심은 없는 듯하다. 주차하기 어렵고 사람 많은 곳은 굳이 찾아가지 않게 되었다. 더구나 그녀가 사랑하는 보태닉 가든 뒤편 키 큰 나무들 가로수길에 펜스가 쳐지고, 온갖 현란한 현수막이 붙고 임시화장실들이 설치되면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페스티벌 티켓을 사지 않는 이상 당분간 다닐 수 없는 길들을 멀리서 본다. 또 그녀가 자주 가는 공원과 파크런도 그 기간에는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외지에서 페스티벌을 즐기러 온 사람들과 지역경제를 위해서 공유해야 하니 곧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사람들이 도시 중앙으로 몰리면 달씨는 반대 방향을 선택한다. 다른 지역들은 대부분 여전히 한가하다. 도심에서 불과 15분 정도 떨어진 동네에서는 소, 양, 알파카들이 초원 위에서 여유로이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해가 잔디밭에 금빛가루를 흩뿌리는 시간에 자연 속에 있는 그림자 한 조각이 되어 달리는 것이 참 좋아 달씨는 천천히 달려본다.
매드 마라톤
한편, 3월에 애들레이드만 매드한 것이 아니었다. 달씨가 2월에 신청한 뉴욕 마라톤 추첨 결과가 나왔다. 당첨되지 않았지만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마라톤도 Mad Marathon이기 때문이다.
뉴욕 마라톤 2025년의 경우, 전년도에 비해 신청이 22% 가 늘었고 전체 신청자 중 2%만 당첨이 된다고 한다.
이래저래 달씨에게도 Mad March였다.
하지만 잠시의 흥분도 아쉬움도 지나가고 곧 제자리를 찾는다. 한바탕 거대한 파티 무리에게 자신을 내주었던 공원의 나무들과 동물들도 좀 더 편히 숨쉴터이다. 걷는 사람, 달리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들도 고요한 길 위를 지나다닐 것이다. 한때의 흥분과 아쉬움도 지나간다. 그러기에 그 순간을 즐기는 일, 그게 인생일지도.
왜 마라톤?
달씨에게 마라톤이 집착의 대상은 아니다. 달리기 자체가 여전히 그녀에게는 신비로운 영역이고 그것을 하고 있는 것이 선물 같은 경험이다.
"내가 이만큼도 할 수 있다고?" 하는 자신의 재발견이자 탐험의 여정이다.
달리기를 한다고 마라톤에 나가야 하는 것 아니며, 얼마만큼의 속도와 기간을 달려야 마라톤을 해야 한다는 것도 없다. 달리기 혹은 어떤 운동이든 즐기며 어디에서든 어떤 이유든 한다면 그것이 의미 있는 여정이다. 기록을 위해 무리한 훈련을 강행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달씨에게 그런 마라톤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녀가 마라톤을 해보는 이유는 단순하다. 정해진 날짜와 목표가 있어야 해이해지려는 몸과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울 자신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행을 통해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듯, 마라톤 속에서 또 다른 자신을 만나는 순간이 아직은 경이롭기 때문이다.
멈추고 싶고, 힘들어 욕이 나올 것 같고, 빠른 남들과 비교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해내고 싶어 하는 길 위의 또 다른 자신을 찾고, 그 존재를 기특해하며 품어주기 위해서일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