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마라톤을 마치고
뜬금없이 세 번째 풀코스 마라톤을 홀로 마쳤습니다.
날것의 육하원칙+추가로 써보겠습니다.
1. 언제?
25년 10월 29일, 수요일, 오전 6시 시작.
날짜는 저의 선택이었어요.
최근 마라톤 후 걸린 기침감기(혹은 코로나)가 잦아든 다음 날 정도, 그리고 온도가 높지 않은 날로 택일.
2. 어디서?
코스는 마음대로.
a. 35km가 쭉 이어진 트레일이 좋을까
b. 바닷가 트레일이 좋을까
고민 열심히 했죠.
공원길은 그늘은 있으나 인적이 드물고,
해변길은 반대로 그늘은 없으나 사람들도 있고, 차도 쉽게 접근하고, 카페나 공중 화장실도 자주 있어요.
달리다 응급상황이 생기면 누군가의 도움이 용이한 상황이란 판단 하에 해변길, Coastal trail로.
3. 누가?
오롯이 나홀로.
4. 무엇을?
3번째 42.195Km 풀코스 마라톤 도전을.
5. 어떻게?
코스는 7Km 구간을 골라 왕복 14Km를 한 랩으로 정했어요.
그렇게 3번을 돌면 14x3=42에 200미터를 더하기로.
에너지젤은 허리밴드에 가지고 7Km마다 하나씩.
아무래도 혼자 하는 것이니
물 보급이 고민이었습니다.
7Km 중간지점 벤치나 나무 아래 아이스백을 놓고 물과 이온음료를 마실까 했는데,
바닷가에 불특정 다수를 생각하니 좋은 아이디어는 아니었어요.
그래서 차에 두고, 물 한 병을 들고 달리며 한 랩 14km마다 차에서 물병을 교체하기로 계획.
결론은 그렇게 하길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물은 총 1.8리터 마시게 되더라고요.)
2바퀴 돌고나니 29Km 정도 되었어요.
그런데 같은 코스로 한번 더 가는 것이 지루해졌습니다.
급히 코스를 변경해서 갔던 방향이 아닌 반대방향으로 향했습니다.
바닷가 옆 West Lake라는 큰 호수가 있어 그곳과 주택가를 지나,
모래언덕으로 길을 잘못 들어 사막 트레일까지 맛보았네요.
지난 마라톤으로 아직 회복이 덜 된 상태라 그런지
어깨, 햄스트링, 발바닥에 처음 겪는 고관절 골반통까지 찔러댔어요.
너덜너덜해짐이 느껴졌습니다.
지나가는 자전거 보면
'한번 태워달라 할까?'
'전동 스쿠터로 쉽게 슝~가고 싶다.'
'아프다....'를 반복했죠.
마라톤 대회에서는 걷긴 해도 스트레칭 하거나 멈추진 않았었는데,
번호표 없이 같은 코스를 달리는 사람도 없으니
아프면 멈춰 스트레칭하고, 차에서 물 꺼내며 옷도 바꾸고 몇 분씩 쉬기도 했습니다.
릴랙스~~.
6. 왜?
대체 왜 그렇게까지?
잘 달리는 것도, 러닝 마일리지가 높은 탁월한 러너도 아닌 사람이,
인생 두 번째 마라톤을 마친 지 17일 만에 몸이 다 회복되지도 않았는데
왜 이런 강행군을?
어제의 목적과 목표는
뉴욕 마라톤 2025의 버츄얼 완주였습니다.
얼마 전 운 좋게 Virtual TCS New York City Marathon-Guaranteed Entry Tier에 당첨되었고,
뉴욕 마라톤이 있는 이번 주에, 어느 곳에서든 풀코스 완주하면 2026년 참가를 보장받습니다.
7. 그래서?
(육하원칙에 하나 더 추가한다면)
뉴욕이 그렇게 가고 싶었나?
7대 메이저 마라톤?
마라톤이란 나에게 무엇인가?
완주 후 이 3가지 질문에 대해 자신과 대화를 해보았습니다.
뉴욕이나 뉴욕마라톤에 관한 환상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회가 되어 한번쯤 가게 되면 하고 싶은 것들은 있었습니다.
뉴욕에 사는 오랜 친구도 만나고 싶고, 미술관들, 거리도 걸어보고 싶은 마음?
그 구실이 마라톤이라면 현실적이고 가족들과 함께 갈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처음에는 7대 메이저 마라톤을 완주하면 멋지겠단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얽매이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도 혹시 기회와 시간과 운, 기타 상황이 된다면 어쩌면? 일뿐 절대적 갈망은 아닙니다.
마라톤.
달리기 혐오자였던 달리기 꼴찌가 택한, 가장 비효율적이고 고집스러운 도전이지요.
저에게 달리기는 돌아가던 벽이었어요.
하지만 돌아가지 않고 한 번 통과해 보았습니다.
그 너머에 찾은 뜻밖의 작은 가능성, 그것이 주는 기쁨을 만났습니다.
주어진 행운에 맞는 도전 하고 싶었습니다.
시작한 도전을 끝내고 싶었습니다.
지금이란 시간을 충만하게 보내고 싶었습니다.
미래의 기대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또 하나의 완주를 하면 어떤지 알고 싶었습니다.
첫 번째 완주의 감격은 거의 2달 간 것 같아요.
그로부터 일 년 뒤, 두 번째 완주의 기쁨은 2일 정도,
막 끝낸 세 번째 완주의 흥분은 2시간 정도?
응원의 환호도
배번 달고 달리는 수많은 사람도 없이,
거리 표시도
피니시 라인의 감격도
완주 후 걸어주는 메달도 없이,
조용히 혼자 가는 42.15Km.
그 길은 자신에게 마라톤이란 무엇인지가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마라톤의 필수 요소라고 생각했던 것들.
응원, 기록, 피니시 라인, 메달, 완주자 타이틀.. 사실은 장식이었고,
본질은 오직 왜 달리는가, 그리고 달리고 있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였습니다.
심지어 완주도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직은, 아직까지는
마라톤이 뭐다라고 정의하고 싶거나, 정형화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럴 단계가 아니라고 말하는 게 더 솔직한 표현입니다.
한 번에 친해지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좀 알았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래서, 녀석을 그저 좀 더 곁에 두어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