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차라리 명품에 미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많이 벌진 않았지만 대학생 시절부터 용돈을 벌었고,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계속 강사로 일을 했다. 서른이 넘어서는 더 대단한 일을 해보겠다며 일을 벌였고, 평일과 주말을 구분하지 않고 항상 뭔가를 했다. 휴일은 없었고, 아파도 이틀이면 나았고, 20년 가까이 일을 하며 열흘 이상 쉬어본 적이 없다. 그렇게 살며 보낸 38년이란 시간. 2025년에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38살이란 나이는 꽤나 늦은 나이다. 이 나이쯤엔 다들 적어도 주택자금대출을 받아 전세로 살며, 꽤나 쌓은 경력으로 안정된 직장생활을 할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결혼을 하거나 누군가에게 들려줄 만한 좋은 경험담을 잔뜩 쌓았을 그런 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쌓은 경험도 화려하지 않으며, 주택자금대출을 받을 만한 능력도 없다. 쉬지 않고 일하며 벌었던 돈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사실 너무나도 부끄럽고 창피하지만, 나의 소비습관에는 문제가 많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아는 사람이 볼까 두렵다. (지금 카페 옆자리에서 들여다볼까도 두렵다. '이런 상황에 무슨 카페냐?' 하시는 분들을 위해 변명해 보자면, 커피는 쿠폰으로 샀습니다.) 그럼에도 앞으로는 새사람처럼 살기 위해 솔직하게 써본다.
중학생 시절, 좋은 경제 관념을 만들어주기 위해 엄마가 통장을 만들어 주신 적이 있다. 처음으로 용돈이 동전에서 지폐로 바뀌었던 때이기도 했다. 그때 정말 작고 소중한 용돈과 명절마다 받는 금액을 모아 몇십만 원 정도는 쌓았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일이었는지 모아둔 돈을 쓰게 됐고 그때 뭔가 잘못됐던 것 같다. 봇물 터지듯 소비가 터졌다. 그 이후로 나는 돈을 모아본 적이 없다. 핑계를 댈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었으면 그나마 다행이었을 텐데, 그런 것도 없었다. 나의 부모님은 가난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열심히 일하며 돈을 아꼈다. 그 당시 다들 받는다는 학자금 대출조차 남기지 않으려고 넉넉하지 않은 집안이었음에도 애를 썼다. 언제 생각해도 참 감사한 일이다. 거기에 더해 건강한 신체를 물려받았고, 크게 아픈 일도 없었다. 내가 어쩔 수 없는 환경은 아니었던 거다.
그럼 그 돈이 다 어디로 갔을까. 누구는 차를 사고, 누구는 전자제품을 사랑하고, 누구는 명품백에 미치지만 나는 그 어느 것도 사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그래서 더 부끄럽다. 차라리 명품을 휘감고 다니던 시절이 있고, 그 가방과 옷들이 집안 어딘가에 고스란히 남아있으면 좋겠다. 매년 휴대폰을 바꾸거나 노트북을 바꿔가며 얼리어답터가 되었더라면, 그 물건들을 써본 후기라도 남아 있을 테지. (10년 전에 선물 받은 노트북 한 대를 아직도 쓴다.) 또는 차를 사서 그 좋아하는 여행을 신나게 다녔다면 후회가 없을 텐데, 나는 아직 운전면허도 없다. 써놓고 보니 정말 창피하다. 나와 조금이라도 비슷한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면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때그때 꽂히는 것들을 사는데 진심이었던 것 같다.
엄마가 시장에서 사다 주는 옷이 아닌, 내가 번 돈으로 내가 고른 옷을 사 입을 수 있는 성인이 되었을 때, 매일같이 옷을 샀다. 인터넷 쇼핑몰이 활발하지 않았던 시절, 틈만 나면 시내에 나가서 옷구경을 했다. 그리고 꼭 하나씩은 사서 돌아왔다. 옷이든, 가방이든, 머플러든, 모자든. 이것저것 사보는 게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늘 구경 가는 곳은 저렴하게 이런저런 것들을 파는 곳이었고, 당연히 질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게다가 쉽게 사는 만큼 빨리 질렸고, 그만큼 더 자주 다른 것들을 사게 됐다. 불행하게도 봇물 터진 소비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