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명품하나 걸쳐본 적 없지만, 대학생시절 남자 선배들은 나를 '된장녀'라 불렀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짐작가시리라.
나는 학식을 내 돈을 주고 사 먹어본 기억이 없다. 푸드코트 같은 분위기의 넓고 시끄러운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고 싶지 않았다. 그 분위기가 싫었다. 그래서 공강시간이 길었던 날엔 대학로에 나가 양식이나 일식, 퓨전 한식 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사 먹었고, 그렇지 않았던 날엔 동아리실에서 밥을 배달시켜 먹었다. 당연히 돈을 더 주고 먹는 밥은 맛있었고, 그게 그저 좋았다.
학식을 먹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된장녀'라 불리기에 충분했지만, 다른 이유가 더 있었다. 카페다. 지금은 걷다 보면 한 블록당 카페가 셀 수 없이 많지만, 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내가 고등학생 시절,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나를 가르치던 (거의 언니 뻘인) 과외 선생님이 가끔 카페를 데려갔는데 너무 좋았던 거다. 그 경험이 너무 행복했어서 용돈벌이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카페를 제 집 드나들듯 했다. 테이크아웃한 커피는 내 착장과 같았다. 그때 시작된 카페 사랑은 내가 서른 중반이 될 때까지 계속됐다.
그것뿐이었으랴. 카페에 가면 볼 수 있는 예쁘고 달콤한 디저트는 나의 낙이었다. 카페에 가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날엔 꼭 하나씩 주문해서 사진을 찍고 기분을 냈다. 가끔 집에서도 엄마의 잔소리를 피해서 몰래 숨어 과자를 먹곤 했을 만큼 단 걸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카페에서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때면 해방감이 느껴졌던 것도 같다. 뚱카롱이 유행하기 십여 년 전부터 나는 고급 제과점에서 마카롱을 사 먹으며 돈을 썼고, 비싸서 사람들이 가지 않는 백화점의 컵케이크 집도 자주 갔다. (진짜 비쌌던 건지 얼마가지 않아 망했다. 요즘 유행하는 두쫀쿠가 그렇게 비싸다는데, 거의 15년 넘는 과거에 나는 컵케이크를 오천 원씩 주고 사 먹었다. 그것도 두 개씩.) 요즘 파는 집을 잘 볼 수 없어 아쉽지만 에클레어도 정말 좋아하고, 알록달록 반짝이는 타르트는 말해 뭐 해. 아마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재정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도 카페에 가서 디저트를 먹는 시간을 인생의 낙으로 여겼을 거다.
슬프게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던 소비 품목이 또 있다. 바로 '문화비'다. 나는 책과 전시회, 공연을 사랑한다. 어쩌면 그걸 좋아하고 즐기는 나의 모습을 사랑하는 거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여전하다. 아무튼 그때의 나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서점에 들러 두 세 권씩의 책을 샀고, 한 달에 한두 번은 뮤지컬이나 오페라를 봤다. 그리고 보고 싶은 전시회가 있다면 꼭 빼놓지 않고 보러 갔다. 나의 대부분의 일상은 이러했다. 서점을 가는 김에 카페에 들러 디저트를 사놓고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전시회를 보러 가서는 근처에 있는 카페에 들러 또 시간을 보냈다. 그게 나의 놀이였고, 나의 취미였다.
그렇게 혼자서 고상한 짓거리(?)를 하는 나는 과 내에서 별종이었고, 그 덕에 '된장녀'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게 싫지 않았다. 나도 허세가 있는 사람이었던 거다. 거기에 허영심까지. 그래서 '된장녀'라는 소릴 들으며 더 기분 좋게, 보란 듯이 나의 취미를 즐겼고, 내 통장은 배부를 틈이 없었다. 그리고 그 소비패턴은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나이가 서른을 넘어가면서도 계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