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직장에서 나와 커피를 내립니다

by 서하

간절하게 꿈에 그리던 회사를 몇 년만에 퇴사했다.

대학 졸업 후 카페를 하면서 계속 진로 고민을 해왔는데, 나랑 잘 맞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원한 회사였다. 우리나라 기업을 도우면서 수출에도 기여한다니 하는 일도 보람있을테고, 해외 출장도 많고 해외가서 살기도 한다니 재미도 있을테니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대학 때 교양강좌 들은 거 말고는 전혀 몰랐던 경제학을 다시 공부하면서 입사 준비를 했다. 서류 제출부터 최종 면접까지 꼬박 일년이 걸려 합격한 회사. 졸업하고 4년 뒤에 들어간 회사인만큼 그동안의 공백기도 길었고 꽉찬 나이에 대한 부담도 있다보니 합격의 기쁨과 마침내 해냈다는 성취감이 컸다. 사실 그래서 회사가 참 고마운 존재이긴 하다. 간절한 마음으로 지원했던 나를 뽑아준 것에 대한 감사함, 이건 내가 아무리 회사를 떠났어도 항상 남아있을 마음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점은 아이러니하게도 회사의 위치였다. 대부분의 회사 사람들은 우리 회사 위치가 너무 외곽이라고 불만이 많았는데, 나는 오히려 도시의 중심이 아니라 약간 외곽에 위치해서 비교적 동네가 한산하다는 것, 그리고 근처에 넓은 공원과 양재천이 있다는 게 좋았다. 그 개천이 너무 좋아서 회사 근처에 집을 구해 살면서 따릉이를 타고 출퇴근을 했는데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도 날리고 지옥철을 피할 수 있었던 최고의 선택이었다.

집에서 걸어서 5분 걸리는 위치에 양재 야외 테니스장이 있었는데, 인기가 너무 많아서 토,일 아침 7시 반에 겨우 등록했다. 주말에 늦잠을 못자니 아침에 끙끙거리며 일어나긴 했지만 막상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공을 빵빵 치며 스트레스를 풀고, 나무로 둘러싸인 벤치에서 피톤치드 흡수하면서 커피 한 잔 하면서 쉬다가 양재꽃시장으로 가서 향기로운 꽃을 사 들고오는 루틴이 나에게 큰 힘을 주면서 활력의 원천이 되었다.



회사 생활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일하려고 고군분투했던 시간의 연속이었다. 회사는 내가 생각한 분위기와는 너무 달랐고, 보람과 열정을 가지고 일하기에는 부딪히는 상부하달의 관행이 많았다. 생각에 따라서 누군가에게는 안정적인 시스템이겠지만, 주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찾아야 직성이 풀리는 나에게는 회사라는 톱니바퀴의 일부로 남는 것이 쉽지 않은 숙제였다. 일이 돈 버는 수단일 뿐이라고 타협하기엔,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공간에서 내 존재의 이유를 확인받고 싶은 사람이었다.

회사 다니면서 한 일 중에 가장 보람있던 일을 생각해보면, 카페 운영할 때의 감각과 경험을 발휘해서 탕비실을 카페처럼 정리하고 꾸며서 깨끗한 휴식 공간으로 바꾼 일이었다. 팀을 새로 배정받아 아직 주어진 업무없이 덩그러니 앉아있는 날이었는데, 엉망인 탕비실을 하루종일 정리해뒀더니 변신한 탕비실을 보고 놀란 팀원의 표정을 잊을수 없다. 업무에서는 일을 하면서 진정 보람을 느낀 적이 있었나? 솔직히 생각이 나질 않는다. 특히 해외 발령이 자주 나오는 곳이다보니 업무 활동이나 실적 그 자체보다는 관계의 결을 살피는 평판 관리에 훨씬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었다. 나는 내가 필요한 만큼의 돈은 어디서든 벌 자신이 있는데, 그렇다면 이곳에서 내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라는 고민을 오래도록 하다가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다. 이곳은 나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 중에 만난 하나의 무대일 뿐 내가 뿌리를 내릴 곳은 아니라는 것을.


나에게 인생은 끊임없는 도전이다. 변화하고 더 나아지고 성장해야 한다. 특히나 내 자신에게 솔직하게 묻는 것, 나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목표한 지점을 하나 이뤘다고, 거기에 안주해서 지키기만 하고 더 이상 성찰하지 않아서 본인의 내면이 후퇴하고 있는것도 알아채지 못하는, 그런 흐리멍텅한 삶을 살긴 싫다. 내가 가진 빛으로 주변을 환하게 밝혀주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데, 잘못된 곳에 있으면 나의 빛마저 희미하게 꺼져가는 것을 느낀다. 그러면 그곳이랑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임을 알고 새로운 길을 용기 내어 모색해야 한다. 세상 소심이가 어떤 면에서는 세상 용감하기도 한 것, 어쩌면 이것이 나라는 사람의 본질이자 내가 사랑하는 나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마침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회사생활을 마치고 경주에서 커피를 내리는 삶으로 돌아왔다. 잠깐동안 낮잠을 자면서 한편의 꿈을 꾸다가 깬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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