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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yleap Mar 01. 2021

일단 꾸준히 써 볼테다

현재를 저장하는 글쓰기

좋은 필력을 가진 사람들을 흠모했다. 책을 읽다가 촌철살인의 문구를 발견하면 메모를 하며 언젠가 나도 이런 필력을 가질 수 있기를 원했고, 문체가 나를 나타내는 지문이 되길 바랬다. 논리 정연하면서도 술술 잘 읽히는 글을 쓰는 사람들을 만나면 언제나 감탄했다.


실행력이 강한 사람들을 흠모했다. 나는 생각이 너무 많은 부류의 사람이라, 새로운 일을 추진하기 전에 늘 신중하다. 글을 쓰는 것은 내게는 실행력의 영역이라 부담을 느꼈다.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차라리 이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은 글쓰기를 더디게 만들었다. 그런 내게 2019년부터 시작한 글쓰기 모임은 꾸준히 글을 쓰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1. 글쓰기 모임. 작심(作心)

2년 전부터 일요일 오전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는 총 6명이 참여하고 있는데, 직장인들이 쓰는 글인지라 전문적인 글보다는 에세이나 본인의 업무를 정리하는 글을 많이 쓰시곤 한다.


지금도 글쓰기가 쉽지 않은데, 처음에는 더욱 어려웠고 피드백 받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필력도 부족한 데다 끊임없이 영감이 솟아나는 사람이 아닌지라 글이 안 써져 끙끙대던 순간들이 많았다. 전문적인 소재는 거창해서 안 써졌고, 일상적인 소재는 누구나 쓸 수 있는 그저 그런 글인 것 같아 쓰기 어려웠다. 그러나 꾸준히 글을 쓰면서 적어도 짧은 글 한 편을 시간 내에 완성 짓는 실력이 생겼고, 멤버들과 친분도 쌓이면서 글쓰기에 흥미가 붙었다.


글을 쓰며 한 주 동안의 생각을 정리하고, 관심 분야를 글로 정리해본다. 또한 멤버들의 피드백을 받고 비문을 수정하고, 주제에 대해 토론한다. 요즘은 팬데믹으로 인해 온라인 모임으로 진행하지만, 글을 통해 누군가를 알게 되고 소통한다는 연대감이 든든하다.


2.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현재를 저장하는 글쓰기

살아가며 다양한 감정을 만난다. 분명한 절망을 만나기도 하고, 벅찬 기쁨들도 만난다. 내가 아는 확실한 것은 이러한 감정 모두 정리해두지 않으면 빠르게 휘발되어 간다는 점이다. 생생했던 기억들과 호흡들은 무뎌지고 무채색이 된다.


내게는 글쓰기가 기억 휘발을 방지하고 감정과 기억을 저장하는 수단이 된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풍경을 진정으로 소유하려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인상을 굳히려면 글을 써야 하고 "말로 그려야" 한다고. 알랭 드 보통이 인용한 러스킨의 구절은 다음과 같다.


러스킨은 여행을 하면서 스케치를 하라고 권했을 뿐 아니라,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인상을 굳히려면 글을 써야 한다고, 그의 말로 하자만 "말로 그려야"한다고 생각했다.

(알랭 드 보통 - 여행의 기술 중)


'말 그림'을 그리는 것은 기억을 더 오랫동안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지뿐만 아니라 일상의 순간들도 ‘말 그림’을 그려 다채롭게 들여다 볼 수 있다면 그것은 현재에 오랫동안 머물 수 있는, 어쩌면 영원히 존재하는 현재를 만드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알랭 드 보통의 '말 그림'을 그리기 위함이다. 두루뭉술했던 생각들은 구체화가 되고 글을 통해 명확해진 감정과 기억들은 오랫동안 생명력을 얻게 된다. 마치 여행지에 가면 사진을 찍어 호시절을 기억하듯, 글 쓰는 것도 그 시절의 감정을 기억하는 좋은 방법이 된다.


기대 없이 읽었다가 깜빡 반해버린 여행 에세이. 알랭 드 보통의 생각의 깊이에 놀랐고, 인생 책이 되었다.


3. 아무튼 꾸준히 써보려 한다.

글을 쓸 때 말 그림으로 포착해내기 어려운 생각들을 만나면 막막함을 느낀다. 여러 가지 뒤섞인 감정이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연루된 일이 있다면 이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멈춰 서게 된다. 정확한 어휘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은 뭉개거나, 글 쓰는 것 자체를 포기했던 경험도 있다. (회사라면 양해를 구한 후 전화로 더듬더듬 주섬주섬 설명이라도 할 텐데 말이다.) 다양한 물감색이 섞인 그림을 표현하는 것과 비슷한 것일까? 우선 어휘력을 풍성하게 보강하고 구조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을 더 해보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우선은 ‘꾸준히’ 그리고 ‘일단’ 계속 써보려고 한다. 글의 짜임새와 어휘가 이상하고, 다시 읽으면 부끄러운 글일 수도 있지만 용기를 가지고 주욱 쓰려고 한다. 다양한 글들을 점처럼 흩뿌리다 보면 선으로 연결되는 순간들이 오기를 바라본다. 그러나 설령 선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괜찮다. 글을 쓰면서 나에 대해 더 잘 알아가길 바라본다. "못해도 괜찮아. 꾸준히 쓰다 보면 더 나은 글이 되어 있겠지"라고 믿어본다.



P.S 혹시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데 망설이는 분들이 있다면, 다음의 몇 가지 방법을 추천한다.

 1. 개별적인 글보다는, 주제를 잡아서 몇 편의 시리즈 글을 써보는 것. 시리즈 주제를 기획하는 것도 재미있고, 시리즈를 마무리 짓겠다는 욕심에 글을 몇 편 더 열심히 쓰게 된다.
 2. 지인들과 주기적으로 짧은 글을 쓰는 것. 아무래도 혼자 글을 쓰면 게을러지고 미루게 된다. 의무감에라도 글을 쓸 수 있도록 지인들과 함께 시간을 정해 주기적으로 써보는 것이 좋다.
글쓰기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가 보려 한다. 새로운 길에 어떤 배움들이 있으련지!

image by @robineggp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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