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상태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근육이 많다거나 건장한 체격은 아니다. 그럼에도 20대에는 그럭저럭 별 탈 없었고, 다쳐도 회복이 빨랐다. 그러나 20대를 벗어나고 보니 건강에 신경을 쓰게 된다. 서른의 초입에서 생각하는 건강한 상태에 대하여.
작년 7월은 무척 바빴다. 회사 동료들이 여름휴가를 가서 업무적으로도 정신없던 와중 친한 회사 동기가 조모상을 겪게 되어 대표로 부산에 조문을 갔다.
동기를 위로해주고 숙소에 돌아와 누웠는데 관자놀이 부분이 조금 눌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는데, 다음날 두통이 엄청나게 심해졌다. 고통은 7~10초 간격으로 반복되었는데 처음 느껴보는 강렬한 두통이라 어쩔 줄 모르고 속수무책으로 고통스러워했다. 머리가 강하게 울렸고, 통증 부위를 건드리면 아린 기운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급히 타이레놀을 먹고 서울로 올라와서 신경외과로 가는 도중 굉장한 불안감을 느꼈다. 두통이 이 정도로 고통스러운 것이었나? 일반적인 두통이 아니라 다른 병이면 어떡하지? 등등 다양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진단 결과, 대상포진과 같이 외상은 없는 것으로 보아 스트레스성 두통이나 긴장성 두통 같다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처음 겪는 두통인지 물어보았고,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의사는 보통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에 두통이 발생하는데, 이 두통은 평생 안고 가는 두통이라고 했다. 의사 본인도 의대생 시절 찾아온 두통이 40대가 넘은 아직까지 함께하고 있고, 두통이 올 것 같으면 예비 증상들이 나타난다고 했다. 또한 두통은 선제적인 예방이 필요하며, 본인에게 맞는 두통 해결책 등을 몸소 체험해보면서 알아가야 한다고 한다. 환자분도 경락, 스포츠 마사지, 스트레칭, 폼룰러 등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보라고 했다. (의사 본인은 냉온탕을 번갈아 들어가는 것이 효과가 좋다고 했다.)
강렬했던 통증에 비해 엄청난 질병은 아니라는 것에 안도하였으나 그 이후로 두통에 좋은 스트레칭을 해주는 습관이 생겼다. 두통이 생각보다 매우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운전 중에 두통이 왔다면 꽤 무서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이십 대 초반 팔팔한 나이를 지나면서, 건강한 상태가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다치고, 방치했던 문제들은 만성 통증으로 되돌아온다.
최근에는 집에 좀 빨리 가겠다고 어두운 밤에 골목길을 질주하다가 다리를 접질러 인대가 늘어나 반깁스를 했다. 날씨 좋은 주말에 집에만 있다 보니 쉽사리 우울해졌는데, 몸과 마음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오래 생각했다.
이밖에도 난 평소 자세가 안 좋았는데, 이제 그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일상적으로 다리를 꼬고 짝다리를 짚곤 했는데, 하반신의 근육들과 고관절 부분이 뭉치거나 쑤셔서 마냥 방치해둘 수 없게 되었다. (실제로 고관절이 짧아져서 등산을 하거나 오래 걸으면 고관절 주위가 아프다.)
이에 하루 15분 정도는 꼭 여유 시간을 확보하고 고관절, 허리, 골반 등의 스트레칭을 하고 폼룰러를 하는데, 매일매일 하다 보니 몸이 조금 가뿐해지고 가동범위가 넓어짐을 느낀다.
뒤늦게 몸을 함부로 다뤘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 한 마디 하고 싶으나, 사실 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도 내 맘대로 자세를 취할 것을 안다. 결국 건강과 자세 역시 경험의 영역인 듯하다. 이미 안 좋아진 자세에 무작정 불평하기보다는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조금씩 꾸준히 해야겠다.
몸의 건강 뿐 아니라 마음의 건강도 정말 중요하다. 몸의 건강은 통증을 통해 쉽게 체크라도 하겠으나, 마음의 건강은 보이지 않는 분야라 쉽사리 방치되기 쉽다. 요즘 같은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 번아웃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접하곤 하는데, 최근 나 역시 일종의 번아웃을 경험했다.
얼마 전 본업에서도 굉장히 바빴고, 부캐에서도 기획 단계의 일이 많아 계속 고민하고 인풋을 넣었다. 출근해서는 본업에 집중하고, 퇴근 후에도 영혼을 갈아 넣어 부업일을 하다 보니, 마치 내 안의 땔감을 쉼 없이 짜내서 연료로 태우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얼마 있지 않아 무기력감을 느끼고 쉽게 지치고 몸의 컨디션도 나빠졌다.
번아웃 시기를 지나면서, 내 안의 땔감을 채우는 재충전의 시간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잘 일하기 위해서는 잘 쉬어주라는 말이 결코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나무꾼이 무디어진 날을 갈아주는 시간이 꼭 필요한 것처럼 방전된 나를 채우는 충전이 꼭 필요하다.
이제는 의식적으로 챙겨야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조금 서글프지만 자연스럽게 나이 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해본다. 또 나는 면역력이 약하고 쉽게 아픈 사람이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번아웃도 오지 않을 것임을 배운다. 여유를 가지고 잘 쉬어주고 운동과 스트레칭을 할 것. 나의 몸과 동행하며 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다.
image by @robineggp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