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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yleap Jan 31. 2021

2년차 초보 자취러

원룸이라는 작은 우주

작년 3월부터 회사 근처 원룸에서 첫 자취를 시작하면서, 집을 관리하는 방법들을 알게 되었다. 원룸 치고는 베란다도 2개나 딸린 꽤 큰 방인데, 하나하나 값진 배움들이 많았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내가 관리해야 할 세계가 내 방 하나였는데, 이제는 하나의 집으로 확대되니, 내가 알고 있던 세계의 외연이 확대된 느낌이 든다. 이제 2년차 자취생이 되기 전에, 더 나은 초보자취러가 되기 위해 기억들을 기록해본다.


1. 아홉수가 남긴 선물  = 자취 시작

본가인 연희동에서 회사가 위치한 양재동까지 대중 교통으로는 1시간 20분 정도가 걸린다. 아침에는 셔틀버스가 있긴 하지만, 6시 30분에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서 오전 5시 40분에 일어나는 시간이 계속되다 보니 지치기 시작했다.

 

또한 2019년, 스물 아홉시절에는 (아홉수 때문인지) 야근도 정말 많고 프로젝트 난도도 높아 힘든 시간들을 보냈고, 체력적으로나 심적으로나 고갈이 심했다. 힘든 시간을 지나오며 늘 생각만 하다 어물쩡 넘어갔던 자취에 대한 갈급함이 높아졌고, 자취를 시작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부모님도 내가 지친 것을 느끼셨는지 이번에는 쉽게 허락해 주셨다. 힘들었던 아홉수가 준 선물이라고 생각해본다. 어쩌면 세상 모든 것들이 동전의 양면이나, 새옹지마는 아닐런지.


2. 자취를 하면서 알게된 것들


(1) 내 자유 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야

자취를 하면서 얻은 큰 배움 중 하나는, 자취를 하면서 통근 시간이 많이 줄고 개인 시간이 많이 늘긴 하지만, 나의 쉬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줄어든 통근 시간을 채우는 것은 집안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 켜켜이 쌓이는 먼지, 빨래, 설거지를 하며, 집안일이라는 것이 얼마나 쉼없는 동적인 존재인지 처음 배웠다.

 

(2) 생각보다 요리에 관심이 많구나

자취를 시작해 처음으로 제대로 된 요리를 해 보았다. 레시피를 찾아보고 재료들을 사고 조리 도구들도 장만했다. 몇 번 친구들을 초대해 성공한 요리를 대접하기도 하고, 한번은 민망한 요리를 대접해보기도 했다. 비록 야근이 다시 많아지면서 요리의 빈도는 많이 줄고, 재료는 상해서 버리는 일이 많아졌지만, 요리라는 분야 자체에 관심이 많이 생겼다. 어쩌면 요리도 음식을 만드는 순간에만 집중하게 하는 명상과도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먹는 일도 호흡하는 것만큼이나 일상적이지만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복작복작 음식을 만들고 술상을 차리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


(3) 왠지 모르게 더 늘어난 야근

자취를 하면서 유일하게 안 좋은 점은, 집이 회사에서 10분거리로 바뀌면서 걸핏하면 야근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초집중해서 끝내면 좋을 일도, 조금씩 야근으로 미루는 경향이 생겼다. ‘어짜피 집이 가까우니까 야근 좀 해도 돼’와 같은 마음들이 모여 퇴근이 점점 늦어진다. 이 생각이 무서운게... 야근을 밤 11시, 12시까지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다. 내 삶을 챙겨줄 사람은 나 밖에 없는데, 워라밸을 잘 챙겨야 할 것 같다. 워라밸 챙기기는 내 올해 주요 목표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4) 동파는 무서워

양재동의 작은 내 원룸에도 역대급 겨울 한파가 몰아닥쳤다. 나름 입동 준비라고 전기요도 구입하고, 뽁뽁이도붙이고 준비를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초보자취러 답게 동파에 대해선 소홀히 했더니, 화장실 배수구가 막혀버렸다.... 히터를 하루종일 틀어두고, 화장실 배수구에 드립 커피 만들듯 뜨거운 물을 부으며 배수구를 간신히 녹였다. 동파가 이렇게 무서운 것인지 미처 몰랐다..


동파된 배수구를 녹이면서 왠지 서글프면서도 웃겨서 사진을 찍어두었다.


3. 자취. 나를 더 알아가는 과정


자취를 하면서 처음 맞는 겨울을 우당탕탕 보내고 나면 자취를 하며 이 작은 원룸에서 4 계절을 모두 살아본 셈이 된다. 4계절을 모두 살아본 만큼, 내년에는 조금 더 능수능란한 자취생이 될 수 있을까? 작은 방에서 자취 연차가 많이 쌓인다고 하더라도, 자취 환경이 급격하게 개선된다거나, 삶이 변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지고, 내가 편히 쉴 수 있는 방이 된다면, 그리고 작지만 의미있고 확실한 생활의 발견들을 충분히 해 나간다면 그거 하나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자취를 할수록 원룸의 환경들, 그리고 여유있는 삶에 대해 계속 되새기게 된다.

  image by @robineggp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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