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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yleap Oct 09. 2021

위기의 가족

결혼이야기 & 비포 미드나잇

한 가족이 아무 불화 없이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사는 것, 동화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모든 가족은 유리 위를 걸어가듯 위태로운 순간을 만나고 제각각의 방법으로 해결해 간다. 이번에 소개할 두 영화는 이혼 위기에 놓인 가족에 대한 영화이다. 


1. 결혼이야기

결혼이야기는 찰리(애덤 드라이버 분)와 니콜(스칼렛 요한슨 분)의 파경 과정을 그린 영화로, 이혼 소송에서 과거에 행복했던 순간을 돌아보는 시선이 따듯한 영화다. 하지만 동시에 구구절절하고 세상 차가운 이혼 소송 과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에(i.e. 현실적인 변호사와의 이혼 소송 승리 전략 등), 마치 내가 이혼을 하고 있는 것처럼 피곤한 영화이기도 했다.


특히 연기력이 절정에 달한 두 배우가 치열하게 부부 싸움을 하는 클라이맥스 장면에서는 누가 옳다, 그르다, 이혼이 좋다, 나쁘다라는 가치 판단을 할 수 없었다. 현실적인 이유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당사자 두 명만 이해할 수 있는 사연으로 바뀐다. 미처 말 못 했던 불편함, 상대방 가족에 대한 불만, 어긋난 이해와 커리어 갈등이 모여 결국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게 한다. 


결혼을 연애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을까? 연애를 할 때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마음으로 불편함을 계속 넘어가다 보면 결국 몇 배로 후폭풍이 되어 돌아온다. 만약 결혼을 연애의 연장선으로 본다면, 결혼 후에도 배우자와 솔직하게 소통하고 다시 눈 맞춤을 하고 건강한 부부싸움을 많이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설령 가정의 무게, 육아의 고됨, 체력 문제 등으로 쉬고만 싶더라도. 

찰리와 니콜의 이혼 소송을 보고 있자니, 전 세계 사람들의 이혼 사유는 꽤 보편적이지 않을까 싶었다. 안나 카레니나 중 명대사인 행복한 가정은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대사에 빗대어 보면, 제각각의 이유로 결혼을 선택하나 비슷한 이유로 이혼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혼의 이유는 편하고 오래되어 어떻게든 수습할 수 없는 사랑일 것이다. 마치 조정치의 노래 이혼의 가사처럼.

잘못된 건 하나니까 편하고 오래된 사랑 잘 가라 난 떠난다 이대로 살 순 없어
미안해 넌 착한 사람 어디서든 행복해라 더 이상 우리를 가두지 말자

조정치 -이혼 (feat 선우정아) 

https://www.youtube.com/watch?v=O1JYOAIuwng

감독 : 노아 바움백 

평론가 코멘트 : 위트 넘치는 터치로 끝내 사무친다 (이동진 평론가 / 별점 4.0)


2. 비포 미드나잇

비포 시리즈 3부작의 완결편 비포 미드나잇도 위기의 가족을 담는다. 비포 선셋과 비포 선라이즈는 인생을 고찰하고 사랑을 키우고 재회하는 두 주인공의 모습을 담았다면, 비포 미드나잇은 현실적인 부부싸움의 이야기가 주요 에피소드가 된다. 그리스의 아름다운 해변 마을에서 두 주인공은 치열하게 싸우고 대화한다. (비포 시리즈답게 나이 들어가면서도 변하지 않는 사랑의 숭고함과 원숙함을 이야기할 줄 알았던 내 생각은 큰 착각이었다.)


비교적 평화로운 영화에서 초반부 영화의 롱테이크 씬이 너무 좋았다. 풍경이나 액션 장면을 담은 롱테이크가 아니라 두 주인공의 끊임없는 티키타카로만 롱테이크를 채우는 것을 보면서 두 배우의 오랜 호흡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즐겁게 대화하다가도 후반부에서 치열하게 오해하고 싸우고 끝장을 보고 답이 없는 문제로 싸우다가 이혼 직전까지 향한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는 아닌 것 같다. 결혼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가 돌이켜보게 된다. 


비포 시리즈 중에서 이 작품만 청소년 관람불가이다. 왜 청불이 붙었는지 의아했는데, 영화 후반부에 제시와 셀린이 베드신에 들어가려고 옷까지 벗었다가 싸움이 크게 번지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 실제 부부의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데 셀린이 옷을 반쯤 벗은 채로 계속 말싸움을 한다. 비포 시리즈 특유의 롱테이크로 19금 말싸움(?)을 하는 장면은 은근히 현실적이었다. 그러나 밤의 카페에서 두 주인공은 그럼에도 다시 한번 같이 가보자는 비포시리즈다운 결론을 내린다.

감독 : 리처드 링클레이터 

평론가 코멘트 : 인물과 함께 닳고 원숙해지는 영화를 바라보는 행복 (김혜리 평론가 / 별점 4.5)


결혼의 현실적인 문제를 그린 두 영화를 보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한 영화는 결국 이혼하고, 한 영화는 다시 갈등을 봉합한다. 내가 믿고 선택한 사람과 헤어질 위기에 놓이는 것은 정말 큰 고통일 텐데, 갈등을 이겨내고 (잘 버텨내고) 살아가는 많은 가족들이 사실은 일상의 히어로일지도 모르겠다. 


P.S. 영화 결혼이야기에서 이혼 소송이 마무리되고 패소한 찰리가 부르는 BEING ALIVE를 듣고 있자면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뛴다. 어떤 시련이 와도 우리의 삶이 끝난 것은 아니고 얼음장 같은 일상을 구해는 것도 결국 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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