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날에 노고가 있듯이, 땀방울과 입김에도 사연이 있다.
어느 때는 정답다. 돌고 도는 계절 내내 나눠진 배려는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옮겨졌다. 그렇게 누군가의 마음속에 도달한 것들은 자신도 모르게 빛을 발했다.
나도 모르는 사랑이 됐다.
버스는 익숙한 만큼 지겹지만, 생각 외로 정겹기도 하다. 몇 년간 다른 지역으로 출퇴근하면서 그 의미가 더 커졌다. 버스 창가로 마주하는 여름과 겨울은 확연히 달랐다. 서로 다른 풍경은 각기 다른 형태의 마음을 품게 했다.
매일 같은 버스를 타다 보니 기사님의 교대 지점이 어디인지 알게 됐다. 새 기사님이 오시면 늘 승객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셨다.
"안녕하세요,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에어컨도 턱없이 부족한 폭염. 기사님의 이마는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가득하다.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고개를 숙여보지만, 사실 승객은 별 반응이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대신 기사님의 얼굴을 소심하게 바라본다. 약간의 눈 맞춤 후에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몇십 년간 반복해 온 업무일 텐데, 형식을 넘어 존중이 느껴지는 인사가 참으로 멋졌다.
한편으로 '일'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도 든다. 일 안에 삶과 죽음이 모두 존재했다. 어느 때는 한 사람의 희생이 단순한 짧은 정보로, 가벼운 경고 하나만으로 멈추기도 한다. 클릭 한 번으로 흘려보내는 아픔은 많았다. 얼마 전에는 인력이 부족해 열 시간 넘게 운전을 한 기사님이 쓰러지셨다는 뉴스를 접했다. 누군가 책임지고 일을 함으로써 편리함을 얻어가지만, 지켜주지 못해 헤아릴 수 없는 눈물도 만난다.
현장에서, 도로에서, 하늘에서 한순간에 집을 잃은 사람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누군가의 수고는 잊지 않아야 하는 것들을 떠올리게 했다.
겨울철만 되면 찾게 되는 의자가 있다. 바로 정류장 온열 의자. 한파에 맞춰 뜨끈하게 데워진 의자를 나는 '따뜻한 의자'라고 불렀다. 매일 오후 7시쯤 내리는 버스 정류장에도 이 의자가 있었다. 한 대밖에 없어 자리는 만석. 왠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기에는 굉장히 애매한 상황이다. 옆에 있는 나무 벤치에 앉아 주머니에 손을 넣는 순간, 내 어깨를 툭툭 치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저기 따뜻한 의자에 앉아계셔요."
따뜻한 의자에 먼저 앉아계셨던 아저씨가 내게 말을 건 것이다.
"아, 아니에요. 저 괜찮아요. 이제 곧 버스 타요."
"버스 올 때 타더라도, 따신 데 앉아계셔요. 추운데 어서요."
계속 두 손을 저었던 나는 어느새 아저씨 대신 따뜻한 의자에 안착해 있었다. "먼저 타세요, 먼저 타요." 버스 줄을 서면서도 끝나지 않던 아저씨의 선행. 마지막 순서가 돼서야 올라탄 아저씨는 곧이어 힘차게 인사를 하셨다.
"안녕하세요, 항상 수고가 많으십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목소리로부터 기억을 더듬었다. 이 시간대 버스를 타면 종종 들려왔던 말이다. 삭막한 공간 안에 울려 퍼지던 밝은 인사. 그 주인을 알게 되다니 괜스레 놀랍다. 평소와 다름없던 아저씨의 일상이 나에게까지 닿은 걸 보면 확실히 다정함에는 그만한 힘이 있는 듯싶었다.
"할머니, 혼자 가실 수 있겠어? 걱정되네. 아들내미한테 연락했어?"
선약이 있어 터미널을 방문한 참이다. 유독 큰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큰 보따리를 진 할머니와 직원분이 대화하고 계셨다.
"할머니, 제천까지 한 번에 못 가니까 충주에 내려서···. 우리가 충주표를 끊었잖아 그치. 내려서 택시 타고 제천병원까지 데려다 달라고 해야 해요. 잠시만 여기 그대로 앉아계셔. 어디 가면 안 돼요."
귀가 잘 안 들리는 할머니를 위해 또박또박 외치던 직원분이 자리를 비우셨다. 이제 남은 사람은 혼자가 된 할머니와 나, 그리고 옆에 앉아 떡을 들고 계셨던 아주머니까지 이렇게 셋. 정적이 이어지는데 다시 말소리가 들렸다.
"이거 드셔봐. 현미라 맛있어."
아주머니가 떡을 꺼내 할머니에게 내미셨다.
"고맙습니다. 아유, 맛있겠네."
"예, 하나 먹으면 배불러유. 제천은 왜 가셔?"
툭 던지는 것 같으면서도, 친절함이 장착돼 있는 말투. 이어 아주머니는 할머니 옆으로 가방을 옮기셨다. 내 시선은 두 사람의 뒷모습에 완전히 꽂혀 있었다. 며칠 전 강아지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붙던 나처럼.
움츠러든 어깨가 무거웠던 저녁. 집 앞 공원을 지나는데 하얀 뭉텅이가 쓱 하고 지나갔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꼬리를 보니 고단했던 하루가 잠시 잊히는 것 같았다. 은근슬쩍 강아지 뒤를 따라 걷는 내 입꼬리가 올라가 있다는 걸 깨닫고 자연스레 생각했다. 인생에서도 웃음을 짓게 하는 것들만 쫓아가고 싶다고.
남모르게 전달되는 다정함을 추구한다. 그 순간을 뒤따르면 내게도 같은 열매가 열릴 수 있을지 궁금하다. 서서히 맺힌 다정함을 나눌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랑을 유심히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