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할 때 행복하냐는 질문은 바로 대답할 수 있었다. 곧 무엇을 할 때 살아나는지를 생각하면 쉬웠으니까. 내가 되찾아야 할 건 그런 마음이었다. 회복이 필요했다.
친언니 에리카와 그녀의 연인인 히로. 뜨거운 햇볕에 몸을 가눌 수 없던 날 우리 셋은 만났다. 기본 능력치가 뚝딱거림인 나로서는 어색한 공기만 맴돌 듯하였으나, 실상은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오가는 대화 속 떠오른 주제는 미래. 미래 속에 수단과 본질이 나뉘어있었다. 히로가 에리카에게 먼저 물음표를 띄었다.
"에리카, 너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어?
그 물음에 담담히 대답하는 에리카였다.
"어? 지금 하는 일 그대로. 나는 덕질(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만 하면 돼."
다른 점이 많다고 느꼈던 자매지간, 유일하게 같다고 할 수 있는 점은 우리가 속한 일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에리카는 7년 동안 한 학원에서 일본어 강사로 일하고 있다. 돌고 돌아 힘겹게 정착한 일이었다. 그녀의 손을 잠깐 스쳐 간 일은 매우 많았다. 미술, 영화, 방송, 야구, 블로그 마케팅, 음향 등. 지금 보면 나의 언니도 20대의 방황을 제대로 겪은 듯했다. 어릴 때부터 일본 만화에 열성적이었던 그녀는 결국 가장 좋아하던 일로 돌아가 지금의 일을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취향을 파악하고 지켜내는 것에 많은 노력을 들였다. 또다시 좋아하는 걸 찾아 몰입했다. 생각해 보면 그녀 또한 무엇보다 본질을 중요시하는 사람 같았으니까. 이런 에리카에게 우선이 되는 건,
"좋아하는 거. 그러니까 일에 대한 욕심보다는 좋아하는 걸 채우기만 하면 행복한 거지."
나는 말했다. 그들에게도 스스로에게도.
나를 나로 만드는 일. 비로소 나답게 만드는 일에 대한 사랑을 돌이키고 싶었다.
나를 살게 했던 일이 힘겨워졌다. 쓰고 그리는 일이 어려워졌다. 온몸의 감각을 꺼버리고 싶었던 시점은 그동안 나 자체로 여겼던 습관들이 불편하다고 느껴진 이후부터다. 생각하고 확인하고 의심하는 일은 끝없이 반복됐다. 예민함에는 이 모든 과정이 포함된다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머릿속은 쉴 틈 없이 굴러갔다. 결국 며칠간 또 하나의 나를 만들어내는 것에 애쓰지 않았다. 써야 할 것, 그려야 할 것에 일일이 체크 표시를 하지 않는 날이 늘어갔다.
잊고 있던 본질은 나를 외면하는 일이 쌓여갈 때쯤 다시 찾아왔다. 또 다른 기회로 마음의 문을 두드려왔다. 그날 나는 들떠있었다. 좋아하는 작가님을 만나 뵐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기에 설렘이 가득 채워졌다. 역시나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 기분은 잔뜩 부풀어 올랐다. 한 권의 책이 제작되는 과정과 그 안을 메꾸고 있는 창작자의 손끝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두 시간의 여정을 보내고 문 밖을 나가려던 중 시선이 한곳에 꽂혔다. 순간 책장 한쪽에 있던 책 제목을 오랫동안 주시했다. 내가 되새겨야 할 간절함이 여덟 글자로 적혀 있었다. 그러니 데려오기를 망설일 수가 없었다.
마침내 나의 하루는 책을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책을 만드는 일의 쓸모를 얻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런 나를 보며 깨달은 것은 좋아하는 일이 있다는 것. 좋아하는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 안심이 된다. 간단한 사실에 요동치던 마음이 몇 번이고 다독여졌다.
미술 강사의 특성상 연필을 자주 사용해 왔다. 나름 중대하다고 할 수 있는 임무 중 하나는 연필 깎기. 심이 닳은 연필을 알아채 미리 깎아놓는 것 또한 일상이 됐다. 그런데 이토록 익숙했던 일이 갑자기 낯설어지다니. 평소와 다름없이 연필을 깎는 내 손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연필을 깎는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심을 길게 깎는 일은 꽤 까다로운 만큼 인내심이 들어간다. 잘못하면 연필이 부러지기도 하고, 적절한 각도가 나오지 않으니 미세한 조절은 필수. 끝이 너무 판판해지지 않게 긴장감을 가지며 모양을 유지해야 한다.
생각해 보면 연필을 다루는 법은 내가 좋아하는 일과도 닮아있었다. 무언가를 창조하는 일도 까딱하면 급해진다. 앞서나간 마음으로 해치우다 보면 금방 고꾸라지고 만다. 그래서 다듬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의 작업이 어떤 모습을 띠고 있는지, 어떤 방향을 추구하는지. 손질하고 매만지다 보면 그에 꼭 맞는 방식을 갖춰나갈 수 있다. 사실 나는 아직 다 깎이지 않은 연필이지만, 그럴 거라고 믿고 있다.
조금씩 깎이고 있다는 믿음 하나만으로.
짧고 못생겨진 연필을 보면 온라인상에 막 글을 적기 시작한 때가 생각난다. 투박하게 옮겨 담은 감정은 첫 게시글로서 단단히 고정됐다. 차마 눈 뜨고 보기에 낯간지러운 뭉툭함을 없애버리고 싶다가도 쉽사리 지울 수가 없다. 나의 부끄러운 자국에 더해진 누군가의 '좋아요'는 다른 무엇보다 선연했다.
나는 여전히 자취를 남기는 사람이라 분명히 오늘의 글도 못생기게 보일 때가 올 것 같다. 그 무딤을 깎고 또 깎아내는 게 내가 감당해야 할 일임을, 나의 일을 더 오래 할 수 있는 길임을 새겨본다. 그러니까 어쩌면 나도 에리카와 같다.
좋아하는 거. 좋아하는 걸 계속해 나가고 싶다. 꾸준히 사랑하고 싶다.
고여있던 시간을 되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