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틀어지거나 잘못된 것을 바로잡다.'라고 나와 있다. 평소에 잘 찾지 않는 사전을 들여다본 것은, 며칠 전 무심코 했던 행동 때문이었다. 내게 무언가 엇나가있는 점을 깨닫고 이를 교정하려 했다. 일시적인 결심이었다.
9월을 맞이하며 제법 해가 짧아졌다. 여름 내내 뒤늦은 출근을 하던 가로등은 이미 깜깜해진 거리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집 앞 버스 정류장에 내려 사거리에 멈춰 선 순간부터 길은 정해져 있다. 건널목을 건너 좌측 구석에 나 있는 작은 통로를 찾는 것. 집까지 빠르게 갈 수 있는 지름길이기에 이날도 나는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걸음걸이, 보폭, 속도 모든 게 같았다. 앞사람의 뒷모습을 보기까지는.
말린 어깨와 거북목. 어느덧 자연스럽게 고정된 나의 자세는 사진에 찍혔을 때 더 도드라지게 보였다. 그런 나와 똑 닮은 모습을 길 위에서 마주쳤다. '아, 지금 나 자세가 어떻지?' 은근히 거울을 보는 것 같아 걷는 중에 자세를 고치기 시작했다. 구부정한 등을 펴고 최대한 꼿꼿하게. 바닥으로 내리꽂던 시선은 앞을 향해. 하지만 한시적인 개선일 뿐, 자신을 온전히 바로잡지는 못했다.
틀어진 부분을 제자리로 고쳐놓는 게 혼자서는 잘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와 같은 삐뚤어짐은 계속 가지고 왔었을 터. 그런 빗나감을 쥐고도 나는 어떻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제대로 된 길을 갈 수 있게 힘을 보태줬던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 '바로잡음'의 바탕이 되는 건 어떤 마음이었을까.
"심창애 권사님의 기도로 추도예배(고인을 추모하는 예배)를 마칩니다. 자, 엄마 차례예요."
매년 할아버지의 기일이 오면 우리 가족은 새벽 일찍 거실로 모였다. 졸린 눈을 비비며 간신히 성경책 앞에 앉은 막내가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이 시간은 늘 이어져 왔다. 예배를 마칠 때가 되면 할머니의 두 손은 더 세게 모아졌다. 각기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자식, 손주들의 기도가 쏟아져나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다 보니 장장 5분이 넘어가는 것은 기본. 나는 할머니의 고백에 내 이름이 들어가 있는 것이 좋았다. 그 사랑은 어떤 걸로도 끊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이 믿음을 언제나 기억하면 좋을 텐데, 닮아가기만 하면 참 좋을 텐데. 그럼에도 쓰러진 적이 많다. 도리어 누군가를 미워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원망했다. 잘못된 길을 가다가, 마지못해 되돌아오다가, 포기하고 멈춰 선 날도 넘쳐났다.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호통쳤다. 나를 바로잡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꾸중뿐이라고 여겼다. 이 생각이 단순한 고집에 불과함을 입증하듯이 어려움은 항상 찾아왔다. 어떻게든 홀로 해결하고, 참아내고 싶던 장애물이었다.
1년 전 이런 거대한 허들을 넘는 게 힘겨워졌을 때 나는 겨우 항복했다. 꼼짝도 하지 않는 문제의 벽을 애써 밀어보는 일을 포기했다. 그 근거로 한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너무나 오랜만에 전한 안부였다.
[내가 이런 문제가 있는데, 사실 견디기가 무서워. 기도해 줄 수 있을까?]
이후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늦은 밤 퇴근 버스 뒷자리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나는 잠시 주춤하다가 전화를 받았다.
"소소야, 문자 봤어. 지금 널 위해 잠시 기도해도 괜찮을까?"
그간 닫혀있던 마음이 미안하게도, 친구의 목소리를 듣고 울음을 삼켜버렸다. 타인의 간절함 속에 내가 들어가 있다는 것으로부터 위안을 받았다. 누군가 날 위해 흘린 눈물은 어둠을 걷어내게 했다.
"아이고, 소소 씨. 어떻게 91세 할머니보다 근육량이 적어."
길 위에서 자세를 고쳤던 그날 저녁, 나는 결국 가까운 휘트니스 센터를 등록했다. 굽은 등을 신경 쓰다가 근육 하나 없는 비실비실한 몸뚱이가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센터 문을 열기 전 고민했다. 열에 아홉은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던 홈트를 어쩌면 내일 정말 시작할 수 있을지도. 하지만 답은 명백하다. 나의 안일한 생각에 함께 맞서줄 수 있는 것이 필요했다. 기구 하나에 끙끙대는 나를 보며 선생님이 던지는 말은 매우 든든하다.
"그래도 걱정하지 말아요, 같이 개선할 수 있어."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희생이 필요할까. 확신할 수 있는 건 여태껏 나는 그 힘을 받아 바로 설 수 있게 됐다. 문제로부터 여기저기 휘청대는 날이 난무하다 해도, 결국은 성장해 왔다.
나조차도 모르게 누군가 내가 탈이 없기를 계속해서 바라고 있다는 걸 안다. 혼자서도 꿋꿋이 바로 설 수 있다고 자부하던 나를 도와주던 사랑을 안다. 그러니 나도 당신을 위해 두 손을 모은다. 당신조차도 모르게 뚝뚝 사랑을 흘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