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넘겨받는 사람

by 슬로우소소

초등학교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 이어달리기를 했다. 체육을 못했던 내가 억지로 트랙 위에 섰던 기억이 강렬하다. 좁혀지지 않는 간격을 줄여보려 죽어라 뛰다 보면 어느새 운동장에 내 이름이 울려 퍼졌다. "이겨라! 김소소!" 응원 소리가 마음의 짐이 될 수 있다니. 결국 몸이 굳어 이전 주자가 건네는 배턴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연결이 끊기면 아무리 쫓아가도 앞사람을 제칠 수 없다. 그러니 배턴을 놓친 이후로 이어달리기라는 건 피해만 왔다. 내심 잡고 있던 것을 잃게 될지, 망치게 될지 겁이 나기에. 얼굴에 철판을 깔고 달릴 수 있는 무모함이 부족했던 걸 수도 있겠다.



누군가 그랬다. "마음을 미래와 과거에 쏟지 마세요." 나를 지키려는 방어막이라고 해도 걱정과 불안은 몸을 피로하게 한다. 아무렴 후회는 얼마나 소용없을지. 이런 내가 유일하게 현재에 마음을 두는 때는 따로 있다. 그냥 멍때리는 시간. 왜 이렇게 멍을 자주 때리냐는 말을 듣고 나서 고쳐볼까 했지만, 지금 와보면 딱히 그럴 필요도 없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사회에서 단지 휴식하는 것뿐이라.


종종 내가 멈춰있는 것 같다는 비교 의식이 들 때, 의심처럼 생각이 한 자리에 고이게 될 때 바로 실행한다. 그러다 보면 미련 없이 떠내려가는 의식의 흐름이 꽤 재밌어진다. ' 사람이 입은 흰색 티셔츠 참 귀엽다. 티셔츠 안에 삼각형 모양이 있네. 삼각형, 삼각형···. 피자, 조각 케이크, 그리고 또 삼각형 모양이 뭐가 있더라?' 이렇게 말이다.


어느 날도 이와 같았다. 미처 거르지 못한 문장들이 머리 한구석에 모여 이마를 찔렀다. 꿰매지 못한 마음이 어수선해지니 특별한 조치를 취해야 했다. 첫 번째, 몸을 가볍게 하기. 생산적인 일은 포기하자는 다짐으로 짐을 줄인다. 두 번째, 움직이기. 최대한 사람이 바글바글한 곳에 발을 디딘다. 거창한 말에 비해 상당히 소박한 방법 같지만, 나름의 구실이 있다. 관찰할 게 많을수록 머리를 비워내기 딱 좋다. 여기까지 용기를 냈다면 마지막은 쉽다. 본격적으로 멍때리기를 하면 된다. 해가 져가며 오디오를 채우는 사람들이 교체되는 모습을 바라본다. 한 사람이 가면 다른 한 사람이 와서 빈자리를 채웠다. 의자는 데워지고 식기를 반복했고, 사람에 따라 테이블의 분위기도 시시각각으로 바뀌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남겨준 온기를 넘겨받고 또 넘겨받는 과정이 되풀이됐다.



의자가 데워진 온기는 얕지만, 누군가 정성으로 가꿔놓은 공간은 이보다 더 뜨겁다. 며칠 전에는 그런 공간을 이어받게 됐다. 나이가 지긋하신 사장님께서 운영하셨던 작은 카페였다. 플라워 카페를 꿈꾸는 엄마는 인수 후 로망을 실현할 때를 간절히 바라왔다. 하지만 현실은 다른 법. 로망을 이루기 전에 실수의 바다로 빠져버렸다. 커피를 만드는 것도, 머신과 친해지는 것도 애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손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미소를 보이는 것도 관심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직은 낯선 공간을 둘러보고 있자니 커피 향을 닮고 싶어진다. 주방에서부터 퍼져나온 커피 향을 슬며시 따라가 보았다. 오래된 물건 속에 담겨있던 건 향과 세월. 이어져 오는 건 우리뿐만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비로소 달리기를 해야 할 순간, 전 주자가 건넨 배턴을 받아낸 순간 우리들의 레이스는 시작됐다.



실수의 레퍼토리가 끊이지 않는 나날 속에서 넘겨주는 사람이 되고, 다시 시작의 굴레로 들어와 넘겨받는 사람이 된다. 넘겨주는 과정보다 받는 과정이 먼저인 이유는 언젠가 나 또한 다른 이에게 배턴을 넘겨줄 때가 올 테니까. 온 마음을 쏟아 얻은 후련함을 가지기 위해서다.


무엇이든 하찮게 쓰고 버리는 것만이 가득하다면 이어짐의 순간도 없겠지 싶다. 그러니 소중히 연결해 온 무언가를 애정으로 채워야겠다. 사랑으로 대해야겠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