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가 변함없이 간절했으면 좋겠어. 시간이 지나도 서로를 궁금해했으면 좋겠어."
4년 전, 디디와 처음 만난 지 한 달이 채 안 되었을 때 같다. 뜬금없는 문자를 보낸 지 몇 분이 지났을까, 그에게 왔던 답장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나 뭐 잘못했어?" 였던가.
애정의 가장 큰 척도는 호기심이라고 생각했다. 관심이 있는 대상에게는 더 알고 싶다는 물음표가 떠오르기 마련이니까. 이보다 깊은 간절함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연히 안부가 궁금해지는 대상들이 생겨났다. 사람일 수도 있고, 물건일 수도 있는 이들. 잘 있는지, 별일 없는지- 어쩌다 묘연해진 행방에 내심 아쉬워하거나, 찾게 되는 이들을 여기저기에서 마주쳤다.
정류장에 가면 제멋대로 어질러진 물건들이 눈에 띈다. 신기하게도 주기적으로 새로운 것들이 추가됐다. 하루는 음료수 컵이, 비가 내리는 날은 형편없이 해체된 우산이, 또 어떨 때는 나처럼 무언가를 잘 잃어버리는 사람이 흘리고 간 장갑 한 짝까지 길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사실 이런 것들은 며칠 내에 깔끔하게 사라진다. 그런데도 늘 같은 위치에 묶여있던 자전거는 도통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전거 주차장에 있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겠지만, 이도 저도 아닌 정류장 의자 옆에 놓여 시선을 뺏는다. 나는 몇 년간 빠짐없이 보았던 이 자전거를 은근히 신경 쓰고 있었다.
정말 굴러갈 수 있는 바퀴일까, 온 부분이 녹이 슬어 방치된 게 확실한데 안장만은 비닐봉지로 감싸져 있다. "이래 보여도 아직 내 거야."라고 말하듯, 누군가 낡은 자전거를 완전히 놓지는 못한 흔적 같았다. 내심 '멈춰있던 자전거의 시간이 흐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어느 날, 뜻밖의 신선한 풍경을 맞닥뜨렸다. 버려진 줄만 알았던 자전거의 주인이 나타난 것이다. 단단히 고정돼 있던 고리를 풀어낸 주인은 자전거를 끌고 다시 유유히 걸어갔다. '굴러갈 수는 있었구나.' 흐르는 시간에 맞춰 굳은 몸을 움직이니 자전거가 삐걱삐걱 소리를 냈다. 바라보며 마지막 인사를 건네본다. '잘 지내.'
횡단보도를 건너다 둥둥 떠다니는 홀씨를 발견했다. 혹시라도 도로 위에 안착하거나, 차에 떠밀려가면 어쩌나 했지만,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고 잘 날아올랐다. 도시 속에서 최소한의 비행을 수행한 홀씨는 과연 어떤 땅에 정착했을까. 바람은 작고 연약한 홀씨를 어디로 데려다줬을까.
가치관, 행동, 삶의 패턴에 따라 자기만의 땅을 형성하게 된다. 비슷해 보여도 서로가 개척한 땅의 모양이 다르다. 지반도, 굴곡도 뭐 하나 똑같은 게 없다. 그러다 보니 나와는 다른 땅을 밟게 되었을 때 불편하다고 느껴지는 것도 당연했다. 땅과 땅의 충돌을 감수하고 타협할 수 있을지는 끊임없는 갈등으로 떠올랐다.
나의 땅을 사회에 내놓았던 첫 순간은 깨짐의 연속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비상구는 잠시나마 마음을 꺼내놓을 수 있는 장소가 되어 주었다. 안부를 주고받는 일은 생각보다 큰 영향을 준다. 실수로 얼룩진 하루가 부끄럽더라도, 자존심을 내려놓을 각오를 품게 했다. 무슨 일 있냐는 말은 나름의 다짐기가 되어 질척이던 땅을 단단하게 만들어놨다. 꺼졌다가 켜지기를 반복하는 센서등 아래에서 이렇게 그와의 통화를 쌓아만 갔다.
쌓아가는 것의 연속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땅을 접할수록 내가 있을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애쓰게 된다. 무뎌진 듯하여도 땅을 적시는 눈물이 완전히 멈추는 때는 없다. 그래도 흘러간다. 또 다른 비상구에서 마음을 꺼내놓는다.
안부를 물어주는 이로 하여금 나의 시간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