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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인생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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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규 Oct 13. 2018

산 정상까지 오르지 않아도 좋더라

조용히 산길 걷는 묘미를 알아버렸다.

중년쯤 되면 대부분 등산을 좋아하는 것 같다.

덕분에 직장에서 주말에 강제(?)로 등산을 해야 하는 청춘들은 괴롭겠지만..

카카오톡 프로필 보면 높은 산 정상에 있는 이정표 바위 앞에서 찍은 사진을 종종 본다.

'해발 몇 미터'라고 쓰여 있는 커다란 돌비석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그 사진을 SNS에 게시하는 것이 자연스런 수순인 것 같다.




등산하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걸 당연시 생각하나 보다.

올라가다 마는 건 소풍이지 등산이 아닌 것이다.

힘들게 올라가서 정상에 선 기분을 젊은 시절 지리산 종주로 처음 맛보았다.

머리보다 높이 솟은 무거운 배낭을 지고 꼬박 3박 4일간 지리산 능선을 타고 걸었다.

별빛이 쏟아지는 텐트에서 칠흑 같은 밤을 보내고 노고단을 지나며 내려다본 장대한 풍광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힘들게 정상을 목표로 가는 것보다 낮은 산의 조용한 오솔길을 혼자 산책하는 게 더 좋아졌다.

산으로 향하는 이유가 정상 정복이 아니라 산길 걷는 행복으로 기운 것이다.

천천히 걸으며 햇볕과 바람결을 느끼고 조잘거리는 새소리도 들으며 이름 모를 들꽃도 감상하고 나무 사이로 보이는 코발트빛 하늘을 한동안 바라보기도 한다.

바람소리, 물소리, 낙엽 밟는 소리까지 다 들으 한가롭게 걷다보면 시인이라도 된 것 같은 충만한 기분이 젖어든다.

이것저것 얽혔던 각의 실마리가 잡히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좋은 아이디어가 오르기도 한다.

산의 정기를 받아서인지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 호르몬이라는 세로토닌도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논리적 비약인지 몰라도

산 정상을 목표로 가는 것은 결과에 중점을 둔 인생관이고

중턱일지라도 거기까지 오르는 과정을 즐기는 것은 삶의 과정에 초점을 둔 인생관이 아닐까?

일을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 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꼭 정상까지 올라가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가 저마다 다르듯이 산으로 향하는 목적도 각자 다를 것이다.

정상에 올라 장쾌한 기분을 만끽하려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나처럼 산길을 조용히 걷는 걸 좋아하는 이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니 왜 산에 오르는가를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운동이 목적인지, 힐링이 목적인지, 사람들과의 교류가 목적인지.

운동이 목적이라면 빠른 걸음으로 자신의 체력에 맞는 높이까지만 올라갔다 와도 될 것이다.

힐링이 목적이라면 산을 대하는 마음과 오르는 방식을 달리해야 할 것이고,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교감이 중요하다면 말보다 발이 더 빠른 건 바람직하지 않겠지.


'인생은 미완성'이라는 오래된 노래가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lAAwgEpst0

인생은 미완성 쓰다가 마는 편지, 그래도 우리는 곱게 써가야 해...
인생은 미완성 그리다 마는 그림, 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그려야 해...


요즘 사람들이 들어보면 촌스럽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누구도 인생을 완성하고 떠날 수 없음을 잔잔하게 표현한 노래다.

어차피 미완성인 인생일 수밖에 없으니 등산이든 인생이든 결과보다 과정이 행복한 게 더 중요하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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