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시작하며
어떤 기억은 한 문장으로 시작되기도 한다. 내게 ‘난임’은 이 문장으로 기억된다. 따뜻한 조명의 진료실과는 너무나도 상반되게 의사 선생님은 이 문장을 말하며 순간 엄숙한 표정을 지으셨다.
선생님의 표정이나 진료실 안 공기의 낯섦과는 별개로 나는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이게 뭐 어때서. 난임이 뭐 어때서'
그러나 나는 알게 되었다. 선생님의 가라앉은 목소리, 순간 침울해진 그 공기가 이내 나의 삶 전체를 감싸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나는 한발 내딛게 되었다.
난임의 세계로.
시작되었다.
나에게 닿게 될 한마디 한마디, 난임의 말들이.
나는 ‘아이가 안 생겨도 상관없어- ‘라는 쿨한 새댁은 아니었다. 우왕좌왕하며 일을 배우던 시기라 적당한 시기에 아이가 생겼으면 하고 바라었다. 계획과는 달리 원하던 시기에 임신이 되지 않자 처음엔 그래 뭐 늦게 생길 수도 있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디어나 주변에서 볼 수 있었던 시험관 시술의 당사자가 내가 될 줄은 몰랐던 난임 환자였다. 굳이 환자라는 단어를 붙여야 할까 생각하지만 몸도 마음도 약해졌던 그 시기의 나는 환자가 맞았다.
아이를 기다리고 있지만 쉽게 그 만남의 순간이 허락되지 않은 이에게는 타인의 말은 어떤 의미일까? 난임의 말들은 살면서 듣게 되는 타인의 말 중에서 무엇보다 힘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말들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날카로운 기억으로 남은 상처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지난 시간 나를 힘들게 했던 혹은 나를 다시 일으켜 주었던 그 '난임의 말들'을 기록하기로 하였다.
지금도 어디선가 갑작스레 닥쳐온 자신의 변화 앞에 서럽기도 어안이 벙벙하기도 한 당신을 위해.
모난 말 앞에서 남몰래 눈물을 흘리고 있을 당신을 위해.
나의 글들이 당신에게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군' 조금이라도 위안이 된다면 더없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