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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배 Aug 25. 2022

왜 임신을 하고 싶으세요?

화요일 선생님이 내게 했던 질문

내리 2번 배아 이식을 실패했다. 


첫 실패 때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심 2번째 이식을 할 때는 이제 성공할 확률이 좀 있던데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또다시 실패라는 결과를 받아 들고 내 마음에서 균열이 시작되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출근하고 혼자 남은 집에서 초록 검색창에 '난임 심리상담'을 무작정 검색해보았다. 2017년 당시엔 인구보건협회의 희망 상담실이라는 곳에서 난임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었다. 요일과 시간을 선택하니 금세 심리상담을 예약할 수 있었다.




집에서 상담센터까지는 버스, 지하철, 마을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멀고 먼 여정이었다. 그러나 매일매일이 막연했던 그 당시 나에겐 상담일정이 잡힌 것만으로도 할 일이 생긴 것 같아 삶의 활력소가 생기는 듯했다. 2017년 5월의 어느 화요일 1시 상담센터를 방문했고 나의 '화요일 선생님'을 만났다. 따뜻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나를 반겨주는 선생님. 


"여긴 어떻게 찾아오게 되었나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상태로 난임시술을 받고 싶어서요."

"이렇게 상담센터를 찾아온 걸 보면 이미 건강한 마음을 가진걸요?"


지나고 보니 나는 선생님의 성함조차 물어보지 못했다. 이름을 여쭤볼 만한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던 것 같다. 그냥 마음속으로 화요일 선생님이라 부르고 선생님이 질문하면 답하고 답하다가 울고를 상담시간 내내 반복했다. 그다음 상담 때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나에게 난임 심리상담이 좋았던 이유를 묻는다면, 난 '마음 놓고 울 수 있어서'라고 말하고 싶다. 앞에 있는 사람의 기분이나 표정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눈물 흘릴 수 있다는 것. 난임이 무엇인지 설명할 필요도 없이 나조차도 모르겠는 나의 답답한 마음과 자기 연민을 그냥 그대로 보일 수 있는 그 시간이 마음 한편 숨 쉴 구멍을 내주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물었다.


"왜 임신을 하고 싶으세요? 왜 아이를 낳고 싶으세요?"


@pexels


질문을 받고 한참 동안 답을 하기 위해 생각했다. 왜 나는 임신을 하고 싶은 것일까. 한창 젊음을 누릴 수 있는 시간에  일도 쉬고 삶을 정지시킨 채 나는 왜 임신 성공만을 바라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걸까. 나는 왜 쿨하게 나의 인생만을 살지 못하고 아이를 낳기 위해 이 길을 걷고 있는 걸까. 나는 왜 아이를 원하는 것일까. 아이는 나의 삶에 어떤 의미인가.


그러고 보니 나는 왜 임신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결혼을 했고 나이가 어느 정도 찼고, 이쯤이면 다들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으니 나 역시 그 대열에 끼기 위해, 혹은 내가 끼여있는 이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해, 낙오하지 않기 위해 임신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닐까. 선생님은 다음 상담 때까지 왜 임신을 원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보고 정리 해오라는 숙제를 내주셨다.




그제야 나는 내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리고 답을 찾았다. 


내가 임신하고 싶었던 이유는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서, 다른 이를 기쁘게 하고 싶어서였다'


부모님과 시부모님이 이제 슬슬 아이를 가지면 어떠니 넌지시 물을 때마다, 이제 좋은 소식 없나 주위에서 물을 때마다 사람들의 그 기대와 궁금증에 부응하고 싶었다. 그런데 공부는 열심히, 성실히 하면 어느 정도 그 성취가 나오던데 이 임신이라는 과업은 나의 노력과 간절함과는 별개로 우리가 알 수 없는 신비한 그 무엇이 분명 존재하는 것 같았다. 내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결과, 성취 유무에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것 같아서 괴로웠다.



그렇다. 


내가 난임 기간을 거치며 힘들었던 이유는 당장 남편과 나를 닮은 아이를 만나지 못한다는 애틋한 마음 때문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을 실망시킨다는 생각, 종종 나의 노력으로 누군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우쭐했던 내 관성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점 때문에 나는 나의 난임이 무겁게 느껴졌다. 건강한 마음으로 난임 기간을 보내기 위해선 변해야만 했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선택으로, 나의 의지로, 나의 간절함으로 이 난임 기간을 보내야만 피폐해지지 않고 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실망하거나 말거나 누군가 기대하거나 말거나 그런 것들 때문에 나의 마음이 상할 필요는 없다. 이 난임 기간의 주인은 바로 나 자신이다.


당시 나를 누르던 괴로움과 우울은 내가 난임이라는 사실 이전에, 내 안에 있는 어떤 욕망, 욕구 때문인 것을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내가 가진 욕망이나 욕구를 솔직하게 대면했을 때 해결할 수 있는 것이지 단순히 임신을 하지 못해서 생긴 고통도 아니고 임신을 한다고 해서 나의 어려움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왜 임신을 하고 싶냐는 화요일 선생님의 질문을 통해 나는 조금이나마 내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자유로운 마음으로 난임 기간을 보낼 수 있는지 연습을 시작할 수 있었다.





누군가 난임이라는 키워드로 이 글을 검색해 읽고 있다면 당시의 나처럼 한 번쯤은 스스로에게 질문해보면 좋을 것 같다. 어느 순간 성공과 실패에만 집중되어 있는 시선을 돌려서 왜 아이를 갖기로 결정했는지, 무엇이 지금의 난임 기간을 견디게 만들고 있는지,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개의치 않아도 될 것들이 보일 수도 있고, 고단한 그 시간을 견딜 수 있는 단단한 그 무엇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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