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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배 Nov 04. 2022

마음을 내려놔야지

그놈의 마음 내려놓기!!!!

임신이 잘 되는 방법이 정말 따로 있을까?



인터넷 검색창에 '임신 잘 되는 법', '착상 잘 되는 법', '시험관 성공비법' 등을 검색해보면 무수히 많은 팁들을 확인할 수 있다. 난자가 건강해야 하니 커피를 끊으라던가, 듣도 보도 못한 영양제 추천, 두유를 먹어야 한다던가 걷기 운동으로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등의 조언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임신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듣는 말 중의 하나는 '마음을 내려놓아라'가 아닐까 싶다.


처음엔 느긋하게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나보다 늦게 임신을 준비하던 친구나 동생이 먼저 임테기에서 두줄을 확인했다는 연락을 할 때나 아직 좋은 소식 없니?라고 묻는 어른들의 한마디를 듣다 보면 마감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채 물건을 사러 마트에 들어가는 사람이나 답안지 마킹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 종소리가 울리는 시험시간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고단한 날에 시간은 참으로 느리게 흐른다.


같이 때론 조급한 마음을 나누고 막막한 심정을 토해내던 난임 동기가 기쁜 소식을 알려올 때면 어두웠던 그녀들의 얼굴엔 발그레한 여유가 묻어 나오곤 했다. 그리고 이내 꺼내는 한마디가 그렇게 가슴 시릴 수가 없었다.


"이런 말 하는 것 참 싫었는데 나도 해보니까 그렇더라고. 마음을 내려놔야 하는 것 같아. 마음을 편히 좀 가져봐"


할 수 있다면 나도 마음을 내려놓고 편히 지내다가 반갑게 찾아온 임신소식을 맞이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는 무서웠다. 내가 마음을 내려놓았는데 진짜 나의 소망이 내려놓아질까 봐. 아이가 찾아오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마음을 먹었다가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까 봐.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마음을 좀 내려놓고 편하게 있으라고 할 때마다 더 마음을 꽁꽁 싸매고 손에 꽉 쥔 채 행여 나의 바람이 땅에 떨어지진 않을까 내 손에서 놓쳐버리는 건 아닐까 전전긍긍했다. 기적적으로 아이를 만나게 된 이후 난임 기간을 거쳤던 나를 아는 이들은 어떤 방법이나 비법이 있었는지 묻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런 질문을 하는 당신도 질문을 받은 나도 잘 알고 있다. 우린 누군가의 간절함이 더 깊어 아이를 먼저 만나게 된 것도, 그 간절함이 덜해 아직 아이를 만나지 못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사람의 머리로는 결코 짐작할 수 없는 그 신비한 생명이 찾아오는 일은 내가 무엇을 했다고 해서, 하지 못했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마음을 내려놓았을 때 아이가 생긴다는 법칙이 있다면 누구든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런데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사람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얼마나 수없이 기대하고 실망하고 그럼에도 다시 기대하고를 반복하다가 결국 스르륵 마음의 소원을 내려놓는 그 사람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을까. 


임신이라는 결과를 만났을 때야 지나고 나서 "내가 마음을 내려놓았더니 아이가 생겼어"라고 홀가분하게 말할 수 있을 뿐, 내려놓은 마음에 답하듯 적막한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이에겐 마음을 내려놓고 편하게 있으라는 말은 참으로 잔인한 말일뿐이다.


예전 나의 모습을 보듯 이미 너무 씩씩하게 난임의 길을 걸어가고 있음에도 발을 동동거리며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이들을 볼 때면 조금은 힘을 빼고 여유를 가졌으면 하는 생각을 한 날도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내가 그 길을 지나간 뒤라서 하는 멋모르는 생각이다. 내려놓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꽉 움켜쥘수록 줄어드는 기분이 드는 지금의 당신에겐 그 어떤 말 보다 그저 그 어깨를 한번 꽈악 안아주고 싶다.  


그러니 제발 우리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말 하지도 귀 담아듣지도 말아요.

당신. 

오늘도 너무 잘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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