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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배 Jul 17. 2022

남편의 당숙이 말을 걸어올 때

날카로운 말이 위안이 되었던 묘한 순간


남편의 당숙은 누구인가? 

머릿속에서 가계도를 그려보지만 빨리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인터넷 검색 찬스를 써보는 건 어떨까?


@pexels


인터넷사전에서 검색해보면 남편은 당숙은 '시아버지의 사촌형제'라고 나온다.


나는 남편의 고모도 자주 뵙지 못하는 상황인데, 결혼식 당일을 빼고 남편의 당숙을 만날 일은 거의 0에 수렴한다. 그런데 남이라고 봐도 무방할 이도 난임의 강을 건널 땐 내게 말을 건넨다. 참 이상도 하지.




아이가 쉽게 찾아오지 않아 마음고생하던 시기엔 시가를 내려가는 길이 너무나도 멀게 느껴졌다. 숙제 안 한 아이가 무서운 선생님을 만나는 기분이랄까. 나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편, 양가 부모님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임신이 빨리 되길 원했다. 사람들이 기뻐할 모습을 상상했고 축하받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난임 기간을 보냈다. 번번이 난임시술이 실패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의 표정, 말투, 말에 더 예민해졌고, 임신과 관련된 한마디 한마디가 더 날 서게 느껴지곤 했다.


 명절을 맞아서 내려간 시가에서 남편은 시아버지와 함께 근처 친척집을 방문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현관으로 들어오는 두 사람은 말이 없다. 이내 시아버지가 시어머니께 말을 건넨다.


"아니 납골당 위치가 잘못돼서 그런 거라나 뭐라나"


쿵.

마음이 내려앉는다. 저건 분명 내 이야기구나.

거실과 주방은 너무 가깝고 내 눈치는 더 빨라지는 순간이다. 나는 시부모님의 옆에 있지만 못 들은 척, 안 들리는 척 귀만 열고 숨죽이고 있는다.

 

남편의 당숙은 시아버지와 명절 인사를 나누다가 불쑥 우리에게 아이가 생기지 않는 이유가 납골당의 위치 때문 일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와... 이 신박한 분석은 또 무엇인가.


내 몸이 약해서도 아니고, 전자파를 많이 쐬는 근무환경 때문도 아니고, 난임 병원 의사의 실력이 좋지 않아서도 아니다.


그렇다! 난임의 원인은 풍수지리, 배산임수의 문제였던 것이다.


시부모님들은 그게 말이 되냐고 서로 말을 주고받고 이내 내 앞에서 입을 닫으신다. 하지만 난 너무 선명히 들었는걸. 나는 이럴 땐 기분 그대로 굳은 얼굴을 보이고 싶지만 또 바보처럼 으흐흐 억지웃음을 지어본다.


"너무 신경 쓰지 마..."

남편은 내 어깨를 토닥이며 내 눈치를 본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 당숙의 말이 너무나 위로가 되었다. ‘아니 자기가 뭔데 이러쿵저러쿵 말해?’라고 해야 하는 순간이지만 오히려 난 그 말이 위로가 되었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


지금 아이를 만나지 못한 것. 나의 잘못이 아니다. 이건 모두 납골당 위치 때문이다. 그러게 시가 사람들은 좀 좋은 자리로 납골당을 잡을 것이지. 왜 안 좋은 곳을 정해서 우리에게 아이가 생기지 않느냐 말이다. 이건 다 납골당 때문이다. 내 잘못이 아니다. 내 잘못이 아니야.


난임을 겪으며 나는 이 상황이 나 때문에 벌어졌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괴로웠다. 순간순간 나쁜 생각이 몰려올 때마다 나의 마음은 움츠려 들고 내 표정은 서늘해지곤 했다. 그날 들었던 말은 당연히 너무나 미신적이고 비과학적인 매너 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한편으론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상황이 이 시련에 나의 책임은 하나도 없음을 편들어주는 말이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이 상황에 대해서 남보다 더 남 같은 당숙님이 내게 멋진 위로를 해주었다.



난임의 말.

때론 그 무엇보다 황당한 말이 묘한 위로가 되어준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

너의 잘못이 아니야.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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