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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어시인 Nov 21. 2021

너 수화할 줄 알아?

'수화'라는 단어와의 첫 만남

중학교 1학년 때, 한 달에 한번 짝꿍을 돌아가면서 앉는 시스템이 있었는데 평소 친분이 없는 낯선 짝꿍을 맞이했다. 그 친구랑은 대화도 없었고 쉬는 시간에도 각자 친한 친구들끼리 놀기 바빴기에 자리만 옆에 앉는 짝꿍이었다.      


어느 날 수학 시간이었는데, 짝꿍이 짧은 문구가 적힌 교과서를 내게 넘겨주었다.     


‘너 수학할 줄 알아?’     


갑자기 생뚱맞은 질문이었지만, 난 비교적 수학을 잘하는 편에 속했고 짝꿍은 공부에 흥미가 없어 보여서 아마 내게 도움을 청하는 줄 알았다.


‘응!’     


난 자신감 넘치게 당연히 수학은 할 줄 안다며 답변을 적어주었다.     

 

‘그럼 해봐’     


응? 갑자기 이게 무슨 상황이지? 수학 문제도 없이 갑자기 수학을 해보라니? 당황스럽고 황당해서 ‘뭘?’ 하고 써보였다.     


‘너 수화할 줄 안다며?’    

 

아,,, 그 글씨는 수학이 아닌 수화였던 것이었다.   

   

‘아니, 수화 몰라’  

   

‘왜??’     


왜??? 왜라니? 글쎄. 내가 왜 그걸 알아야 하고, 나는 왜 그걸 모르는 거지? 수화를 왜 모르는지 그 이유는 나도 몰랐다. 내가 왜 수화를 알아야 하는지 한 번도 생각한 적 없었다. 그런 단어조차도 생소하게 느껴졌는데 나보고 왜 그걸 모르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날 빤히 쳐다보았다.    


 

그것이 내가 처음으로 ‘수화’라는 알게 된 첫 기억이다. 아마 그 친구는 내가 보청기를 착용한 것을 보고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화를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나처럼 청각장애인이어도 수어를 모르는 사람이 많이 있다. 부모님께서 아이를 키울 때 일부러 수어를 못 쓰게 하는 경우도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수어를 배우면 말을 하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무조건 듣고 말하는 것에만 집중하도록 양육하기 때문이다.(이것은 명백한 오류에서 착안된 잘못된 판단이었음을 언어학 관련 논문 내용을 읽고 나서 알 수 있었다. 오히려 수어를 배우면, 언어 발달에 더 도움이 된다.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켜 언어의 개념 이해 및 습득 속도가 빨라진다고 밝혀졌다.) 


     

나는 100% 다 들리는 편이 아니기에 말을 제대로 알아듣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었고 그것은 나의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음을 얼마 전에야 깨달았다. 그런 사실도 모르고 내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더 열심히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실천해왔었다. 남들이 겪지 않아도 되는 불편과 고통에 대해 공감도 위로받지 못한 채 속으로 혼자 삭히는 나날이 늘어만 갔다.     



이제는 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환경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과감히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내가 들을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너무 애쓰지 말고 내려놓아야 함을. 그리고 내가 가진 강점을 더 발휘할 수 있는 방법과 기술을 터득하여 나다운 삶을 사는 것이 진짜 내 인생을 살아가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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