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건네지 못하고 삽니다
최근에 증보판이 나온 유시민 작가의 『청춘의 독서』 처럼, 나도 20대 초반에 읽었던 책이나 시를 지금 다시 펼치면, 새롭게 다가온다. 그 때는 나름 읽었다고 믿었을텐데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읽으니 전혀 다른 의미로 마음에 들어온다. 책과 시는 그대로인데, 읽는 나는 분명 달라져 있다.
나태주 시인의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처럼,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이해되는 시가 또 있을까 싶다. 시가 변한 것이 아니라, 그 시를 읽는 내가 변했을 뿐인데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어쩌면 어떤 시들은 읽히는 나이가 따로 정해져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늦게 도착해야만, 제대로 마음에 들어오는 말들이 있다.
20대의 나는 ‘사랑한다’는 말도 많이 했고, ‘미워한다’는 말도 거리낌 없이 했다. 감정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이 솔직함이라고 믿었다. 마음이 닿으면 바로 말하는 게 정직한 태도 아니냐고, 스스로에게 반문하던 시절이었다. 말하지 않으면 오히려 진심을 숨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말로 다 하지 않고 뒤켠에 담아놓은 마음이 더 크게 다가온다. 사랑은 그 뒤에 있는 그림자까지 사랑할 준비와 책임이 있을때 말할 수 있는 단어가 됐다. 이 사랑은 비단 사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도 것도 달라진 생각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생각도 그렇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사회를 바라볼때도 그렇다.
요즘의 나는 문자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다. “잘 지내?”라는 짧은 안부조차 쉽게 보내지지 않는다. 잘 있겠지, 그렇게 혼잣말로 대신하며 화면을 덮는다. 혹시 묻는 일이 괜한 실례가 되지는 않을지, 마음이 닿아도 한 번 더 멈추게 된다. 예전보다 조심스러움이 훨씬 많아졌다.
그때의 나는 솔직했을지 모르지만, 충분히 성찰적이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사랑하고 여전히 흔들리지만, 말하기 전에 머무는 시간을 갖는다. 표현이 줄어든 대신, 마음은 더 깊어졌다고 믿고 싶다.
오늘 이 시가 내 주변을 계속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