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TV에서 낯선 사람과 마주 보았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 거리가 얼마만큼인지 실험하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1미터에서 2미터 사이였던 것 같다. 낯선 사람과는 그 정도의 거리를 두어야지만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다.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의 경우 그보다 더 가까워도 문제 되지 않는다. 연인 사이를 그 예로 볼 수 있다.
문득 우리 가족 간의 거리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일단 공간적 측면으로 보면 아버지는 주로 거실에서, 나는 방에서, 어머니는 부엌의 식탁에서 서로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겹치는 공간은 부엌과 화장실뿐. 이마저도 서로 겹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배려하며 지내고 있다. 이렇게 우리 가족은 서로의 공간에서 각자의 할 일을 하며 생활한다.
서로 겹치는 공간에 대해선 주로 아버지의 룰을 따르는 편이며 (위에 언급한 부엌과 화장실이 이에 해당한다.) 이는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강조하셨던 '배려'를 근간으로 한다. 다음 사람이 사용할 것을 염두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샤워 후 화장실을 나오기 전에는 바닥의 물기를 최대한 제거하고 환풍기를 켠 상태로 문은 열어둔다.'같은 것이다.
편안함을 느끼는 각자 공간에서의 생활과 겹쳐지는 공간에서의 배려. 남들이 보았을 땐 가족 간에 어울림과 대화가 부족해 보여 정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우리는 함께 합의한 적 없지만 비교적 잘 지켜지는 가사 분담(아버지는 빨래와 분리수거를, 나는 설거지를, 어머니는 음식 및 청소를)과 나름의 소통으로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다. 빈번한 대화는 없지만 조용한 왕래와 무언의 배려가 있는. 서로의 공간에서 각자의 일을 하며 적당한 거리감이 있는 우리 집은 조용한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