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남편보다 옆집 아저씨가 낫다.
한부모가정의 첫 이사
남편은 안방으로 여러 차례 여자를 초대했고 그 사실을 안 다음날 남편을 내보냈다. 남편은 나간 후에도 다시 집으로 들어오려는 시도를 여러 번 했다. 남편은 잘못을 빌다가도 화를 내서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불안했다. 마지막까지도 아이들을 위한 배려가 없는 남편이라서 차라리 다행이었다. 내가 한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는 괜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서둘러 집을 부동산에 내놓고 전세든 매매든 빨리 되어서 어서 그 집을 떠나고 싶었다. 코로나가 한참 확산되고 있어서 사회적으로 모든 것이 활발하지 못한 시점이었다. 아이들이 개학하기 전 이사를 하고 싶었다. 다행히도 개학은 계속 연기가 되고 우리가 살던 집은 전세로 계약이 되었다.
한부모 가정으로 첫 이사를 앞두고 걱정과 설렘이 교차했다.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어서 개학을 해도 학교를 갈 수 없게 되었다. 이혼소송이 진행되어 서울과 멀리 갈 수도 없었고 당장 집을 옮기려니 어디에 터를 잡아야 할지 고민이었다. 서울과 아파트가 아닌 서울과 멀지 않은 곳을 찾다가 양평지역으로 좁혀졌다. 집이 나올 때마다 부지런히 보러 다녔지만 마을 안에 있는 학교가 가깝고 예산에 맞는 전셋집은 없었다. 모든 조건을 만족할 수는 없는 일이라 집이 마음에 들면 뭔가 하나는 포기하자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한 집만 더 보고 계약을 결정하기로 했다. 예산보다 비싸서 빼두었던 집인데 왠지 그 집을 보고 결정해야 아쉬움이 남지 않을 것 같았다.
마지막 집을 보러 갔다. 주인 가족이 바로 옆에 신축을 해서 이사를 가고 5년을 넘게 아이들을 키우며 살던 집을 임대하는 것이었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아이들 책과 물건들이 남아 있었다. 우리와 같은 남매였는데 12살, 14살이었고 우리 아이들은 6살, 9살이었다. 형, 누나가 옆집에 살고 마당에는 레트리버와 웰시코기 개 두 마리가 살고 있었다. 평일 낮인데도 아저씨가 마당에서 일을 하고 계셨는데 직업이 형사라고 했다. 집 소개를 해주는 안주인은 웃는 인상에 목소리도 호탕했다. 마침 코로나로 학교를 가지 않은 아이들이 마당에 나와서 인사를 했다. 아이들이 엄마와 똑 닮아 있었다. 이층 집이었는데 내가 보러 간 오전 10시에 훈훈한 기운이 감도는 집안의 공기가 포근했다. 편안한 의자에 앉아 앞산을 바라보면 온갖 걱정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안주인과 관심사도 비슷하고 이야기가 잘 통해서 10분쯤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우리가 찾던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 덕에 경찰이 세 차례나 출동했고 캡스까지 설치하면서 편치 않았던 집을 떠나 새집을 구할 때 좋은 이웃이라도 만났으면 하는 바람으로 집을 보러 갔다. 욕심 같았던 바람이 이루어졌다.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로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좋은 친구가 되었다. 이웃집 부부는 어린 딸과 항상 이야기를 나누어 주었고 아이들이 읽던 책이나 용품들을 선물로 주었다. 아이들도 서로 오가며 서로에게 생긴 동생과 언니, 오빠와 곧 친해졌다. 집에 성인 남자가 없어도 옆집 아저씨가 형사인 점이 무척 든든했다. 낮에 집에 계실 때는 마당에서 집 꾸미는 작업을 하셨다. 딸이 옆집 개와 놀고 싶어 하면 옆집으로 자주 놀러 갔는데 여섯 살 아이가 밀고 들어올 수 있게 울타리 잠금장치를 바꿔주셨다. 놀러 간 딸이 쉬지 않고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셨다. 일부러 마트 갈 때 딸에게 줄 간식을 사 왔다가 놀러 온 아이에게 선물해 주셨다. 옆집 엄마도 아이들을 볼 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는 고마운 말들을 해주었다.
아빠가 아이들에게 해준 적 없는 것들을 이웃 어른이 해주고 있었다. 아이가 옆집 마당에서 놀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아이에게 좋은 어른이 생긴 것을 감사했다. 부모가 좋은 모습을 보여야 아이들이 잘 큰다고 이야기하는데 좋은 부모도 좋은 어른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을 혼자 키우게 되었어도 내가 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욕심과 불안은 아이들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특별하게 해 줄 것도 없었다. 그저 한부모가 되면서 건강한 엄마만 되자 라고 생각했다. 이웃집 부부처럼 좋은 어른이 되는 것 말이다. 이제는 추억이 된 양평의 이웃집 부부는 계란을 잘 먹던 우리 딸이 생각난다며 문자와 계란 대신 치킨 쿠폰을 보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