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닮은 사람
아이야.
햇살 좋은 날씨가 참 좋다. 이른 오전이라 바람이 조금 차갑지만 3월 중순의 청명한 날씨가 마음까지 깨끗하게 해 주는구나. 정말 오랜만의 산행이다. 집 주변 산책이야 가끔 나가지만 이처럼 산에 오르기는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발길에 닿는 나뭇잎과 돌멩이들의 감촉도 좋고, 잣나무 숲을 지날 땐 맑은 공기가 폐 속 깊이까지 씻어주어 몸과 마음이 더욱 맑아지는구나.
가지마다 물오른 새싹을 품고 첫 봄을 기다리는 초목들의 나지막한 속삭임, 기묘한 형태의 바위들, 바위 옆 아슬아슬한 곳에 자랐으나 정성 들여 가꾼 분재처럼 멋진 모습을 뽐내는 단아한 소나무 한 그루, 그 위에 내려앉은 햇살, 향기로운 바람, 나무, 나무들. 봄을 기다리는 자연의 설렘이 가슴으로 전해오는 듯하구나. 이처럼 정겨운 자연은 찾아오는 모든 이에게 열려있단다. 잘생긴 사람, 덜 잘생긴 사람, 돈 많은 사람, 돈 없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자연은 모든 이에게 평등하지. 또한 자신은 존재 그대로를 드러낼 뿐이란다. 혼자서 돋보이려는 자만심은 없어. 키 작은 나무가 키 큰 나무를 부러워하지 않듯이 키 큰 나무가 키 작은 나무를 업신여기는 일은 없단다. 제각각 지니고 있는 존재 자체가 귀함이라는 것을 자연은 알거든. 햇살이 먼저 닿는 곳에 꽃이 앞서 피더라도 뒤늦은 꽃들은 조급증을 내지 않아. 때가 되면 잎과 꽃들은 알맞게 피우기 마련이니까. 진달래와 개나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만개하며 서로에게 환호한단다. 자연은 시샘이란 단어를 알지 못하지. 각자 본연에 충실하면 아름다움은 저절로 발현되거든.
순수하고 너그러워 모든 것을 품어주는 자연은 또한 자유롭단다. 무거움이 없기 때문이야. 그렇다면 사람들의 무거움이란 무엇일까? 보통은 부정적인 감정들이지. 불만, 비난, 화, 미움, 짜증, 욕심, 시샘 그리고 지나친 욕망 등등. 이런 것들은 자신을 불행으로 이끄는 대표적 감정들이야. 불편하기만 한 이런 정서들이 생기는 이유는 뭘까? 너희들 마음을 1분 동안만 가만히 들여다보겠니? 한 번 들여다봐서 모르겠으면 두 번, 세 번 들여다보렴. 그리고 들여다보는 것이 익숙해진다면 2분, 3분, 5분 정도만 너희들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런 시간을 많이 갖는다면 너희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사라짐을 알게 될 거야. 너희를 파멸시킬 듯 폭풍 같던 생각이나 감정, 기쁨까지도 사실은 실체가 없음을 깨닫게 될 테지. 그러면서 너 자신을 좀 더 이해하고 알게 될 거야.
무거움이 비워지면 가벼움만 남겠지? 편안함, 즐거움, 감사, 여유 같은 긍정 정서들이야. 불행히도 어른들은 마음이 무거운 사람들이 많아. 아, 너희들도 마음이 무겁다고? 그럼 그럼, 이해하지. 그 점이 안타깝단다. 즐겁지 않은 아이들이 많다는 걸 아니까. 그렇다고 부정적 감정들을 무조건 나쁘다고 하는 것은 아니야. 환경과 상황에 따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자연스러운 정서니까. 하지만 너희들이 긍정 정서를 키우고 가벼운 마음을 지녔으면 좋겠어. 긍정적인 사람들은 진실성, 지혜, 겸손, 열정, 용기, 창의성, 낙관성 등등의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단다.
무거운 감정들이 지속되면 행복을 갉아먹게 되지. 너희도 경험이 있을 테지? 엄마나 아빠, 혹은 언니, 누나, 형, 동생에게 뭔가 불만이 있어서 화가 났을 때 말이야. 그때를 생각해봐. 불행하고 괴로웠을 거야. 화는 났지만 괴로웠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그래 모를 수 있지. 사실 어른들도 그렇단다. 타인에 대한 원망과 분노와 경쟁의식으로 가득 찬 까닭에 괴롭고 불행함에도 불구하고, 불행에 너무 깊게 빠진 나머지 불행에 둔감해진 채 사는 경우도 있거든.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하는 반 체념상태로 말이지. 자신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왜 사는지, 진실과 허상의 어느지점에 위치해 있는지를 자각하지 못한 채 너무 무겁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야. 슬픈 일이지.
내 말이 어렵니? 자연의 ‘자연스러움’을 얘기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구나. 아, 이 정도쯤이야 뭐가 어렵겠냐고? 좋아, 그럼 조금만 덧붙이겠다. 자연은 비가 내리면 그 순간 젖고, 바람 불면 방향 따라 흔들릴 뿐 기후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유연한 적응력을 터득했단 뜻이야. 찬바람이 부는 계절이면 눈보라를 맞으며 강인함을 기르기도 한단다. 단단한 힘으로 자신을 지키고 책임지지. 자기 밖의 무엇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원망하지 않아. 그렇기에 자연을 접하는 사람들은 저절로 편안함과 위로를 느끼는 것 같아. 물론 사람이 자연을 닮기란 사실 쉽지는 않단다.
너희들이 자연과 만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가졌으면 한단다. 꽃잎이 열리는 모습, 바람에 흩날리는 순간, 나무들의 웅성거림, 펼쳐진 햇살의 정겨움, 별들의 이야기, 또는 광활한 우주의 비밀 등등. 수많은 자연의 경이로운 모습과 만나고 하나 되는 경험을 더 많이 한다면, 너희는 분명 네 안의 지혜를 발견하게 되고, 자연을 닮은 풍요와 넓고 깊고 사랑 가득한 귀한 사람이 되리라는 것을 나는 믿는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어. 난 무조건 괴롭다고!’ 라며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이 있겠지. 짐짓 뭉크의 그림 ‘절규’ 같은 표정을 하고서 말이야. 그런 그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괜찮아, 조금만 힘 내. 곧 새벽이 올 거야. 당신을 사랑해.
이제 산행을 마칠 때가 되었구나. 행복한 하루였다.
사랑하는 아이야.
식사하고 물 마시고, 공부하고 일하고 잠자고, 꿈을 꾸고 성취하고, 사랑하고 절망하고, 가끔은 혼자의 시간이 아쉽고, 때로는 누군가 그립기도 할 너의 인생에 고요한 평화와 따사로운 햇살이 언제나 깃들기를 염원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