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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빼먹는 날

(연작소설) 영이의 일기 4

by 민들레

걸을 때마다 삐그덕 소리를 내는 영숙 이모 방까지 연결된 판자 마루에 빨래며 신문지가 어질러져 있다. 영숙 이모네 방 앞에는 영숙 이모가 짜그락 소리를 내며 끌고 다니는 슬리퍼, 준호 아저씨의 운동화 등이 흐트러진 채 놓여있다. 언제나 반짝반짝 윤이 나는 준호 아저씨의 검은색 구두가 오늘은 안 보인다. 아저씨는 집에 없는 듯하고 영숙 이모는 아직 자고 있는 모양이다.


영숙 이모는 한 달 전까지 일을 나갔다. 저녁에 나가면 아침에 들어왔기 때문에 낮에는 거의 잠만 잤다. 지금은 일을 쉬고 있는데도 늦게까지 자기는 마찬가지다. 어쩌다가 일찍 일어나는 날도 있지만 대게는 점심때가 지나서였고 어느 날은 오후 늦게까지 자기도 했다. 엄마가 핀잔을 주었다.

-원, 잠 뿌리가 뽑힐 때도 되얐고만, 징그랍게 잠도 자쌌네잉. 뭔 잠을 그리 해가 뜨는지 지는지를 모리고 잔다여? 삼신할미가 잠충이었능개벼.

그러면 이모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잠이나 자지 뭘 해요. 살맛도 안 나는 세상 정신 멀쩡하게 있어봐야 머리밖에 더 아프겠어요.


올해 서른네 살인 영숙 이모는 우리 엄마처럼 가끔 말을 험하게 하는 게 흠이지만, 웃는 모습이 참 예쁘다.

처음에 내가 영숙 이모에게 아줌마라고 부르자 기겁을 했다.

- 징그럽게 아줌마가 뭐니, 이모라고 불러라.

그래서 나는 느닷없이 팔자에 없는 이모가 하나 생긴 셈이었다.


할머니는 내가 방에서 가져다 덮어준 이불을 덮고 누워 옅은 잠이 든 것 같다. 숨소리가 조금 전보다는 나아졌으나 여전히 가쁜 듯하다.

나는 할머니 곁에 무료하게 앉아 마당을 바라본다. 할머니가 아무것도 없는 빈 마당을 매일 쓸기 때문에 마당은 흙이 닳다 못해 자갈들이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다. 마당 수돗가 대야에 가득 담긴 물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그 옆 길쭉하게 박힌 수도 파이프에는 겨우내 얼지 말라고 칭칭 감아놓은 헝겊 뭉치를 아직도 풀지 않아 답답해 보인다. 수돗가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화장실 나무 문짝이 삐뚜름하게 떨어져, 큰 고양이 한 마리가 들락거릴 정도의 공간이 나 있다.


사실 나는 지금 학원에 가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그럴 마음이 없다. 학원 선생님도 내게 별 관심 없으니 다행이다. 공부 잘하는 혜림이가 하루라도 학원을 빼먹으면 선생님은 부랴부랴 그 애 집에 전화를 할 테지만, 나는 그런 걱정을 할 일이 없다. 우리 집엔 전화를 하지도 않을 테고 전화를 하더라도 받아줄 사람도 없다. 아니 우리 집엔 전화기가 아예 없다.

나는 학교 공부도 재미가 없어 숙제를 빼먹는 날도 많다. 시골에 살 때는 공부를 아주 못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서울로 전학 온 다음부터 공부가 재미 없어졌다. 촌스러운 내가 학교 선생님의 눈에 들 리도 없었다. 나를 공부 못하는 애로 내놓았는지 동그라미보다 작대기가 많은 내 공책에 또 빨간 작대기를 죽죽 그으면서도 선생님은 무심한 표정이다. 다행히 오빠는 이상한 애들과 가끔 어울리는 것 같지만 공부는 잘하는 편이었다.


할머니가 눈을 뜬다.

“ 할머니, 다 잤어요? ”

“ 잠은 무신, 잠이 오나. ”

할머니가 일어나려고 몸을 꼼지락거리는데, 간당간당 매달려 있는 쪽대문을 텅 밀치고서 엄마가 툴툴툴 발소리를 내며 들어온다. 아직 붕어빵을 다 팔려면 멀었을 텐데.

“썩을 인간덜. 넘 벌어먹고 사는 게 그릏게 눈꼴 시롸? 내가 거그서 빵장시 조까 어믄, 즈그덜 밥을 못 묵게를 혀, 돈을 못 벌게를 혀? 내 몸댕이 가지고 내가 벌어먹겠다는데 멋땀시 감 놔라 배 놔라 허냔 말여. ”

엄마가 발에 밟히는 내 신발을 신경질적으로 차 내면서 마루에 털썩 주저앉는다. 마루가 삐그덕 소리를 낸다. 그 바람에 영숙 이모가 잠을 깬 모양이다. 방문을 열고 부스스한 얼굴을 내민다.

“마루짝 무너지겄네잉. 거 백 근은 족히 나갈 궁뎅이 좀 살살 내려 노씨요.”

엄마 말투를 흉내 내며 영숙 이모가 밖으로 나온다. 할머니가 이불을 한쪽으로 밀치며 엄마를 향해 개미 소리만 한 목소리로 말한다.

“와 그라노?”

엄마는 씩씩거리느라고 할머니 소리를 듣지 못한 것 같다. 영숙 이모가 나선다.

“ 왜 그래 아줌마? 아하, 또 구청에서 단속하러 나왔구나.”

나는 엄마가 들어올 때부터 눈치챘다.


며칠 전 학교 끝나고서 엄마가 장사하는 곳에 갔었다. 그곳은 5층짜리 낡은 아파트 주변이었다. 더 멀리 떨어진 곳에는 새로 지은 고층 아파트가 떡 버티고 있었다. 낡은 아파트 주변에는 엄마 외에도 과일이며 야채 등속을 파는 노점상이 여럿이었다. 그날 내가 근처에 미처 다가가기 전에 엄마 목소리가 튕겨져 왔다.

-끄집어 가던지 때려 뿟던지 맘대로 혀! 그러면 누가 겁낼 중 알고? 이게 우리 식구 밥줄이여. 우리 식구 밥줄 끊어지믄 책임 질것여? 파출소 안방이라도 내주고 먹여 살릴 것이냐고!

그러고 보니 주위가 어수선했다. 비닐로 얼기설기 처 놓은 엄마의 붕어빵 ‘가게’가 뜯겨 있었고, 그 옆 노점상들도 비슷한 처지였다.

-이 아주머니가 정말, 이렇게 억지를 쓰면 공무 방해죄로 잡아가요.

-아 잡어 가아! 누가 못 잡어 가게 혀? 잡아가려면 우리 식구 몽땅 잡어가. 잡아가서 어디 멕여 살려 보드라고!

엄마가 오히려 단속반 아저씨를 단속하러 나온 것처럼 기고만장해서 큰 소리를 치자 그 아저씨가 어이없어하며 헛 참, 을 연발하더니 말했다.

-똥 싼 주제에 매화타령이라더니 원 참, 뻗대는 실력이 금메달 감이로 구만,

엄마의 암상스러운 억지에 심란하게 서있던 다른 가게 아줌마 아저씨들과 지나다가 구경거리 만났다고 쳐다보던 사람들이 실실 웃었다. 속은 부글부글 끓겠지만 대놓고 구시렁거리지도 못하고, 단속반 아저씨 눈치만 보던 상인들은 엄마의 옹골찬 대거리에 속이 후련하다는 표정이었다.

우리 엄마를 이길 사람은 없다. 엄마는 일단 몸집부터 유리했다. 엄마가 한 손으로 밀면 뒤로 꽈당 넘어질 것처럼 빼빼한 그 아저씨는 엄마를 더 화나게 하면 오히려 귀찮아진다는 걸 벌써 파악하고 있었다. 엄마를 잡아넣었다간 파출소 건물이 들썩들썩 시끄러울 게 뻔했으므로, 봐주는 척 목소리를 내렸다.

-누군 이러고 싶어서 이러겠어요. 우리도 다 봉급 받고 하는 일이라 어쩔 수 없으니까 그렇지. 하여간 이곳에서 장사하면 안 돼요.

하면서 슬그머니 꽁무니를 뺐다.


“지깐놈덜이 우리를 잡어 가둔다 해도 소용 읎어. 우리 같은 사람덜이 기술이 있어 돈이 있어, 뭣이 있어. 있는 것은 몸댕이 뿐인디, 몸댕이 가지고도 맘대로 못 벌어먹게 허믄 어띃게 살란 말여. 목구녕 때쪄서 죽으란 말이 아니고 멋이냥께!”

엄마는 단속반 아저씨가 옆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또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그 자식들, 왜 또 지랄이래요?”

영숙 이모가 나뭇잎이 그려진 녹색 남방셔츠의 앞 단추를 여미면서 따라서 열을 올린다.

“환경정화를 헌다등가 환장을 헌다등가, 이달 들어서 볼쌔 시 번째여. 구먹을 봐 감서 말뚝도 깎으라고 했다고, 멋을 봐 감서 단속을 허던지 지랄을 허던지 해얄 것 아닌개벼. 우리 같은 사람 밥줄 끊어놓고 무조건 환경정화만 허믄 장땡이간디.”

“미친 자식들. 할 일 없으면 집구석에서 제 마누라 엉덩이나 두들겨 주든지, 세금 거저 받아 처먹는 게 미안하면 휴지 하나라도 줍든지 할 일이지... 그나저나 아줌마가 이렇게 쫓겨 온 걸 보면 그쪽도 성질께나 드런 놈들이 나온 모양이죠?”

“이참에는 아조 작정을 허고 나왔능개벼. 다짜고짜 와서는 천막이고 능금 박스고 막 때래뿟고 난리를 치드랑께. 내 옆으서 멜치 파는 할메 있제? 그 할메는 그놈덜이 패대기 치는 멜치 박스 붙들다가 넘어져서 허리까지 다친 거 같어서 걱정이구만 .”

“나쁜 자식들.”

영숙 이모가 입에 뭐가 들어갔는지 땅바닥에 침을 퉤 뱉는다. 단속반 아저씨가 앞에 있다면 그 얼굴에다가 침을 뱉고 말 것 같다.

“백날 단속해 봤자 단속할 때뿐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 왜 그 짓거리를 되풀이하는지, 뭐 속셈이야 뻔하지만.”


영숙 이모가 헝클어진 머리를 훑어 핀으로 고정시키며 말한다. 엄마는 그제야 종이인형처럼 앉아서 된 숨을 내쉬고 있는 할머니를 보며 눈이 둥그레진다.

“어디 아프요? ”

“아프기는 노상 그렇제...... ”

할머니가 다시 한번 숨을 몰아쉬며 대답한다.

“그란디 심알이가 왜 하나도 없다요, 검부락(검불) 맹키로? 옴매, 금방 꺼지게 생깄네잉. ”

“에유, 마당에 모래가... 하도 더러 봐서, 그거로 쪼매 씰었등만... 에유.”

할머니는 자드러지는 소리로 아까와 똑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할머니의 몸처럼 목소리도 삭아 내리는 것만 같다.

“그러게 노인네가 힘도 없으면서 뭐 하러 마당은 맨날 쓸고 그래요? 마당 못 쓸어서 죽은 귀신이라도 있어요? 마당에 구멍 나겠어 정말. ”

영숙 이모는 할머니가 못마땅한지 맨날 툭툭 쏘아댄다. 그렇지만 할머니가 아프기라도 하면 약을 사다 주고 음식을 챙겨주는 사람은 바쁜 엄마보다 영숙 이모다.

방금도 자기 방으로 들어가 비닐봉지 하나를 들고 나왔다.

“어젯밤에 준호 씨가 들어오면서 사온 건데 아직도 말랑말랑하네. 할머니 잡수세요 인절미예요. 영이 너도 먹어라.”

말하고는 비닐봉지를 벌리고 인절미를 한 개 집어 할머니에게 준다. 할머니는 아직도 숨을 식-쉭- 하고 내쉬지만 아까보다는 편안해졌다.

“그렇게 기운이 없으면 영양주사라도 한 대 맞으세요. 돈은 있죠?”

할머니는 인절미를 손으로 쭉 뜯어서 입으로 가져갈 뿐 말이 없다. 할머니는 단단한 것만 아니면 뭐든 잘 먹는 편이다. 맛이 있고 없고는 별로 가리지 않는다. 할머니는 음식을 너무 오래 두어서 맛이 변해도 버리지 않았다. 언젠가 할머니가 고깃국 끓인 거라며 주기에 먹었더니 맛이 이상했다. 알고 봤더니 보라 아빠가 할머니 먹으라고 사온 쇠고기를 너무 오래 아껴두어서 변질된 것이었다. 영숙 이모가 그냥 지나갈 리 없었다.

-하여튼 할머닌 알아줘야 한다니까. 누굴 주려고 그렇게 아끼는지. 이걸 어떻게 먹어요? 제때에 해 먹고 변한 음식은 버려야죠.

그렇지만 할머니는 이상하긴 뭐가 이상하냐며 맛만 괜찮은데 괜히 그런다고 되려 우리를 나무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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