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소설) 영이의 일기 2
다락 안은 묽은 먹물을 채워놓은 듯 어두컴컴하다. 밖이 아무리 햇살이 화창해도 이곳은 항상 이만큼 어둡다. 사방이 꽉 막혀 어둠이 빠져나갈 구멍을 못 찾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인 오빠는 주말이면 날이 밝아도 한밤중인 줄 알고 언제나 늦잠을 잔다. 특히 비 오는 날, 이곳에서 낮잠을 자기엔 아주 제격이다. 잠결에 낮은 지붕 위로 투두둑 툭툭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고 눈을 떠보면 아직 어둡고 또 떠보면 또 어둡고, 저녁 시간인가 잠깐 착각을 하다가 저녁이 아닌 한낮에 이렇게 푸근한 잠을 잘 수 있다는 데 만족해서, 안심하고 다시 편안한 잠에 빠져들었다. 오빠에게 구박당하며 이곳에서 잠을 자 본 경험이다.
벽 모서리에 붙어있는 전등 스위치를 올린다. 오래된 백열등이 ‘지지직’ 소리를 내더니 곧 불이 들어오면서 다락 안이 큰 짐승의 뱃속처럼 몽땅 드러난다. 처음 깔아놓은 후 한 번도 개키지 않은 이불과 이불 맡에 널려진 만화책과 공책 몇 권, 그리고 오락 게임기가 있고, 벗어놓은 건지 새로 빨아놓은 건지 분간이 안 가는 오빠의 옷가지 몇 개가 이불 위에 널브러져 있다. 뭔지 모를 잡동사니를 싸서 구석에 밖아 놓은 짐보따리는 마치 밤 도망이라도 가려고 급히 꾸려놓은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정신 사납게 어질러진 것이 금방이라도 다락 바닥이 무너지려고 우지끈 툭툭 야단이어서 사람이 부리나케 뛰어나간 것 같기도 하다.
천장이 너무 낮아서 키가 작은 나도 쭈그려 앉아야 할 정도다. 오빠는 뒤통수가 천장에 닿아 고개를 제대로 펴지 못한다. 그러므로 오빠는 다락에 올라오면 거의 누워있거나 엎드려 있다. 누워서 만화책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읽다가 엄마가 문을 열라치면 재빨리 몸을 발딱 엎드려 지금껏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는 시늉을 한다. 공책이며 교과서가 노상 펼쳐져 있으니 엄마는 미심쩍다는 얼굴로 한번 쓱 훑어보지만 대게는 별말하지 않는다. 엄마는 나보다 오빠를 더 좋아한다. 말하는 걸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아버지나 내게는 맨날 툴툴대지만 오빠에겐 덜 그러니 말이다.
나는 오빠의 비밀을 들추듯 이불을 걷힌다. 그러면 그렇지. 바스락 소리가 나더니 검은 비닐봉지가 나타난다. 비닐봉지를 집으려던 내 눈이 크게 열린다. 담배 한 개비가 떨어져 있다. 오빠가 담배를 피운다는 것을 알고 있기는 했다. 벌써 한 달 전이다.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오빠가 친구 두 명과 함께 주변 눈치를 살피며 건물 뒤로 돌아가는 걸 봤다. 나는 살금살금 뒤따라 가 보았다. 구석진 골목 한편에서 오빠들이 담배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몰래 지켜보다가 오빠들이 나오자 따라 나왔다. 오빠는 나에게 ‘엄마한테 말하면 죽을 줄 알어.’ 라며 겁을 주었다.
담배를 집어서 치울까 하다가 그만둔다. 엄마가 붕어빵 장사를 폐업해서 한가해지거나 이불을 세탁하려고 꺼내기 전에는 오빠 이불을 들춰보는 일이 없을 테고, 또 오빠는 그전에 이 담배를 피워 없앨 것이다. 그나마 오빠가 이 다락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 건 정말 잘하는 일이다. 방귀 냄새도 새어나가지 못하게 꼭꼭 막혀있는 이곳에서 담배를 피운다면 냄새가 구석구석에 스밀 것이다. 그리고 엄마가 문을 열면 용케도 알고 기회다 싶어 담배냄새가 엄마 콧구멍으로 들어갈 게 뻔하다. 그러면 오빠에게 관대한 엄마여도 분을 못 참아 단숨에 천장까지 튀어 오르려 할 테고, 아버지는 더욱 어두운 얼굴로 변할 게 틀림없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오빠는 참 기특한 데가 있다. 다락에선 담배를 안 피우니까.
나는 비닐봉지 안을 뒤진다. 비스킷, 초코파이, 빼빼로 껍질이 들어있다. 빼빼로가 한 개라도 남아있나 빈 봉지를 한 번 더 살피지만 얄밉게도 깨끗이 먹어 치웠다. 다행히 라면 한 봉지는 남아있다. 학교에서 돌아와 삶아 먹으려고 숨겨 둔 것이다. 그러나 오빠는 라면이 고스란히 제자리에 있으리란 기대는 별로 하지 않는다. 쥐새끼 드나들듯 자기 방을 내가 뒤지고 다니는 줄 알기 때문이다. 내가 금방 찾아낼 것을 알면서도 오빠는 꼭 비닐봉지를 이불속에 감추었다. 또 먹어 없앤 줄을 알면서도 잠자코 있으면 자기 체면이 안 선다는 듯 ‘너 내 라면 또 먹었지!’ 하고 화난 목소리로 라면이 없어졌음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가게로 가서 다시 라면 한 봉지를 사다가 끓여 먹었다. 하지만 오빠에게 라면 한 봉지를 살 돈이 없는 날은 내 머리를 정말 쥐어박았다.
나는 라면봉지를 들고 다락에서 내려온다. 그리고 라면을 굽기 위해 연탄아궁이의 뚜껑을 연다. ‘아엠에프’ 전에는 이 동네에서도 연탄을 때는 집이 적었는데 그 이후로 다시 많아졌다고 엄마가 말했다. 불이 꺼져 있다. 아궁이의 숨구멍을 들여다본다. 숨구멍이 활짝 열려있는 것으로 봐서 실수로 불이 꺼진 게 아니라 일부러 꺼뜨린 모양이다. ‘인자 날 따땃허니께 불 고만 때야겄어. 연탄 사기도 힘든디.’ 엄마가 그렇게 말했던 생각이 난다. 연탄불을 아예 피우지 않아도 되는 계절이면 나도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엄마가 아침에 갈아놓고 나간 연탄은 엄마가 돌아오는 저녁때면 꺼져있기가 십상이다. 그러면 엄마는 너 잘 만났다는 투로 하루 종일의 짜증을 내게 쏟아붓는다.
-너 또 연탄불 손댔쟈! 아침에 갈아 놓은 대로 가만 놔두면 암시랑(아무렇지) 안 헐 텐디 뭔 염병 헌다고 구멍을 열었다 닫었다 허니까 꺼져버리제, 가 번개탄 사와!
사실 엄마 말이 맞는 구석이 있다. 라면을 구워 먹으려고 아궁이 뚜껑을 열어보면 불이 약해서 손바닥을 들이대도 뜨겁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숨구멍을 활짝 열었다가 깜빡하고 닫지 않거나 반대로 숨구멍을 꽉 틀어막아버려서 연탄불이 꺼져버리기도 했다. 한 번은 불을 꺼트리고 엄마에게 혼날 일이 겁나서 번개탄으로 불을 살려보려고 시도했다. 번개탄의 앞뒤도 모르고 아무 쪽에나 성냥을 그어대니 불이 붙을 리 없었다. 신문지에 불을 붙여 번개탄에 대었다. 불이 붙으려다 말고 또 붙으려다 꺼지곤 했다. 부엌 안은 통돼지라도 그슬리는 것처럼 연기로 가득 찼다. 마침 할머니가 깜짝 놀라며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영숙 이모네 마루에 쌓아 놓은 신문지를 모두 꼬시르며 큰일을 냈을지도 모른다.
연탄불도 없으니 라면을 생으로 먹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끓인 라면도 맛있지만 굽거나 수프를 뿌려 생으로 먹어도 맛있다. 나는 생라면 한 개를 과자처럼 와삭와삭 다 씹어 먹는다. 그리고서 안채 마당으로 나 있는 방문을 열고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