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소설)영이의 일기 5
할머니가 먹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참 재미있다. 이가 없기 때문인지 음식을 씹을 때 얇고 합죽한 주름투성이의 입술만 끝없이 움직인다. 입술을 오물오물 안으로 당겼다가 밖으로 밀었다가, 어찌 보면 입술로 장난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할머니의 음식 씹는 모양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나는 처음엔 내가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할머니의 입만 쳐다봤다.
할머니는 인절미를 먹으면서 떨어지는 콩고물을 손바닥으로 받치고 있다가 그걸 먹던 인절미로 꼭꼭 찍어서 먹고, 그래도 남는 가루는 다른 인절미가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열고 거기에 털었다. 영숙 이모가 어느 틈에 보고 또 질색을 했다.
“어휴! 정말 못 말리겠어. 그걸 드럽게 거기다 털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먹어요? 이러니까 며느리가 안 본다고 그러지. ”
할머닌 아무 말도 않고 입만 오물거리고 있다. 영숙 이모가 성깔을 부리고 신경질을 내어도 할머니는 섭섭해하지도 않는다.
깍두기 큰 것 만한 인절미를 두 개째 입에 넣는 할머니를 보며 엄마가 혀를 찬다.
“대접 받는 집 노인네 같으믄 병났다고 드러누워 미음이나 포도시(겨우) 받어 자실 형색잉만(형색이구만), 잡숫고 기운 내겄다고 뀌역뀌역 잡숫능만잉(잡수는군). ”
“그래도 이 연세에 음식 까탈을 안 하고 아무거나 잘 잡수니 다행이지 뭐예요.”
“음석 까탈을 허게 생깄어야 말이제. 다리도 누울 자리 보고 뻣는다고, 할매가 음석 까탈을 헌다고 누가 받어 줄 사람 있능가. 굶어서 돌아가시기 딱 알맞제.”
“노인네가 정말 답답해서 못 보겠다니까. 아들이 잘 살기는 하는지 올 때마다 돈은 꽤 주고 가는 모양인데, 돈 아까워서 생선 한 마리 맘 놓고 안 사 먹잖아요. 그 돈도 모았다가 아들 용돈으로 주려는 건가 봐, 아니면 저승 갈 때 노자돈 부족할까 봐 미리 준비하는 건지.”
말하던 영숙 이모가 다시 할머니를 쳐다봤다.
“ 그리구 할머니, 걸어 다닐 기운도 없으면서 공연히 왔다 갔다 하지 말고 가만히 좀 계세요. 빗자루 들고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면 빗자루가 할머니를 들고 다니는 것 같아서 불안해 못 보겠어.”
할머니는 인절미 한 개를 먹는데 5분은 걸리는 것 같다. 쉬지 않고 입을 오물거린다. 그런데도 잘 씹히지 않고 인절미 덩어리가 입안에서만 도는지 할머니는 눈을 찔끔 감으며 덩어리를 ‘꿀떡’ 하고 목안으로 넘긴다.
“누구라도 오믄...... 깨깟이 치아놔야 헐 것 같아서.”
“오긴 누가 올 사람이 있다고 그래요?”
“...... ”
할머니는 대답이 없다. 나는 할머니 얼굴을 슬며시 들여다본다. 할머니는 내 입김으로는 몰라도 엄마 입김으로 한 번만 훅 불면 뒤로 툭 넘어질 것처럼 가냘프다.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할머니는 마루 끝, 쟁반만큼 비쳐 드는 햇볕에 몸을 웅크리고 멍하게 앉아 있곤 했다. 할머니의 눈길은 늘 대문밖을 향해 있었다. 아침에 쓸었던 마당을 저녁때가 되면 또 쓸고, 빗자루를 바닥에 내려놓지도 않은 채 밖을 내다보고 또 내다보고, 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지 대문 밖으로 몇 걸음 나가 골목을 기웃거렸다. 할머니에게 내가 물었다. 누구 기다려? 할머닌 그때마다 풀 죽은 목소리로 방금 전 영숙 이모가 말한 것처럼 똑같은 소릴 했다.
-지달리긴, 누가 올 사람이 있다꼬······.
인절미를 다 삼키고도 아직 씹을 것이 남아있는지 합죽합죽 입술 운동을 계속하던 할머니가 옆에 있는 물그릇을 들어 물 한 모금을 마신다.
“고향에는 동서, 질부, 당조카, 재종 시아재... 일가덜 천진데, 에유......”
뜬금없는 할머니 말에 영숙 이모는 할머니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엄마는 할머니가 바닥에 흘린 콩고물을 손바닥으로 쓸면서 묻는다.
“고향에 가고 잪소 할메? ”
“고향에 안 가고 잪은 사람이 우데 있노...... 가고 잪다고 우에 갈 수가 있나... 도시가 어데 사람 살 데가. 소맹키로 순해빠진 사람도 도시사람 되마 억수로 모질어진다 아이가.”
바닥에서 쓸어 담은 콩고물을 손바닥에 받쳐 든 채 엄마가 안쓰럽다는 얼굴로 할머니를 바라본다.
“우리 아덜도 도시 사람 되기 전에는...... 고향에서 살 때는 맴이 처자보다 고왔데이.”
영숙 이모가 멀뚱한 눈으로 할머니를 보고 있는데 엄마는 갑자기 생각났는지 내게로 고개를 휙 돌리더니
“너 시방 학원 안 가고 믓 허고 자빠졌냐?”
나는 깜짝 놀라 재빨리 가방을 움켜쥐고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