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서 만나 지금은 절친으로 지내고 있는 송화(이름이 아니라 우리끼리 부르는 별칭)씨를 만나면 언제나 기분이 좋다.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마음이 저절로 따뜻해진다. 상대가 누구 건 대화를 할 때 그녀의 목소리엔 늘 애정이 담겨있다. 다 큰 조카와 통화하던 그녀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어쩌면 저렇듯 말을 예쁘게 할까 싶어 새삼스레 송화 씨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타인의 좋은 점을 잘 발견하는 재능이 있다. 얼마 전엔 내가 꽃을 살 일이 있어서 동네 꽃가게에 들렀는데 마침 그녀와 함께였다.
나는 가격 대비 장미가 몇 송이인가 헤아려보며 꽃다발 크기에 집중하고 있는데 송화 씨는 벌써 감탄하고 있었다.
“어머, 예뻐라. 꼼꼼하고 정성스럽게 잘 싸주시니까 더 예쁘네요.”
칭찬을 들은 꽃집 아가씨가 기분 좋게 웃었다. 송화 씨는 아가씨를 보며 이어서 말했다.
“아가씨가 참 예쁘시네요.”
인사말이 아니라 송화 씨는 솔직한 느낌을 말하고 있었다. 내가 가끔 가는 꽃집이지만 나는 아가씨에게 ‘예쁘시네요’라고 말해준 기억이 없다. 꽃집 아가씨를 다시 찬찬히 봤더니 피부가 약간 가무잡잡했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한 것이 상당히 예쁜 얼굴이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소탈한 차림새였다. 나는 놓치고 있던 것을 타인에게 늘 열려있는 송화 씨 시선엔 금방 포착되는 것 같았다. 사물과 사람에 대해서 긍정적인 부분을 쉽게 찾아내는 그녀의 고운 마음이 느껴져서 나는 내심 감탄하며 덩달아 흐뭇했다.
지금은 퇴직했지만 송화 씨는 국가 공무원으로 소위 ‘비행’ 청소년들을 돌보고 관리하는 직업에 종사했다. 가정과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제도하여 그들이 용기와 의지를 갖고 건강한 사회인으로 거듭나도록 많은 기여를 했다. 사랑이 목마른 청소년들을 정서적으로 품는 한편, 그들의 숨겨진 자질을 개발하고 격려하며 성장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엄마'의 마음으로 수행했다. 송화 씨의 부드러운 말투, 따뜻한 눈길은 청소년을 대하던 직업적 특성도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본다. 물론 선천적으로 심성이 고운 사람이다.
송화 씨는 오늘 이렇게 말했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말은 소음이야.” 빈 말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뜻이다. 송화 씨의 절실한 경험으로부터 나온 말이란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추가했다.
“기도는 삶이어야 해요.”
멋진 경구 같은 송화 씨의 말들을 입으로 따라 하며 나는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송화 씨는 기독교를 모태신앙으로 가지고 있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그녀의 말을 백 프로 공감한다. 기도와 분리된 삶은 위선이며, 괴리감으로 인해 불행하고 공허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너무나 잘 인지하고 있는 송화 씨의 언어와 태도에서는 언제나 진정성이 묻어난다. 그녀와 오랜 시간 함께 있어도 편안한 이유일 터이다.
진심 어린 공감과 긍정적인 언어, 친절한 목소리, 섬세한 배려와 마음 씀 등등, 이러한 소양을 갖춘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송화 씨는 거기에 부합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녀를 닮아가고 싶다. 법구경에 ‘생선 싼 종이에선 비린내가 나고 향을 싼 종이에선 향내가 난다’는 말이 있다. 향을 싼 종이와 같은 송화 씨와 함께 있으면 내게서도 향내가 날 것이라는 바람도 가져본다.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줄 알면 송화 씨는 펄쩍 뛸 게 뻔하다. 자기는 향을 싼 종이가 못 된다면서 말이다. 아무려나, 내 느낌을 적을 뿐이다. 향기로운 사람, 그녀가 내 곁에 있고 내가 그녀 곁에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고맙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