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은편 병상의 아주머니가 나를 빤히 보고 있다. 그녀만큼이나 재미있는 그녀의 남편은 잠깐 어디를 갔는지 자리에 없다. 나는 그녀의 눈길을 의식하며 대충 화장을 마친 다음, 마지막으로 머리를 매만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득, 내게서 눈길을 거두는 아주머니의 표정에서 쓸쓸함을 읽은 것 같다. 아주머니답지 않은 행동이다. 나는 괜히 미안해진다. 저분도 가끔은 예쁘게 꾸미고 싶을 때가 있을 텐데···그런 중에도 아주머니 침상 위에 깃발처럼 걸려 있는, 군청색 바탕에 연핑크 꽃무늬로 날염된 팬티가 눈에 들어와 나는 입을 가리고 몰래 웃었다.
딸애가 몸이 안 좋아 병원에 입원해있는 관계로 내가 간병 중이었다. 딸애가 어려운 고비를 넘겼으므로 나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상태였다. 5인 병실에 온 첫날, 아주머니는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며 쾌활한 인사를 건네왔다.
“젊은 사람이 어데가 아파서 왔어요?” 하더니 또 나를 쳐다보며
“아줌마 젊은 거 보니 딸도 몇 살 안 먹었겠구마는.” 한다. 그러더니 묻지도 않은 자기의 병력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나는 마 파킨슨병으로 고생한 지가 15년인데 병원을 몇 번씩 들락날락 한지 모릅니더. 한 달 보름 만에 또 들어왔어예! 처음엔 팔이 안 올라가더니만···”
같은 병실을 사용하는 관계라면 이 정도 정보는 알려주는 게 예의라는 듯, 만난 지 얼마지 않아 본인 내력을 줄줄 설명하는 아주머니가 재미있어서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아주머니는 나를 향해 물었다.
“아줌마는 몇 살이에요? 나랑 비슷해 보이는구먼는.”
엥? 비슷해 보인다고? 금방 젊어 보인다더니?
그녀는 나보다 10살은 많아 보였다. 수술 때문에 머리카락을 밀었는지 스포츠머리였고 주름도 살집도 나보다 많았다. 게다가 걸을 땐 허리를 펴지 못하고 45도 각도로 굽힌 채 걸었으므로 언뜻 보기에 60살은 족히 넘어 보였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나보다 고작 두 살 많았다. 오랜 투병생활로 인해 나이보다 훨씬 들어 보였던 모양이다.
밖에 외출할 일이 있어 화장한 얼굴에 외출복으로 바꿔 입은 나를 보며 그녀는 부러웠을까? 어제 오후였다. 아주머니는 짧은 머리 때문인지 주로 빵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새로운 모자가 생긴 모양이었다. 검은 색깔의 새 모자를 쓰고 손거울을 보며 요리조리 만지작거리더니 남편에게 물었다.
“좋나? 이쁘나?”
그러자 남편은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좋다. 이쁘다!”
그 환상적 궁합이라니!
내가 보기엔 디자인도 색상도 그게 그거여서 다른 모자로 바꿔 썼다는 걸 모르겠는데도 말이다. 비록 환자지만 그녀도 분명 예뻐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병실에 트로트 음악이 쉼 없이 흘렀다. 다행히 어제부터 소리도 낮췄고 하루 종일 틀어놓진 않았다. 아주머니 부부가 간호사로부터 주의를 들은 것 같았다. 부부는 유행가가 흘러나오는 소형 라디오를 아침부터, 그것도 병실 복도에까지 들릴 정도로 볼륨을 높인 채 켜놓았었다. 아마 본인들 집에서 그랬던 모양이다.
병원에서도 집에서와 같은 생활을 연장하고 있었다. 병실의 다른 환자들이 불편하리라는 점은 인지하지 못했다. 내가 좋으니 남도 좋으리라고 믿는 듯했다. 병실 사람 누구도 대놓고 시끄럽다고 항의하는 이가 없다는 점도 신기했다. 그러나 참다못한 누군가 간호사에게 하소연했음이 분명하다.
아침 일직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흐르는 노랫소리는 소음이었다. 괴로운 사람이 우리 모녀뿐은 아니었던 것이다. 트로트 따라 부르기를 좋아하는 내가 스트레스였을 정도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주머니 내외가 싫지가 않다. 재미있었다.
지금의 5인실로 옮겨오기 전, 2인실에 1박 2일 동안 있었는데 옆 침대 사람들과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커튼으로 각자의 공간을 분리한 채 서로에게 무관심하려고 노력했다. 병원이라는, 장소가 장소이니만치 만난 지 24시간도 안 되어 안면을 틀 의무는 없었다. 딸과 나의 생각이 아니라, 옆 침대의 환자와 가족이 그런 것 같아 우리도 말을 건네지 않고 조용히 지냈다.
이곳 5인실 환자들은 하나같이 소탈했다. 그런 중에서도 아주머니 내외는 독보적이었다. 꾸밈이 없다. 마을에서 대문을 제일 먼저 여는 집처럼, 아주머니는 아침 여섯 시면 칸막이의 커튼을 활짝 열어놓는다. 밤이 아니면 커튼을 닫는 일이 거의 없었다.
아저씨는 커튼을 열고서도 상관없이 간이침대에서 잘 주무신다. 아주머니는 다른 환자와 보호자들이 일어난 기척이 나면 먼저 아는 체를 하거나 ‘가가호호’를 방문했다. 아직 열리지 않은 다른 병상의 커튼을 살짝 걷히고 얼굴을 디밀며
“어젯밤에 뭐 좀 먹었어요?”
“인제 좀 안 아픕니껴?”하고 안부를 묻는다.
뿐만 아니라 동네 반장처럼 다른 병실 소식까지 들고 와서 우리 병실에 풀어놓았다. 이 병원에 자주 입원한 경험으로 여러 병실을 두루 돌아다니며, 동네 마실 온 기분을 만끽하는 것 같았다. 한 달 보름 만에 다시 들어왔음을 거듭 강조하는, 아주머니가 통화 중이다. 목소리도 평소처럼 높았다.
“여보세요? 00이 엄맘니껴? 나라예, 한 달 전에 같은 병실에 입원했던 사람이라예, 아이고~ 이제 알아보네, 그래 00 이는 많이 나았습니껴? 궁금해서 전화했어예···”
나는 내심 놀라는 한편 빙긋 웃음이 났다. 같은 병실에 입원했던 사람을 잊지 않고 있다가 저렇듯 안부를 물어주는 사람이 또 있을까?
전화를 끊은 아주머니가 안심이라는 듯 말했다.
“00이 이제 거의 나았다네.”
“그래? 참 다행이네.”
아저씨가 자기도 궁금했다는 듯 대꾸했다. 부부가 똑같다. 전화를 받는 당사자조차 못 말리는 오지랖이라고 놀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아주머니 내외를 보고 있으면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손에 책을 들고 있을 때도 보통이라면 모른 체 할 텐데, 아주머니는 ‘뭘 그리 읽어요?’ 라며 '참견'한다. 나는 슬그머니 책을 내려놓으며 아주머니의 말 상대가 되어 주지만 불쾌하지가 않다.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이다.
아주머니 양쪽 가슴 위쪽으로 전자기기인 ‘배터리’가 심어져 있단다. 중증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아주머니는 약물치료만으로는 더 이상의 치료 효과를 볼 수가 없다고 한다. 다행히 현대의학의 힘을 빌려 생명을 이어가는 덕분에, ‘로버트 인간’ 이 되었다는 것이다.
배터리는 성능이 다하면 (약효가 떨어질 때마다) 교체해 줘야 한다. 배터리의 수치를 올리거나 낮추는 건 TV를 작동하듯 리모컨으로 조정한다. 배터리가 제 기능을 못 할 경우 걸음을 걷다가도 그 자리에서 멈추고 만단다. 한 발짝도 뗄 수 없다는 것이다. 건전지의 힘으로 움직이는 인형처럼 말이다.
머지 않아 로버트 인간이 사람처럼 거리를 활보할 거라는 영화같은 얘기를 상상이야 하지만, 아주머니 몸이 실재 리모컨으로 ‘작동’ 된다니 신기하고 놀라웠다. 아저씨가 아주머니를 놀렸다.
“말 안 들으면 리모컨 꺼버릴 끼다.”
아주머니가 되받았다.
"리모컨 끄면 누가 손핸데.”
두 분이 장난스럽게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배꼽 빠지는 줄 알았다.
금슬 좋은 부부는 아주머니가 입원할 때마다 아저씨도 함께 오는데, 고향이 지방인 관계로 내려가지 않고 부부가 병실에서 함께 생활한다. 식사 때면 부부는 침상에 마주 앉아 다정히 식사를 한다.
어제부터 널어놓은 아주머니의 꽃무늬 팬티가 또 정면으로 눈에 들어왔다. 나는 다시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링거를 꽂는 기다란 스틱?(이름을 모르겠다) 꼭대기는 팬티를 널기에 제격인 모양이다. 그렇더라도 남의 눈에 덜 띄게 한쪽 옆으로 둘 수도 있을 텐데, 자랑스러운 무엇이나 되는 것처럼 침상 정면에 세워두었다.
내가 팬티를 볼 때마다 웃음을 참지 못하자 딸애가 너무 그러지 말라는 투로
“ 그래도 꽃무늬가 있어서 어떻게 보면 손수건처럼 보일 수도 있어.”
그 말에 더 웃었다.
팬티는 이미 충분히 말랐을 텐데도 아주머니는 치울 생각을 안 했다. 오늘 아침 아주머니의 담당 주치의가 방문했을 때도 팬티는 버젓이 그곳에 있었다. 그 팬티를 다시 입을 때까지 거기에 걸어 둘 것만 같다.
꾸밈도 가식도 없고 우아함이나 세련미는 더더욱 없는 아주머니는 마치 가꾸지 않은 정원의 식물을 연상하게 했다. 편안하고 진솔하고 귀여운, 아주머니가 꼭 회복돼서 예쁘게 멋을 내고 외출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