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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에 관한 추억

by 민들레



장미가 한창인 계절이다. 거리를 가다 보면 간간히 활짝 핀 장미꽃이 시선을 붙잡는다. 만발한 붉은 장미꽃은 오래지 않은 나의 기억을 떠오르게 하곤 했다.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 나는 조그만 주택에 살았다. 말이 주택이지 옆집과 다닥다닥 붙어있는 밀집지역의 연립 같은 단독이었다. 명색이 주택인지라 마당 형태의 조그만 공간도 있었다.


내 집이 없던 젊을 시절부터 장미꽃이 무성한 집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담장 너머로 넝쿨장미가 예쁘게 뻗어 나온 집을 보면 우리는 언제 저런 곳에 살게 될까 부러워하곤 했다. 한참 후에 주택을 장만했지만 오랫동안 장미를 심지 못했다. 이런저런 여건이 맞지 않았고 바삐 살다 보니 오래 전의 로망을 잊은 탓도 있었다.


그러던 중 주자창을 만들 목적으로 길 쪽으로 난 담장을 헐고 대문을 떼어냈다. 그때까지 골목주차를 하고 있었기에 꽤나 불편했기 때문이다. 주차장 공사를 하면서 꿈이었던 꽃밭도 만들었다. 처음으로 꽃밭은 갖게 된 나는 설렜다. 작은 터였지만 심고 싶은 것이 많았다. 남들처럼 상추, 고추, 가지 등을 심어 식탁에 올리는 재미를 맛보고도 싶었으나 나는 당연하게 꽃을 심었다. 맨 먼저 심은 꽃이 넝쿨 장미다. 그 외에 팬지, 백일홍, 채송화를 양재 꽃시장에서 사다 심었다. 꽃밭을 만든 첫 해 여름과 가을 우리 집 작은 꽃밭은 예쁜 꽃들로 풍성했다.


이듬해 봄엔 과꽃과 채송화 씨를 뿌렸다. 꽃피는 시기가 각기 다른 일 년 초를 심어 사철 꽃을 감상할 요량이었다. 그런데 들고양이가 와서 자주 볼일을 보고 꽃밭을 파헤쳤던 관계로 씨앗이 제대도 싹을 틔우고 자라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나는 꽃들이 오밀조밀 정답게 피는 모습을 상상하며 싹이 올라오기를 바랐지만, 아무리 들여다봐도 눈을 뜬 씨앗은 손가락으로 셀 정도였다. 딱 사람 하나 누우면 그만일 조그만 땅뙈기에 꽃씨를 잔뜩 뿌렸는데도 말이다. 고양이도 문제였으나, 심고 싶은 꽃들이 너무 많은 나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몇 개의 꽃씨들이 고양이의 수난을 피해 겨우 고개를 내밀었지만 집 앞을 지나는 사람들 눈엔 우리 화단이 그저 빈 땅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어느 날 보니, 작은 사철나무 묘목 한 그루가 턱 하니 심어져 있었다. 또 어느 날엔 토마토 나무가, 가지 나무가, 국화가 ‘나도 여기 있어요’ 하며 내가 심지도 않았는데 꽃밭을 차지하고 있었다. 처음엔 황당했다. 하지만 자기 집인 줄 뿌리내리려는 그것들을 뽑아서 버릴 수도 없었다.


허락도 없이 우리 꽃밭에 이것저것을 심는 이들은 빈 땅을 두고는 못 배기는 동네 할머니 한 두 분이었다. 당신들이 심어놓은 작물이 건재함을 보고 내게 자랑까지 했다.

“우리 고추 모종을 심고 남아서 여기 화단에 두 그루 심어놨어. 땅을 놀리면 안 되잖어. ”

놀리긴 누가 놀린다고, 고추 모종 때문에 새싹이 뭉개졌을 텐데. 이 말을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젊은이는 바빠서 그런 거 할 시간이 없는 거 같아서”


젊은이는 나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런 말까지 덧붙이는 그분들의 성의를 무시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다니는 도로 쪽으로 경계선 없이 오픈된 우리 꽃밭은 이미 이웃과 공동소유처럼 되었다. 내 꽃밭이었지만 내 의지대로 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꽃 대신 토마토나 고추가 열리면 따먹으면 되니까 말이다. 사실 고추를 따먹은 적은 있는데 토마토는 채 익기 전에 누군가의 손을 타서 나는 한두 개를 얻은 게 고작이긴 했다.


주로 서민층이 거주하던 그 동네 어르신들의 인정이 깃든 행동에 나는 불만을 나타낼 수 없었고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듯싶었다. 따라서 여름 꽃들로 화단을 채울 생각을 그만두고 반쯤은 동네 꽃밭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동네 할머니들의 관심과 부지런함으로 우리 화단은 이미 빈자리가 거의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화단의 대장은 단연 장미였다. 나는 다른 일 년생 화초를 포기하는 대신 장미에 공을 들였다. 심어놓은 첫해부터 꽃을 피운 장미는 거름으로 준 음식물 찌꺼기를 자양분으로 키가 쑥쑥 자라났다.


그런데 신나게 자라던 장미나무에게 수난이 찾아왔다. 우리 화단은 좌측으로 나란한 바로 옆집과 낮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장미 넝쿨은 낮은 담을 타고 옆집으로 넘어갔다. 나는 잘 자라 주는 장미나무를 보며 뿌듯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옆집으로 넘어갔던 장미 가지가 싹둑 잘려 있음을 발견했다. 깜짝 놀랐지만 누구의 소행인지 알 길 없으니 애만 탔다. 장미 가지가 담을 넘긴 했으나 그 집 식구들이 늘 드나드는 방향은 아니었으므로 왕래를 방해한다고 생각되진 않았다. 그 집 부부는 하루 종일 집을 비워 낮에는 사람이 없었다.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물정 모르는 장미나무는 다시 옆집으로 가지를 뻗었다. 누군가 또 잘라버리기 전에 가지를 우리 집 쪽으로 끌어당겨 묶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나는 늘 행동이 느린 게 문제다. 가지는 벌써 또 잘려 있었다. 마치 내 손이 잘리기나 한 것처럼 속상했다. 어쩌면 꽃나무에게 이렇듯 몰인정할까 싶어 화가 났다. 지나던 사람이 옆집으로 들어가서 그런 행위를 할 리는 없을 테니 범인은 그 집 사람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장미 넝쿨 옆을 지나더라도 머리만 살짝 스칠 정도인데, 그 정도를 못 참는 사람이 누군가 궁금했다.


옆집엔 폐휴지를 주으며 지하방에 세 들어 사는 허리가 거의 90도로 굽은 할아버지가 계셨다. 그 할아버지에게 의심이 갔지만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계속 모른 체 지나간다면 장미 가지는 자라는 족족 잘려나갈 게 분명했다. 장미에게 못할 짓이었다. 나는 빈 맥주병과 박스를 모아 할아버지에게 드리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할아버지, 장미 가지 누가 자르는 거 보셨어요? 할아버지가 자르지 않으셨죠?”

“내가 안 잘랐어요! 내가 그걸 왜 잘라요?”


할아버지는 강하게 부인했지만 그다음부턴 가지가 잘려나가지 않았다. 잘리는 대신 뻗어나갈 기미가 보이면 어느새 옆으로 다소곳이 묶어져 있었다. 내가 손수 묶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뿐만 아니다. 그전과 달리 할아버지는 우리 집 화단에 각별히 관심을 가졌다. 역시 나를 돕는다고 생각하셨다. 메마른 날씨가 계속되어 꽃들이 갈증이 심하던 날, 집에 돌아와 보면 장미나무뿌리까지 물을 촉촉이 머금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물을 준 것이다. 능소화를 심은 것도 할아버지였다.

“능소화가 크면 내가 줄로 묵어서 저 위로 올릴 거예요.”

자신이 알아서 잘 키울 테니 신경 쓰지 말라는 뜻이었다. 나는 빈 박스며 헌 책 등 폐지가 나오면 할아버지를 챙겨드렸다.


뿌리와 가지가 왕성하게 자란 넝쿨장미가 곧 화단을 가득 채웠으므로 능소화는 제대로 자라지는 못했다. 초여름에 만개한 장미꽃은 우리 집 작은 마당을 화사하게 장식했고 사람마다 감탄하며 지나갔다.

나는 장미꽃이 지기 전 그 집을 팔고 아파트로 이사했다. 가장 아쉬웠던 것이 두고 온 장미였다. 새로 그곳으로 이사 온 집주인은 꽃밭을 없애고 차를 한 대 더 세우기 위해 주차장으로 확장했다고 한다. 지나는 이웃들도 초여름 얼마 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힐링을 주었던 그 넝쿨장미를 기억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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